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길’ 흔적 지워지며… 사직·모충 일대 ‘도시 구조 대전환’‘도심 명품 주거지’ 설계… 스카이라인·상가·평형 구성 세분화10월부터 철거작업…‘안전·통학 대책’ 병행하며 주민 불편 완화 총력
  • ▲ 한 시대의 자취가 잠들어 있는 사모2구역 주택 풍경. 내년 상반기면 사라질 이곳은 오래된 삶의 결을 마지막으로 토해내듯 고요히 남아 있다. ⓒ김정원 기자
    ▲ 한 시대의 자취가 잠들어 있는 사모2구역 주택 풍경. 내년 상반기면 사라질 이곳은 오래된 삶의 결을 마지막으로 토해내듯 고요히 남아 있다. ⓒ김정원 기자
    충북 청주 서원구 사직·모충 일대를 가로지르던 ‘국보제약 골목’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삶과 정취를 품어온 생활의 길이었다.

    누군가는 이곳에서 청춘을 보냈고, 누군가는 아이를 키웠으며, 누군가는 평생의 일터로 삼았다.

    그러나 지금, 그 골목의 시간은 빠른 속도로 철거 현장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자리에 3730세대(사모2구역)의 초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이 지역은 거대한 도시 재편의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 ▲ 국보제약골목도 변화의 물살 한가운데 놓였다. 길의 왼편과 오른편 모두 새 미래를 준비하는 중, 오른쪽 사모2구역은 이미 허물어지는 소리가 은근히 번져 나온다. ⓒ김정원 기자
    ▲ 국보제약골목도 변화의 물살 한가운데 놓였다. 길의 왼편과 오른편 모두 새 미래를 준비하는 중, 오른쪽 사모2구역은 이미 허물어지는 소리가 은근히 번져 나온다. ⓒ김정원 기자
    ◇ 22만2603㎡ 초대형 부지…청주 ‘원도심 핵심 재개발’

    ‘청주 사모2구역 재개발정비사업’은 사직동 644번지 일원 22만2603㎡(6만7337평) 규모에서 추진된다.

    이 중 실사용 부지는 17만2920㎡(5만2308평)로 청주 원도심 사업 중에서도 단연 최대급으로 꼽힌다.

    사업은 지하 4층·지상 29층, 총 50개동 규모이며, 최초 승인 당시 4148세대에서 현재는 3730세대로 조정됐다. 총 연면적은 664만771.45㎡, 공사도급액은 1조1237억 원, 평당 공사비는 578만 원이다.

    시공은 현대건설㈜·㈜대우건설·두산건설㈜·한신공영㈜ 등 국내 대형 건설사가 맡았다.

    이는 단순한 재개발을 넘어 청주 원도심의 주거·상업·교통 구조를 새롭게 뒤바꾸는 중대한 도시 프로젝트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철거가 내년 상반기쯤 마무리되면, 이어지는 터파기·본 착공을 거쳐 입주는 2029년으로 계획돼 있다.
  • ▲ 가림막이 하나둘 세워지며 본격적인 철거의 숨결이 시작됐다. 익숙한 풍경을 덮는 가림막 뒤로, 동네의 기억이 조용히 접혀 들어간다. ⓒ김정원 기자
    ▲ 가림막이 하나둘 세워지며 본격적인 철거의 숨결이 시작됐다. 익숙한 풍경을 덮는 가림막 뒤로, 동네의 기억이 조용히 접혀 들어간다. ⓒ김정원 기자
    ◇ “사람이 살았던 흔적”…철거 현장 곳곳에 남아 있는 ‘정겨운 기억들’

    본보 기자가 30일 현장을 둘러보면 철거된 건물 잔해 사이로 사람이 살았던 징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깨진 벽면 사이로 남은 꽃무늬 벽지, 오래된 스위치, 낡은 책장과 아이들 그림, 현관 앞에 덩그러니 놓인 철제 우편함까지….

    모두가 먼지 속으로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이 집에서 누군가의 삶이 이어졌었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10월부터 철거를 시작한 골목길은 대부분 건물과 골목길, 상가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고, 점차 골목길마저 중장비의 바퀴에 눌려 본래의 형태를 잃어가고 있었다. 

    특히 주민들의 숨결이 담긴 교회, 카페, 세탁소, 문구점, 미용실, 오래된 백반집, 사무실, 주거공간인 주택 등 추억의 분식집까지 하나같이 철거만 기다리고 있다. 

    철거작업으로 통행이 끊긴 사모2구역은 골목을 오가던 시민에게는 익숙했던 정취가 끊긴 자리엔 공허함만 남아 있다.
  • ▲ 오래된 아파트도 이제는 역할을 내려놓고 있다. 벽면의 차곡한 세월이 굴착기의 진동 속에서 마지막 흔적을 떨어낸다. ⓒ김정원 기자
    ▲ 오래된 아파트도 이제는 역할을 내려놓고 있다. 벽면의 차곡한 세월이 굴착기의 진동 속에서 마지막 흔적을 떨어낸다. ⓒ김정원 기자
    ◇ 뒷마당 감나무와 마지막 단풍…“도시의 계절도 함께 철거된다”

    철거가 진행되는 집들 뒤편에는 아직 따지 않은 감나무가 서 있었다. 사람이 떠난 마당에 감은 주황빛으로 주렁주렁 달려 있었고,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빛을 받아 오래된 동네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듯 보였다.

    철거를 앞둔 각종 나무도 단풍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붉은 잎·노란 잎이 공사장 진입로와 철거 잔해 위로 떨어지며 “나는 이 동네의 마지막 계절을 지키고 있었다”는 듯한 풍경을 만들었다.

    곧 베어 없어질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무들은 끝까지 제 색을 잃지 않았다. 그 풍경은 사라지는 도시 풍경에 묵묵히 남아 있는 시간의 마지막 숨결처럼 보였다.

    주민들은 “매일 걷던 길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기분이다”, “옛 골목이 다 사라지기 전에 사진이라도 남겨두고 싶다”고 말하며 변화의 속도를 실감하고 있었다.
  • ▲ 많은 주민이 드나들던 작은 카페는 여전히 옛 정취를 품고 서 있다. ⓒ김정원 기자
    ▲ 많은 주민이 드나들던 작은 카페는 여전히 옛 정취를 품고 서 있다. ⓒ김정원 기자
    ◇ 다양해진 평형 구성…“실수요·중산층·고급형 모두 품는 설계”

    사모2구역 재개발 단지는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설계됐다. 15평형 296세대를 비롯해 △24평형 918세대 △34평형 2400세대 △43평형 79세대 △여기에 39㎡ 임대 190세대 △62평·68평 펜트하우스 10세대 등이 포함된다.

    이 같은 구성을 두고 조합은 “실수요자 중심의 주거 구조에, 중산층·대형평형 수요, 고급형 수요까지 아우르는 단지”라고 설명한다.

    또한, 외관은 커튼월룩 적용, 스카이라인은 단조로운 형태를 피하고 입체감과 조망을 고려한 설계로 마무리됐다.
    연도형 상가는 고급화 전략을 반영해 원도심의 상업 기능 회복을 이끌 핵심축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 ▲ 철거를 앞둔 골목길의 오래된 숨결이 사진 속에서만큼은 온전히 남아 있다. ⓒ김정원 기자
    ▲ 철거를 앞둔 골목길의 오래된 숨결이 사진 속에서만큼은 온전히 남아 있다. ⓒ김정원 기자
    ◇ 주민 불편 최소화…“특히 아이들이 안전해야 한다”

    철거가 본격화되면서 조합은 주민 불편을 줄이려는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인접 아파트 주민들이 제기한 보행로 문제는 별도 보행로 확보로 해소됐고, 사직초·청주여중 등과 협의해 우회 통학 동선도 마련했다. 교육청과 연계한 통학시간 안전관리 체계도 반드시 지켜지고 있으며, 조합은 현장을 수시로 점검해 안전사고 요인을 즉시 제거하고 있다.

    “대규모 공사는 주민 불편이 불가피하지만, 아이들과 보행자의 안전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조합의 입장이다.
  • ▲ 한때 인테리어 사업의 손길이 오가던 사무실 문에는 ‘철거예정’ 붉은 글씨와 엑스 표(X)가 선명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건물의 마지막 역할이 적막하게 표시된다. ⓒ김정원 기자
    ▲ 한때 인테리어 사업의 손길이 오가던 사무실 문에는 ‘철거예정’ 붉은 글씨와 엑스 표(X)가 선명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건물의 마지막 역할이 적막하게 표시된다. ⓒ김정원 기자
    ◇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시간”…주민들 속에 남은 상실감과 기대

    많은 주민은 이 변화를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한 주민은 “이 동네에서 40년을 살았는데 이제 골목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허하다”고 했고, 다른 주민은 “불편한 생활환경이 계속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변화도 결국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 ▲ 사모2구역 재개발로 인해 전형적인 단독주택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김정원 기자
    ▲ 사모2구역 재개발로 인해 전형적인 단독주택이 하나둘 무너지고 있다. ⓒ김정원 기자
    재개발이 끝나면 새로운 상권과 인프라가 조성되고, 원도심의 낙후도가 크게 개선되는 이점이 있는 만큼 기대감도 높다.

    그러나 사라지는 골목과 감나무, 오래된 집들의 기억은 개발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남을 전망이다.

    정천식 사모2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장은 “오랜 세월 뒤처졌던 이 지역이 새롭게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시민들께 불편하게 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그만큼 더 품격 있는 주거지, 더 안전한 생활환경을 조성해 청주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 ▲ 사모2구역 주택이 사라지는 자리에 2029년 새로운 대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조감도는 이곳의 다음 장면을 조용히 예고한다. ⓒ청주 사무2구역재개발정비조합
    ▲ 사모2구역 주택이 사라지는 자리에 2029년 새로운 대규모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조감도는 이곳의 다음 장면을 조용히 예고한다. ⓒ청주 사무2구역재개발정비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