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 따라 정상 오르면 초평저수지 풍광 ‘한눈에’…농산물·먹거리 장터도 열려
  • ▲ 진천 농다리축제.(상여 시연)ⓒ진천군
    ▲ 진천 농다리축제.(상여 시연)ⓒ진천군

    충북 진천군 농다리축제가 오는 26~28일까지 3일간 농다리 및 미르숲 일원에서 열린다.

    축제행사로는 농다리예술전과 음악징검다리행사가 상시적으로 농다리 일대와 행사장 주변에서 펼쳐지고, 농다리축제 시장도 행사장 내 상설부스에서 농산물과 먹거리 장터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전시와 체험행사로는 농다리모형만들기, 목각인형·천연비누·한지부채·혈체험 등의 농다리환경체험행사가 있고, 천연염색과 전통차를 시연할 수 있는 농다리생활체험행사도 열린다. 그리고 종박물관체험과 고인쇄문화체험도 함께 진행된다.

    진천 농다리(鎭川籠橋)는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 앞을 흐르는 세금천(洗錦川)에 놓인 아름다운 돌다리이다.

    진천농다리축제는 2000년부터 매년 5월쯤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의 아름다운 농다리 주변과 미르숲 일대에서 화려하게 펼쳐진다.

    농다리에 깃든 역사와 문화유산을 알리고 교각의 축조방식과 장대석의 구조물에서 나오는 예술적 완성미 등 다양한 측면에서 조상의 슬기를 배우고 일깨우는 축제이다.

    진천농다리축제에 가면 초롱길, 하늘다리, 나무꾼옛길을 지나 초평붕어마을까지 환상적인 트레킹을 즐길 수가 있다.

    다리는 언제 어디서 기원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역사는 아주 오래됐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 만큼 다리는 인간의 삶에서 매우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요소이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이고 진보된 기술로 짜임새 있게 다리를 만들기 시작한 때는 삼국시대이다. 이전의 다리는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불편함을 덜기 위해 통나무를 걸치거나 주변의 돌을 띄엄띄엄 놓아 빠지지 않고 다닐 수 있게 한 정도였다.

    작은 낙석으로 다리를 쌓았음에도 장마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상판석의 돌은 아름다운 무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이런 축조 기술은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동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긴 다리에 속한다.

  • ▲ 오는 26일부터 3일간 개최되는 농다리축제 홍보를 위해 10일 오후 축제추진위원회(위원장 장주식) 관계자 20여명이 진천읍 시가지를 돌며 포스터 부착 및 리플렛을 배포하고 있다.ⓒ진천군
    ▲ 오는 26일부터 3일간 개최되는 농다리축제 홍보를 위해 10일 오후 축제추진위원회(위원장 장주식) 관계자 20여명이 진천읍 시가지를 돌며 포스터 부착 및 리플렛을 배포하고 있다.ⓒ진천군

    이처럼 농교는 내를 건너다니는 교량의 의미뿐만 아니라 옛 조상들의 멋과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농교 아래를 흐르는 세금천 물줄기는 초평면을 지나 오창면으로 이어지고, 농교를 건너 산길을 넘으면 초평저수지로 이어지는데,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초평저수지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농교(籠橋)는 얼기설기 얽었다고 해서 농다리, 장마 때는 물이 다리 위로 넘어간다고 해서 수월교(水越橋),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거대한 지네가 물을 건너가는 듯한 형상이라고 해서 ‘지네다리’라고도 불린다.

    특히 겨울 저녁노을이 질 때 다리에 눈이 쌓인 설경은 ‘농암모설(籠岩暮雪)’이라 해서 진천의 여덟가지 아름다운 경치를 일컫는 상산팔경 가운데 6경으로 손꼽힌다.

    농다리는 ‘농 궤짝을 쌓아 올리듯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다리’로 풀이할 수 있다. 실제 농다리는 자연석을 이용해 교각을 축대 쌓듯이 차곡차곡 쌓아 올렸고 농교(籠橋)라는 한자 이름에도 대응된다.

    진천의 농다리는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온 역사적 유물로 1976년 12월 2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받았다.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이 다리는 임 장군이 축조한 것이라고 하며, 사력암질(砂礫岩質)의 붉은 돌로서 음양을 배치해 28수에 따라 28칸으로 지었다고 전한다.

    이 다리는 28칸의 교각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 올린 후 1∼2m의 장대석으로 연결시켜 총길이 93.6m, 교각의 두께 1.2m, 교폭 3.6m이었으나 현재는 24칸만 남아있다.

    임 장군은 고려 태조를 도와 건국에 공을 세운 임희(林曦) 장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고려 무인 정권 말기의 실력자였던 임연(林衍) 장군이 만들었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어 이 일대 호족 세력이었던 임씨 일족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 ▲ 진천 농다리축제.(농사철 다리밟기 시연)ⓒ진천군
    ▲ 진천 농다리축제.(농사철 다리밟기 시연)ⓒ진천군

    진천농다리 몇 개의 전설 중 임연 장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일이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아침, 임연 장군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다가 세금천 건너편에서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여보시오,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일로 내를 건너려 하는 게요?”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친정에 가는 길입니다.”

    여인의 지극한 효성을 딱하게 여긴 임 장군은 잠깐 기다리라 하고 즉시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하루아침에 농다리를 놓아서 부인이 발을 적시지 않고 내를 건너도록 했다. 그러나 돌을 실어 나른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때 용마의 고삐가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고 전해오고 있다.

    생거진천은 ‘살아서는 진천이고 죽어서는 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나 분명하지 않다. 다만, 진천이 물이 많고 평야가 넓어 농사가 잘되는 지역으로 손꼽혔다는 점과 진천과 용인에서 따로 살고 있던 ‘추천석 설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진천 농다리는 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흐르는 냇물은 금강(錦江)과 합류해서 서해로 흘러간다. 천년 전 효성 지극한 여인이 흘린 눈물이 우리의 대지를 촉촉이 적셔 주고 있는지 모른다.

    진천군에서는 몇 해 전부터 농다리 주변 명소화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해마다 농다리축제를 열고 있다. 2005년에는 농다리유래비를 세웠고, 2007년에는 농다리 전시관을 세워 농교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농교를 보려고 찾아오고 있으며 머지않아 세계에서도 농교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진천으로 모여들 것이다.

    이처럼 농교는 오래된 돌다리라는 존재의 의미를 넘어 세계를 진천으로, 진천을 세계로 이어 주고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이 시대의 상징으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