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차례상 앞에서, 노부모의 한숨“부모의 사랑은 재산이 아니다”…설날 ‘가족의 의미’
  • 설 연휴가 끝났다. 10일간의 긴 휴식 뒤, 사람들은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누고 웃음꽃을 피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충북의 한 조용한 농촌 마을, 80대 노부부의 집에는 올해도 명절의 온기가 닿지 않았다.

    기다림은 이제 습관이 되었다. 설날 아침, 떡국을 끓이며 문득 장남의 얼굴이 떠올랐다. 벌써 3년째, 그가 집에 오지 않았다. 한때는 누구보다도 노부부의 건강을 걱정하던 든든한 장남이 이었다. 그렇게 효심을 보이던 그였건만, 이제는 연락조차 없다.

    노부부는 평생 땅을 일구며 4형제를 키웠다. 농사를 지어 번 돈으로 자식들을 가르쳤고, 장남에게는 더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 상속 때도 가장 좋은 땅을 주었고, 서울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집을 사주었으며, 형제 몰래 자동차까지 마련해 주었다. 부모가 가진 것이 곧 자식의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서울에 살던 장남이 주말마다 내려와 블루베리와 아로니아 농사를 시작했을 때도, 노부부는 쉬지 않고 손을 보탰다. 무거운 짐을 나르고, 허리를 숙여 잡초를 뽑으며, 아들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졌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부모와의 단절이었다. 이유는 단 하나. “부모가 사는 집을 내 앞으로 돌려놓지 않아서.”

    이 말을 들었을 때, 노부부의 가슴은 무너졌다. 평생을 바쳐 길러낸 자식이 이제는 부모보다 재산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무엇을 더 바라는 걸까. 부모가 가진 것이라곤 늙고 쇠약해진 몸뿐인데. 그래도 설날이 다가오면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는다. 어쩌면 올해는 올까? 혹시 전화 한 통이라도 할까? 그러나 기다림은 올해도 헛된 것이 됐다.

    “늙으면 자식도 소용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노부부는 올해도 설날 빈 밥상을 마주했다. 떡국 한 그릇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마당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거실의 문을 열고 들어올 것처럼 느껴졌지만, 초라한 바람만이 문틈을 스쳐 갔다. 기다리는 것도 이제는 힘겹다. 다리는 점점 약해지고, 손마디는 굽어간다.

    부모는 영원하지 않다. 삶의 끝자락에 서 있는 부모에게 자식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그저 명절에 얼굴 한 번 비추고, 안부 전화 한 통이라도 해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받지 못한 채, 노부부는 오늘도 창밖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되새긴다.

    돈과 재산은 사라질 수 있지만, 부모의 사랑과 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사랑을 외면한 채 등을 돌리는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길이 아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후회해도 소용없다. 차가운 묘비 앞에서 통곡한들, 그때는 이미 늦었다.

    장남이 언젠가 이 사실을 깨닫고 부모에게 돌아오는 날이 올까? 시간이 흐를수록 남는 것은 후회뿐이다.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부모가 살아계실 때, 얼굴 한 번 보고 손 한 번 잡아드리는 것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