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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복(伏)날 인왕산 골짜기로 끌려가던 개의 기억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2-07-15 14:45 | 수정 2022-07-17 16:10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 1. 필자는 60~70년대 서울 서대문 인왕산 중턱 동네에서 대학에 다녔다. 지금은 도심 아파트 단지로 변했지만, 큰비가 내리면 비포장 길이 계곡처럼 움푹 파였고, 마을 공동 수도를 썼고, 분뇨 수거차가 올라오는 날이면 온 동네가 뒷간 통을 비우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지방에서 일거리 찾아 상경한 사람들이 터를 내려서 살던 곳이라 팔도 사투리가 뒤섞인 동네였다. 인심이 그리 박하진 않아서 이웃끼리 음식도 나눠 먹고 복더위에는 복날 치레도 동네 남정네들이 함께했다.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50년 훨씬 전인 당시에는 동네 남정네들이 모여 복날에 먹는 보신탕이 특별한 먹거리였다. 사회 분위기도 보신탕에 큰 거부감이 없었다. 어느 해 여름날 동네 한 남정네가 개 한 마리를 끌고 인왕산 계곡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추렴해서 복날 치레하려고 사 온 개를 끌고 도축하러 가는 거였다. 하찮은 똥개라도 개도 영물이라 죽음 앞에선 본능적으로 제 목숨 부지하려는 저항의 몸짓을 하기 마련이다. 그때 안 죽으려고 버티다 질질 끌려가던 개의 슬픈 표정과 몸짓이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2. 지금은 우리 사회도 개와 같은 축생의 목숨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 반려동물 애호 선진 사회가 되었지만, 50년 전 그때만 해도 축생의 목숨에는 무관심했었고 복날 동네 산 중턱에서 개 도축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견생의 목숨을 참 가벼이 여겼던 그런 50여 년 전의 광경을 연상시키는 일이 2019년 문재인 전 정부에서 벌어져서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북한과 관련해서 문재인 정권에서 덮고 가려고 했던 사건 중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이 정권이 바뀌면서 소상히 드러나고 있다. 서해에서 표류하다 북경계선 안으로 들어간 바람에 북한군에게 조리돌림당하다 사살 소각당한 ‘해수부 공무원 실종사건’과 함께 ‘탈북어부 강제 북송 사건’은 언젠가 드러날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설령 지난 대선에서 전 정부가 정권을 재창출했더라도 국민의 의혹을 잠재우기 어려운 사건이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통일부에서 2019년 11월 7일에 있었던 ‘탈북어민 강제 북송 장면 사진’이 공개되었다. 탈북어민 두 명이 군사분계선에서 개 끌려가듯 북한군에 넘겨지는 사진이다. 탈북어민이 경찰특공대원에 둘러싸여 판문점 군사분계선으로 끌려가다가 그 선을 넘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 군사분계선을 넘자 낙담한 듯 머리 숙이고 얼굴을 감싸는 모습, 북한으로 안 가려고 발버둥 치다 옆으로 쓰러지는 어민들을 한국 경찰특공대원들이 강제로 끌고 북한군에 인계하는 모습 등등, 통일부에서 공개한 사진만으로도 전 정권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자필로 분명히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탈북어민들을 고문 후 처형될 게 분명한 사지로 왜 뭣 때문에 강제 송환했을까? 그 이유와 경과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소식통에 따르면 강제 북송된 탈북어민들은 관할 지역인 함경북도 보위부에서 살인죄와 조국 반역죄로 조사받고 즉결 재판 직후 처형당했다고 전한다. 강제 북송된 당시에 유엔 북한 인권 특별보고관이 우리 정부에 강제 북송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던 걸 보면 유엔에서도 탈북어민 강제 북송을 이미 파악하고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거다. 

미국 연방의회의 ‘톰 랜스 인권위원회’ 공동 의장인 크리스 스미스 공화당 하원 의원도 통일부가 공개한 북송 사진이 “보기 고통스럽다. 정당한 절차 없이 한국의 전 정부에서 이뤄진 북송을 규탄한다. 철저한 조사가 여전히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3. ‘탈북어민 강제 북송’을 전 정권에서 몰래 처리하려 했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그것도 북송 관계자에게 보내온 문자메시지가 국회 출입 기자 카메라에 포착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들통나자 당시 정권 고위 관계자들은 탈북어민 강제 북송 이유로 ‘귀순의 의사가 전혀 없었다(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분명히 했다(당시 김연철 통일부 장관)’, ‘그자들은 희대의 살인마(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실장)’라는 악의적 발언으로 변명만 하고 대충 깔아뭉개려 했다.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다. 

그렇게 개 끌려가듯 강제 북송된 탈북어민 두 명은 얼마 안 지나서 북한에서 조국 반역죄와 살인죄로 처형됐다. 문재인 정권의 이념적 친북 정치 목적 때문에 탈북민의 목숨을 개 목숨보다 더 가벼이 여긴 반인권적 처분의 소치이다. 
 
북으로 송환되지 않으려고 탈북어민이 발버둥 치던 광경 사진과 50년 전 복날 인왕산 골짜기로 끌려가던 개의 모습이 겹치면서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성사 불가한 ‘김정은 남방(南訪)’을 어떻게든 성사하게 시켜 보려고 탈북어민의 목숨을 개 목숨보다 더 가벼이 처리했던 문재인 정권의 인권 말살 행위는 그 몇 장의 사진으로도 큰 벌을 받아야 마땅한 증거가 된다. 인민의 인권을 터럭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북 김정은에게 탈북어민을 공납한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부산 한·아태 정상회의 초청’을 들어줄 거라 여겼다면 이 또한 멍청한 판단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야당 측 인사들은 반성은커녕 뻔뻔하게도 문 정권을 변명하기 바쁘다. 어느 친야 평론가는 “정권이 교체되어 해석이 변했다. 범죄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들은 단순한 귀순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방송에 나오는 야 측 정치인이나 친야 평론가들은 말을 맞춘 듯 하나같이 동료 16명을 살해한 희대의 살인마라는 논조로 같은 말만 한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적으로 하는 것 또한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이다. 국민은 그들보다 몇 배 더 똑똑하고 현명한 줄 모르는 모양이다.

#4. 늘 ‘사람이 먼저’라 자랑스레 떠벌렸던 문재인 정권이 저지른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국제적으로도 그냥 둘 일이 아니게 되었다. 미국 인권 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HRNK)의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도 “강제 북송은 비열하고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법의 심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라 말했다고 전한다. 마땅히 그 자초지종이 밝혀지고 그 책임자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의 핵심 당사자들이 모두 미국으로 출국하여 귀국하지 않고 있다. 이들이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세계 어디에 숨은 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요즘 권력에서 물러나 수다를 많이 떠는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말처럼 “부귀영화는 풀잎의 이슬”이라는 말을 절실히 느낄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다. 세상 이치가 늘 그랬는데,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어도 진즉 처신을 제대로 잘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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