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단풍이 일품인 내장산 국립공원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전북 정읍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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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봉(해발 624m)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에 자리한 산으로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봉우리의 기암괴석의 생김새가 농기구 써레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내장산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호남 5대의 명산 중 하나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8경 중 하나에 속해 있다.내장산의 주봉인 신선봉(763m)을 중심으로 장군봉(696m)·연자봉(675m)·까치봉(717m)·연지봉(670m)·망해봉(679m)·불출봉(622m)·서래봉(624m) 등이 말발굽 모양을 이루고 있다.산행코스는 내장산 제1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내장탐방지원센터(금선교)~우화정~내장사~원적암~불출봉~서래봉~벽련암~내장사 일주문~원점 회귀’로 산행 거리는 약 13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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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철엔 으레 사람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이 내장산이 아닐까 싶다. 그 유명세 탓에 주차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다행히 제1 주차장 부근의 음식점에 신세를 진다.헤매는 자동차는 걸음마를 하고, 밀려드는 단풍객에 인도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정읍내장산관광특구를 빠져나와 연자교통제소를 지나 오색단풍길을 약 1km 걸어 금선교에 닿는다.이곳에서 내장산 케이블카가 있는 내장산탐방안내소까지 약 2㎞의 거리는 내장사 경내 유료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지만, 가을 오색에 물들기 위해 찬찬히 걷기로 한다.올여름 무더위만큼이나 어제까지 뜨거운 열정과 빈틈없는 일정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가을의 숲길에서 내뿜는 오색의 아름다움이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을 두드린다. 이제 미완의 내 그림에 색칠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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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숲이 열리면서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만산홍엽으로 접어드는 기암괴석의 암봉이 드러난다. 마치 숨겨진 보물의 예고편을 보여주듯 말이다. 그 기세와 화사함이 보기에도 느끼기에도 좋은 건 어떤 이유도 설명도 필요치 않다.한때는 탐방객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던 계곡, 요란스럽게 사랑받는 옆의 단풍 숲에서 떨구는 낙엽을 두텁게 받아 차곡차곡 포개며 널찍한 암반의 구불구불한 골을 따라 유유자적하게 흐른다.그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장군봉 탐방로 입구를 지나 얼마 되지 않아 신선제(神仙堤)에 닿는다. 이곳은 승군(僧軍)과 왜적이 싸웠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오래된 제방을 개선한 후 신선폭포(神仙瀑布)라 이름 붙였다.이 호수 안에 자리한 우화정(羽化亭)의 파란 지붕과 호수에 비친 짙푸른 하늘은 울긋불긋한 단풍과 대비를 이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호수의 풍광을 보고 있자니 정자의 이름처럼 몸에 날개가 돋쳐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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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마저 잊게 하는 가을 풍경,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그 아름다움에 미소를 짓는 단풍객들은 행복하지 않은 이가 없더라.아름다움과 행복에 흠뻑 빠져 헤어나질 못하는 마음에 길을 재촉한다. 몇 걸음 옮기자 케이블카로 오르는 전망대의 모습, 단풍치마로 단장한 서래봉의 얼굴과 마주한다.내장산 내장사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경내로 접어든다. 속세의 온갖 번뇌와 망상을 버리고 오직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으로 내장산 단풍 터널길을 걷는다.일주문의 주련(柱聯)에 이런 글귀가 있다. ‘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역천역천겁이불고 긍만세이장금)’, 즉 영겁의 세월이 지난 과거도 옛일이 아니고, 아주 오랜 미래에 이를지라도 늘 지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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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과거는 지나 가버린 지금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지금이리라. 허니 지난 일에 집착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며, 그저 지금에 충실할 따름이리라.단풍터널의 끄트머리는 반야교를 건너 내장사에 이른다. 산행은 원적골을 거슬러 불출봉으로 향하는데, 고즈넉한 내장사를 품은 울긋불긋한 영취봉 앞에 발길을 잠시 멈춘다.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가는 울창한 숲 사이를 굽이쳐 이어지는 완만한 원적계곡 길을 한동안 걷는다. 길은 ‘나무석가모니불’과 ‘나무관세음보살’이라 새긴 돌기둥 두 개를 만나면서 그 사이로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숨 가쁘게 계단을 올라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귓전에 때리기 시작할 즈음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원적암에 도착한다. 원적암 주변에는 수령이 약 300~500년으로 추정되는 비자나무 3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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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봉(0.8㎞)·벽련암(1.2㎞) 갈림길에서 불출봉 방향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고도를 높일수록 잔잔한 조릿대 위로 곱고 맑은 단풍이 시선을 끌며 걸음을 멈추게 한다.그 덕택에 힘든 줄 모르고 환희에 적어 저절로 기운이 난다. 그 힘은 곧추선 데크 계단을 오르는데 쏟아붓는다. 노랗고 주황으로 물들어가는 신갈나무 숲의 오돌토돌한 암반 경사길을 오르는데, 마치 추억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황홀하다.다시 이어진 급경사의 데크 계단에 올라서서 신선봉을 조망하고, 자연석과 나무 계단이 반복되는 단풍길을 오른다. 곱게 단장하고 다소곳한 모습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수놓는다.비스듬히 기울어진 거대한 바위 밑을 지나고 데크 계단을 다시 오른다. 그곳에서 바위 중턱에 간신히 뿌리를 박고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면서도 노랗게 물들이는 나무를 보니, 그의 생명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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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암벽이 머리 위로 올려다보인다. 그 아래 천연 동굴에는 불출암(佛出庵) 터가 남아있다. 이 바위를 돌아 오르니, 서래봉(1.3㎞)·망해봉(1.4㎞) 갈림길이다. 이제 불출봉이 지척이다.드디어 부처가 나왔다는, 즉 깨달음을 얻었다는 봉우리인 불출봉 정상에 도착한다. 그러나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밝은 햇살을 가려 세상을 무명(無明)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이 산에 감춰진 보물들을 감상하기에 덕이 부족한 탓일까, 그래도 간간이 걷힌 구름 사이로 비집고 나온 햇살이 내장산 산등성을 감상케 하는 걸 보니 아직 덕이 남아있긴 한가 보다.불출봉 암봉 정상에 올라 북쪽 발아래로 내장과 용산 저수지를 비롯해 멀리 정읍시를 조망한다. 그리고 동쪽으로 열린 말발굽 모양의 내장산 산줄기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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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출봉에서 서쪽으로 망해봉, 양지봉,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으로 이어지고, 동쪽으로 서래봉이 솟아 있다. 말발굽 안쪽으로 영현봉, 영취봉, 월영봉이 자리하고 있다.연자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 끝자락 봉우리에 자리한 케이블카 전망대를 조망한다. 발아래로 원적골에 자리한 내장사가 고즈넉하다.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그야말로 물처럼 출렁이며 너른 구름과 같으니 불출운하(佛出雲河)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선봉을 마주 보고 앉아 허기진 배를 채우며 남은 여정을 이어간다.불출봉에서 서래봉을 향해 내려섰다 올라서기를 반복하며 암릉을 걷는다. 계단과 난간이 설치되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고, 좌우로 탁 트인 조망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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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작은 암봉에 올라설 때마다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산행 예정시간보다 넉넉히 잡아야 하는 까닭이다. 암릉 끝자락을 내려서면 산뜻한 조릿대 숲길을 걸어 서래불출봉능선쉼터에 닿는다.이곳에서 험준한 암릉이 앞을 막아서니 능선 북쪽으로 길을 내려선다. 서래탐방지원센터(1.3㎞)·서래봉(0.4㎞) 갈림길에서 서래봉으로 발길을 향한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암벽 아래로 돌계단과 데크 로드가 이어진다.이제부터 서래봉을 오르는 가파른 데크 계단을 지그재그로 오른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른 걸음은 어느새 벽련암(1.1㎞)·불출봉(1.3㎞) 갈림길에 이른다. 이 가파른 암벽에 계단이 설치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올랐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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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봉에 올랐으나 불출봉과 마찬가지로 그 흔한 정상석도 없고 서래봉에서 바라본 정상의 안내판만 세워져 있다. 내장산 산줄기를 따라 시선을 돌려가며 천천히 산세를 감상한다.내장사와 벽련암이 손을 내밀면 닿을 듯 한층 더 가깝게 조망된다. 서래봉에서 내려와 다시 암봉 북쪽 허리를 돌아 내려갔다 올라가기를 반복해 서래봉 암릉 끝자락에 이른다.고봉 준령에 못지않은 암봉, 해발 600m대의 산에 이렇게 웅장하고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것이 이 산의 매력이다. 갈라진 바위 옆으로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서 하산이 시작된다.갈 지(之)로 이어지는 하산길, 오후 서너 시쯤이 되자 끄물끄물한 날씨 탓에 산속의 그늘이 짙어진다. 그 속에서도 아름다운 단풍의 자태가 눈부시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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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의 하산길,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단풍을 즐기며 내려서니 구태여 행복해지려고 애걸복걸할 이유가 없다. 그저 없는 시간 내어서 산을 찾는다면 그때부터 행복해지리라.조선 말기 유림들이 모여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고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했던 서보단이 있던 석란정(石蘭亭) 터를 지나고, 조릿대의 안내를 받으며 하산을 계속한다.700여 년 동안 외국 및 외지의 녹차와 교잡되지 않은 순수 정읍자생녹차 품종 지역을 지나자 벽련암에 닿는다. 벽련암 대웅전 앞뜰에서 서래봉을 조망하며 무사 산행에 감사한다.벽련암에서 가파른 포장도로를 내려와 내장사 일주문에 닿는다. ‘3일 동안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요, 100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 티끌이라’하니 비우고 또 순리대로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