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쫄보’의 첫사랑…‘추억을 짜낸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주인집 전화번호는 3국 1084다. 청주시 수곡동 83-21번지는 어린 시절 쫄보(겁쟁이)가 동네를 휘젓던 곳이자 집주인이던 청주중학교 수학 선생님의 집 주소다. 쫄보의 사글세 집이기도 하다. 육십이 훌쩍 지난 쫄보가 아직도 자신 있게 외우고 있는 숫자가 일곱 개 있다. 청주시 남주동 516번지, 청주시 석교동 125-77번지, 청주시 수곡동 83-21번지, 군번 13242088, 3국 1084, 52국 8857, 마지막으로 주민등록번호다. 태어난 곳, 국민학교 다니던 곳, 중‧고등학교 다니던 곳, 군대에서 목에 걸어준 번호, 주인집 전화번호, 석유부판점 가게 번호, 나라에서 덤으로 준 번호가 전부다. 
    전설의 양백여상은 쫄보가 호쿠를 풀고 쳐들어가기에는 벅찬 철옹성이었다. 청주시 복대동 대농방직 정문 입구에는 철조망과 바리케이드가 삼중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 오른쪽에는 특수부대 복장을 한 아저씨 2명이 반짝이는 곤봉을 들고 눈을 부라리며 지키고 서 있다. 양백여상 기숙사는 대농방직 마당을 가로질러 산 아래 교회를 마주 보고 진‧선‧미 3동이 있다. 황금란은 그곳에 숨겨져 있다. 모자를 벗어 가방 속에 처박고 교복 카라를 꺾어 빗장뼈 속으로 밀어 넣은 다음 가방을 어깨에 둘러멘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숙사를 향해 내달린다. 삑 호루라기 소리가 높고 강하게 들리면서 타다닥 누군가 쫄보 뒤를 쫓는다. 마당을 다 지나기도 전에 멱살 잡혀 정문으로 끌려 나와 두 손을 든 채 무릎을 꿇었다. 
    월현(月絢) 마을은 보름달이 아름답게 뜨는 마을이라는 뜻이 있으며 옛날 월현 마을에서 보는 보름달은 다른 곳에서 보는 달보다 크고 계곡을 따라 형성된 월현 마을에 쏟아지는 달빛이 너무 고와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보름달을 구경하러 왔다. 괴산 가는 신작로에서 월현 마을에 갈라치면 가파른 오르막길을 꽤 걸었다. 월현 마을은 황금란 고향이다. 눈이 시리고 가슴이 벌렁 이도록 예뻤다. 여동생 황은란, 황동란 막내 남동생 이름은 가물거리지만, 제주도에서 핸드볼 선수로 명성을 날렸다. 
  •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검정색 다이얼 전화기.ⓒ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검정색 다이얼 전화기.ⓒ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추석이 되었다. 대농방직은 3일간 문을 닫았다. 청주 전신전화국 3번 부스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린다. 50원을 내고 전화국 여직원에게 말한다. “누나, 사리 월현 마을 이장 집에 시외전화 걸려고 왔어요.” 먹지를 대고 3번이라고 쓴 습자지 영수증을 받았다. 검은색 전화기를 들자 전화 교환원 누나가 친절하게 안내한다. “잠시 기다렸다, 이장님 나오면 통화하세요.” 드르륵드르륵 한참 동안 신호음이 들리다 덜커덕 굵직하게 긁힌 목소리가 수화기 속에서 들린다. “월현 마을 이장입니다.” “아 네, 황금란 씨와 통화를 하고 싶은데요.” 이장님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쫄보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마을 방송을 켜는가 싶다. “에에 마이크 시험 중, 마이크 시험 중입니다. 이장입니다. 금란이 아버지는 청주에서 시외전화가 왔으니 이장 집으로 와 주세요.” 
    기다림은 쫄보를 안달 나게 한다. 월현 마을을 가기 위해 금수장(상당공원)에서 무작정 버스를 탄다. 증평역에서 내리자 온통 벽돌 공장뿐이다. 30분 정도 기다리다 괴산 가는 버스로 갈아타자 버스는 도안을 지나 모래재 고개를 힘겹게 넘어 내리막길을 한참 달리다 화곡상회(화곡정류소)에서 멈춰 선다. 종점이다. 괴산읍까지는 또다시 25인승 마이크로버스로 갈아타고 가야 했다. 금란이는 추석 때도 공장에서 잔업을 한다며 고향에 오지 않았다. 
    쫄보는 사람들 바글거리는 서울로 대학을 갔다. 두 달 남짓 지나 오리엔테이션이 끝나자 청주로 내려온 쫄보는 매형 가죽점퍼를 빌려 입고 서울 말씨 흉내 내며 팔자걸음으로 본정통을 지난다. 때마침 ‘오부 가리(5푼 길이)’로 머리를 기르고 운동화 꺾어 신고서 다리를 떨며 땅바닥에 침 꽤 뱉던 친구를 만난다. “어 오랜만이다. 대농방직 다니던 공순이 황금란을 물레방아 룸살롱에서 봤는데….” 물레방아 룸살롱은 방귀 좀 뀐다고 하는 한량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아는 명소였다. 
  •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옛 고소터미널 모습.ⓒ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옛 고소터미널 모습.ⓒ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눈이 돌아간 쫄보는 청주순복음교회 가는 골목길로 뛰어가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어둠침침한 조명이 뱅뱅 돌아가고 칙칙한 음악이 물레방아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에 섞여 어지럽다. 어둠 속에서 빛바랜 황금란의 모습이 보이고, 황금란 어깨에는 장발머리 아저씨 팔이 올려져 있다. “야, 황금란” 순간 흠칫 놀란 일행들의 표정이 버터기름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2024년 3월 24일. 주성중학교 운동장 플라타너스 아래 나무 벤치에 파란색 손수건을 펴 주었다. 쫄보는 그 위에 앉았다. 청주 서문동 고속버스터미널 앞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지면서 내일 낮 12시 ‘청원제과’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이재룡 추억을 짜내 너른 배틀에 올리고 한 올 한 올 글을 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