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 가장 중요한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남의 어려움이나 슬픔을 불쌍히 여기는 타고난 마음(측은지심)조차 없다면 “에라 못 돼먹은 것 같으니라고….” 혀를 차야 옳다. 삭막하다. 
    그 본심은 어짊(仁])에서 시작한다. 쫄보는 인(仁)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人)끼리 오손도손 말을 트고 손을 맞잡은 채 둘(二)이서 나란히 길을 걷는 모습이 퍽이나 넉넉하다. 
    칠흑 같은 밤 두물머리 나루터에 버려진 양철쪽배에 몸을 숨겨두고 천주교(서학)를 쫓아 천진암을 오르던 사내가 망토가 벗겨지도록 걷고 또 걸었던 저 먼 길 강진 유배지에서 돌아와 나지막이 가래를 툭 뱉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애틋하게 여기고 익숙한 사이일수록 어렵게 대하라.” 쫄보는 가슴에 담았다.
    뜨거운 바람이 볼때기를 달구던 갑진년 유월 이래 갇힌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말을 트려 대구교도소 담장 곁을 걸었다. 속이 갈기갈기 찢겼다. 대구고등법원 용왕이 바다를 둘러본다. 
    갇힌 사람은 한순간 발을 헛디뎌 오염된 바다에 빠져 해녀가 되었다. 용왕이 냅다 해녀의 팔을 잡아 용궁에 가두었다. 오염된 바다에서 팔 년을 갇혀 있어야 한다. 뭍으로 나올 수가 없다. 
    해녀는 단 한 번의 물질을 위해 깊은 바닷속에 몸을 던진다. 파도와 풍랑이 테왁을 깨트렸으니 해녀는 팔 년이 지나야 물 위로 올라 숨비소리를 토할 수 있다. 
    쫄보와 나란히 걸어야 하는 해녀의 삶이 섧다. 너무도 섧다. 쫄보는 해녀에게 테왁을 던진다.

    부모는 있으나 한낱 고아 소녀에 불과했던 해녀는 키다리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을 위로했고, 한방을 쓰는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괴롭고 힘든 수감생활을 보내게 된다. 해녀는 미용 기술을 배우고 온갖 책을 읽으며 소양을 쌓아나갔다. 그럴수록 해녀는 키다리 아저씨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지만, 점점 편지 오는 횟수가 줄어든다. 꿈에 본 키다리 아저씨 너른 등 뒤로 땀이 흥건하다. 해녀는 그런 키다리 아저씨를 오매불망 기다린다. 
    키다리 아저씨는 어질고 애틋하지만 어려운 존재였다. 남의 어려움이나 슬픔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했다. 키다리 아저씨는 철창 너머 눈물을 훔치는 해녀에게 매달 편지를 보내고 편지를 받겠다는 약속을 했다. 
    해녀는 길을 잃고 오염된 바다에 갇혀 있더라도, 키다리 아저씨는 잃지 않을 것이다. 해녀에게는 지금이 가장 중요하고, 키다리 아저씨에게는 맹자가 걸어온 길과 정약용이 걸어온 길을 해녀에게 열어주어야 하겠기에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은 하는 것이라 한다. 
    뜨거운 열기가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 364 아스팔트를 달군다. 키다리 아저씨가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넌다. 
    2024년 6월 10일. 인간이 느끼는 두 번째 큰 고통이 갇힘일진대 어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자적하겠는가, 하여 찰나라도 숨비소리 듣고자 횡단보도를 건넌다. 이재룡 달게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