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든 패자든, 구두닦이에 구두 닦아본 적 있는가?객석에 혼자 남아 조명 꺼진 무대 응시하는 ‘나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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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선거’가 끝났다. 구두닦이는 걸레를 빨지 않는다.손톱 밑에 까만 때가 끼었다. 걸레를 손에 짠짠 하게 감고 구두에 물을 묻히거나 침을 뱉는다.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히도록 문지르고 나면 반들반들 광이 난다. 속칭 물광을 낸다.갈라진 손등에 검은 때가 끼었다. 구두약을 바른 후 불로 한번 쓱 지져주고 난 뒤 잘 마른걸레로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히도록 문지르고 나면 반들반들 광이 난다. 속칭 불광을 낸다.구두에 적당한 구두약을 발라 마른걸레로 반복적으로 문질러 주면 광은 저절로 난다? 그렇지 않다. 구두약을 구두에 입히는 단순한 작업에도 숙달된 기술을 필요로 한다.온갖 정성을 쏟아붓고 세월을 함께 한 물건에서는 반들반들 광이 난다. 손때 묻었다고 한다. 할머님이 그토록 애지중지하셨던 무쇠솥과 장롱, 어머니가 가슴에 품었던 찬장 속 그릇과 세간살이, 아버지가 늘 앉아 계시던 책상 그리고 눈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던 돋보기를 보자면 눈물이 와락 솟는다. 목이 멘다. 목구멍에서 꺼억꺼억 마른 소리가 들린다. 무쇠솥·장롱·찬장 속 그릇과 세간살이·책상, 돋보기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면 광택이 난다.구두닦이가 걸상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구두에 광을 낸다. 오랜 세월 구두를 닦았다. 걸레는 날긋날긋하게 해지고 덕지덕지 까만 때가 끼었다. 걸레를 빨지 않고 가만히 그늘에 말린다. 다 마르고 나면 툭툭 털어 다시 구두를 문지른다.구두닦이는 죽음보다 큰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는 낙선자의 뒷모습을 보았다. 낙선자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 심장을 도려내는 칼질을 마다하지 않았다.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긴 것입니다. 최고의 축제를 불꽃처럼 불사르셨습니다. 그런데 캠프 식구들은 다 어디 가고 ‘쯔쯔….’ 끝까지 주군을 지켜야지.” 뒷맛이 사뭇 다르다.승자는 승자대로 들러리 섰던 ‘골패들’끼리 눈에 독기를 품은 채 자리를 차지하려 ‘대가리 피 터지게’ 짱구(머리)를 굴릴 것이고, 패자는 패자대로 내가 잘했느니 네가 못 했느니 위아래도 없이 손가락 삿대질로 종칠 것이다. 늘 그래왔다.또 다른 글이 서슬 퍼런 칼날을 잠재워 준다. “차가운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잘 피어있는 꽃에 차가운 눈이 잠시 덮쳤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면 눈이 녹아 우리의 꽃은 다시 피어납니다. 그 꽃을 응원하는 우리가 있으니 우리의 꽃도 힘내시고 진심으로 도와준 모든 분 고생하셨습니다.”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객석에 혼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바라보며 텅 빈 무대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나는 광대였던가? 그 무대 위에서 목이 쉬도록 진정을 토해냈던 시간은 아스라이 사라져 버리고 홀로 양탄자를 걷어내고 있는 내가 을씨년스럽다.찝찝하고 자질구레하고 거창한 것은 질색이다. 단언하건대 구두닦이를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1929년 월스트리트 전설의 투자자 조 케네디가 구두를 닦기 위해 구두닦이 소년 앞에 앉았다. 그때 구두닦이 소년이 조 케네디에게 말을 던진다. “손님, ××종목이 오른다고 하는데 사세요.” 그다음 날, 조 케네디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모두 처분한다. 왜 그랬을까? 당시 주식시장은 최고의 호황이었다. 하지만 조 케네디는 구두닦이 소년마저 주식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하락의 신호라고 판단했다. 조 케네디의 예상은 적중했다. 1929년 10월 미국 대공황이 시작된다. 구두닦이 소년 덕분에 시장의 버블을 파악할 수 있었고 재산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이다.승자든 패자든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닦아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구두닦이 앞에 앉아야 한다. 구두닦이가 진정한 백성이다.길 건너 신작로 사거리에서 낙선 인사를 한다. “부족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구두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불로 한번 쓱 지져주고 난 뒤 잘 마른걸레로 닦아주고 싶다. 구두닦이에게 진심을 다해 손을 내민 낙선자의 뒷모습이 수려하다.2024년 4월 12일. 인심을 잃지 않아야 후일을 기약할 수 있다. 이재룡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구멍 난 글을 모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