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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잠적 사흘 만에 “국민, 도민분들께 사죄의 말씀을 올리겠다”며 기자회견을 자청한 8일 안 전 지사는 일방적으로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또다시 잠행에 들어가 무책임함을 넘어 공분을 샀다.
이날 기자회견을 취소한 안 전 지사의 표면적인 이유는 “모든 분들이 신속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해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 드리는 우선적 의무라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검찰은 한시라도 빨리 저를 소환해주십시오.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먼저 검찰에 출석하기 전에 국민 여러분, 충남도민 여러분 앞에서 머리숙여 사죄드리고자 한다”고 언급한 부분을 곱씹어 보면 이율배반적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안 전 지사의 이러한 언행은 그가 지사직을 사퇴한다고 밝힌 페이스북 내용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는 표현과 “일체의 정치활동도 중단 하겠다”고 한 부분이다.
그는 사죄를 말하면서도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 “어찌 벌써부터 ‘용서’를 구한다는 말인가”라는 탄식이 네티즌 사이에 흘러 나오고 있다. ‘용서’는 참회와 자숙의 시간이 흐른 뒤 구할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활동 ‘중단’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중단’이 아니라 ‘떠난다’거나 ‘은퇴’라는 표현이 현재로서는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러자니 그가 ‘미투’를 말하면서 또다시 성폭행을 했다는 김지은 씨의 주장도 그의 치밀한 계산이 깔려있는 행동이라는 분석이 억측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A 변호사는 ‘김지은 씨의 주장’을 전제로 “미투운동 이후에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안 지사가) 합의 하에 성관계가 이뤄졌다는 정황을 만들고 또 무마시키기 위한 (계획적인) 시도일 수도 있다”고 조심스런 견해를 내놨다.
안 전 지사가 지사직을 내려놓고 떠난 도청에는 아직도 그가 남긴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배신당한 공무원들이 삼키고 있는 분노에서도, 도청 건물 외벽에 걸려있는 플래카드에서도 그의 ‘미련’과 ‘정치적 욕심’이 드러난다.
지난 1월 16일 안 전 지사의 뜻에 따라 제작해 부착했다는 플래카드에는 ‘떠오르는 태양’과 ‘비상하는 새’를 배경으로 ‘유종(有終)’이란 표현을 커다랗게 써놓았다.
또 ‘유종’ 아래로는 ‘끝나는 곳이 시작입니다’라는 글귀가 덧붙여 있다.
도지사 3선 도전을 접고 새로운 도전으로 나서려는 안 전 지사의 의지가 담겨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향후 대권주자로서의 위용을 꿈꾸던 그가 성폭행범이라는 오명을 쓰고 나락에 떨어진 현재 어쩌면 그에게 새로운 시작이란 봄이 오는 길목에서 혹한으로의 역행이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한때 친노로서 ‘폐족’을 부르짖다 화려하게 다시 정계로 복귀했던 그지만 이번에 그가 보여준 이중성과 무책임은 돌이킬 수 없는 ‘폐족의 몰락’에 다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