청주 사천동 작업장 가보니…하루 평균 참여자 70여 명"친구도 사귀고, 상품권도 받아 매일 와요" 웃음꽃 핀 장애인 봉사자들단순 봉사 넘어 '치유의 장'으로...생산적 복지의 새 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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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오후, 충북 청주시 사천동 충북장애인회관에 위치한 '장애인 일하는 밥퍼 1호점'. 4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웃음소리와 함께 기분 좋은 활기가 전해졌다.
- ▲ 충북장애인회관 4층 작업실에서 어르신들이 콩 고르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표윤지 기자
작업실 세 곳과 로비까지 가득 메운 70여 명의 참여자들은 콩 고르기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1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장애인 특화형 '일하는 밥퍼'로 문을 연 이곳은 이제 단순한 일터를 넘어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 ▲ 장애인 일하는 밥퍼 1호점이 운영되고 있는 청주시 사천동 충북장애인회관. ⓒ표윤지 기자
◇ 단순 노동 넘어선 '활력소'...하루 평균 참여자 70명충북도의 생산적 복지 모델인 '일하는 밥퍼'는 시행 1년 여 만에 하루 참여자 4000명을 돌파하며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 중 장애인 참여자는 지난달 9일 기준 일일 406명(누적 4만 7775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도내 60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 취약계층이 하루 3시간 봉사하며 1만 5000원의 온누리상품권를 받는 이 사업은, 특히 장애인들에게 '자존감 회복'이라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안겼다.현장에서 만난 지체장애인 A씨(39)는 내덕동에서 매일 30분간 자전거로 이곳을 달려온다고 했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콩을 옮겨 담으며 말을 건넸다."작업장이 개소했을 때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처음 시작할 땐 손이 서툴러서 걱정 많았죠. 그런데 매일 나와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손동작도 빨라지고 마음도 밝아졌어요. 시장에서 국밥 사먹는 것을 좋아해 상품권을 받으면 주로 식사비용으로 나가는 편이에요. 그래도 제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사 먹으니 보람차요"작업하는 내내 다른 봉사자들과 대화가 끊기지 않았던 참여자 B씨(77)는 "평생 남에게 도움만 받고 사는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여기서 받은 상품권을 차곡차곡 모아 손주 과자도 사주고 며느리에게 용돈도 준다. 가족들 사이에서 내 목소리가 커진 게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휠체어를 타고 작업을 하던 C씨(57)는 "집에만 있으면 우울하고 할 일도 없는데, 여기 나오면 공기도 쐬고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곳의 참여자들은 기초생활수급비 삭감이나 수급권 박탈 걱정 없이 정당한 활동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
- ▲ 4층 로비에서 몸이 불편한 장애인 봉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콩 고르기 작업을 하고 있다. ⓒ표윤지 기자
◇ 이동권 보장과 소모품 지원... 남겨진 숙제들사업의 폭발적인 성장 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고충도 있었다. 곰돌이 체육관에서 운행하는 리프트 버스가 편의를 봐주고 있지만, 현장의 지형이 험하거나 이동 수단 자체가 노후화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율량동에서 출퇴근하는 참여자 D씨(71·여)는 "올 때는 해피콜로, 갈 때는 전동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며 "전통휠체어 배터리 하나 교체하는데 30~40만원이 들지만 1년도 채 못 간다. 수급자가 아니면 지원조차 안 돼 큰 부담"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집과 가까운 곳에 더 많은 봉사 장소가 생기면 우리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이동하기에 훨씬 수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또 다른 참여자 E씨(63)는 온누리상품권 사용처 확대에 대해 언급했다. "처음엔 상품권을 안 받는 데가 더러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웬만한 곳에서 다 받고 있다"며 "하지만 아직 집 근처에서 장을 보기 위한 하나로마트나 홈마트 등에서는 받고 있지 않아 재래시장을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안되는 곳에서는 안 사고 다른 데로 가고 있는데, 사용할 수 있는 곳이 더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
- ▲ 충북장애인회관 4층 작업실에서 콩 고르기 봉사에 열중하고 있는 어르신들. ⓒ표윤지 기자
◇ 이순주 소장 "작업장이 곧 최고의 재활 치료실"이곳을 이끄는 이순주 장애인 일하는 밥퍼 1호점 소장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적'이라 표현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사회와 단절되지 않도록 돕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이순주 소장은 "발달장애가 있는 한 친구는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며 작업 치료실을 다녔는데, 이곳에서 손을 움직이는 봉사를 하며 오히려 근육이 풀리고 상태가 호전돼 치료실 방문을 줄였다"며 "단순 작업처럼 보여도 장애인들에게는 훌륭한 재활이자 자존감 회복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이 소장은 정책적 건의도 잊지 않았다. "현재 청주에 4곳의 사업장이 있지만, 대중교통 이용이 힘든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집 근처 동네마다 소규모 작업장이 생겨야 한다"며 "장애인들이 언제든 편하게 걸어서, 혹은 지원사의 도움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공간'이 될 때 진정한 나눔과 상생의 모델이 완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
- ▲ 적십자 점퍼를 입고 청주시 내덕동에서 매일같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한다는 청년 봉사자. ⓒ표윤지 기자
충북도는 올해 일하는 밥퍼 참여 인원을 일일 5000명까지 확대하고, 도내 보건소 통합건강증진사업과 연계해 건강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할 방침이다.김영환 충북지사는 "장애인과 노인이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이 모델을 국가 정책에 반영해 전국으로 확산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1층 로비 실내 배너 거치대에 적힌 '장애인들에게는 활력을! 지역사회에는 변화를!'이라는 문구가 유독 선명하게 다가왔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 자립의 꿈을 빚어내는 '일하는 밥퍼'가 충북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에 온기를 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
- ▲ 충북장애인회관 입구에 들어서면 1층 로비 실내 배너거치대에 적힌 '장애인들에게는 활력을! 지역사회에는 변화를!'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표윤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