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경화대반점’…‘名聲’ 뒤엔 ‘人性’이
  • ▲ 청주에서 3대째 중국요리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경화대반점’ 이전명(李傳銘) 사장.ⓒ박근주 기자
    ▲ 청주에서 3대째 중국요리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경화대반점’ 이전명(李傳銘) 사장.ⓒ박근주 기자

    대(代)를 이어가며 청주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온 ‘경화반점’이 ‘경화대반점’으로 도약을 하는 배경에 주위의 시선이 쏠린다.

    ‘경화대반점’은 충북 청주에서 3대째 중국요리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전명(李傳銘) 사장이 서원구 산남동에 마련한 연회형 대형식당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경화반점’을 운영한다. 이 사장은  “뼛속까지 ‘세프’, 이웃과 더불어 사는 ‘요리 철학관’”으로 불린다.

    경화대반점은 지하 1층에는 동시에 2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연회장을 비롯, 각 층별로 수 십명에서 십 수명이 중국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설로 꾸며졌다.

    결혼식까지 치를 수 있는 공간이고, 대규모 회의나 회식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청주의 유일한 중국 식당이다. 아들은 ‘경화대반점’으로 도약하고, 아버지는 ‘경화반점’으로 중국음식점가의 명장으로 뒤를 받쳐주는 셈이다.

    이곳에서는 사천요리부터 연태지역 등을 대표하는 산동요리, 북경요리 모두가 가능하다. 이 분야 전문 요리사가 7명이다. 한번에 40~50명이 들이닥치는 경우도 있어 서너 명의 요리사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앞으로 더 초빙할 생각이다.

    시내 번화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주위에서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약하기 힘들 정도로 붐빈다.

    청주지역뿐만 아니라 대만 여행객, 서울이나 대전 등 외지의 방문객도 많이 찾는다.

    이처럼 고객이 다양한 배경은 뭘까.

    이 사장은 “아버님이 하시는 청주 중심 상권 내 ‘경화반점’이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손님대비 연회 공간도 부족해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이제는 주차 문제로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시설도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곳을 찾는 오랜 단골손님들은 여전히 전통을 잃지 않고 있는 ‘맛’에 점수를 더 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양장피’나 ‘전과복’ 등의 대표 요리들은 ‘경화반점’의 전통적인 맛을 유지하고 있다고 칭찬한다. 퓨전 요리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도 높다.

    왜일까?

    이 사장은 “맛을 유지하는 비결은 재료에 있다”며 “옛날과 같은 재료를 쓰되 화학적 성분으로 강한 맛을 내려하지 않고, 원 재료의 풍미를 살리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버님이 경영하는 ‘경화반점’이 더 낫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여기가 더 좋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다”며 “전통적 음식이든 새로운 ‘퓨전 요리’든 좋은 재료와 좋은 요리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경화대반점’은 최근 중국 베이징 등 현지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요리사를 채용하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중국식 ‘장어요리’, ‘소꼬리 찜’ 등 변화를 준 ‘퓨전 요리’도 내놓고 있다.

    단체 회식에서 중국음식 이외 다른 취향을 요구하는 손님들의 요구에 맞춘 것. 결과는 대 만족이다. 전통에 ‘퓨전’식 요리를 함께 즐길 수 있다며 고객들이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어서다.

    이러한 중국음식점의 대형화는 모험이라는 외부의 우려를 물리치고 성공의 길로 접어들게 된 배경은 뭘까.

    이 사장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딱 성공의 열쇠를 떨어뜨려준 것이 아니었다.

    할아버지가 청주에서 이미 유명한 ‘태화관’이라는 중국식당으로 이름을 날렸고, 다섯째 작은 할아버지가 ‘태동관’을, 넷째 작은아버지가 ‘태동반점’으로 일가를 이뤘다. 아버지도 물론 ‘경화반점’으로 일가를 이뤘다.

    이미 뼛속까지 요리사다.

    이러한 집안 내력이 그의 현재를 만들어가는 배경이다.

    충북대 약학과를 졸업한 그가 전문직인 약사의 길을 마다하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이러한 가정환경이 그에겐 태생적으로 편안함을 줬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들게 한다.

    그는 “가업을 잇는데 힘들기 때문에 반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주위의 의문이 있지만 전통을 이어가며 순리대로 사는 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면서 “어려서부터 기계나 목공 등 뭘 만들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리도 그런 차원이다. 이러한 것들이 요리과정에 그대로 녹아들었다”고 은근히 자랑도 했다.

    순리대로 산다는 말에 옛 어른들이 하신 ‘순리 따르는 사람 치고 모진 사람 없다’는 말이 생각나 취미를 물었더니 “잘하는 것은 없는데 ‘술’과 ‘차’를 좋아한다”며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친구들이 많다. 그들이 도와 준다”고 답했다.

    이 사장도 통 큰 보답을 했다.

    그는 현재 충북대에 매달 100만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내놓고 있다. 모교인 충북대에 5000만원의 발전기금 기탁서를 썼고, 이를 채울 때까지 기부를 계속할 생각이다.

    그의 스승인 윤여표 전 충북대총장은 “굉장히 놀랐어요. 얼마 전에 ‘경화대반점’을 짓는데 50억원 가까이가 들어가 대출도 받고 한다고 해서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생각해 나중에 돈을 벌면 그때 가서나 하라고 했는데 ‘언제 그러겠냐’며 오더니 약속을 하고 간 뒤 매달 이렇게 돈을 보내오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윤 전 총장은 충북과총 회원들과 가진 오찬 회동에서도 “더불어사는 사회의 가치에 대해 정말 공감하고 실천해 줘서 스승으로서 보람을 느낀다”고 제자를 대견해 했다.

    이렇게 주위와 어울리며 살아 온지도 41년이 됐다.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아내와는 두 살 차이고 초등학교 3학년인 딸도 뒀다. 딸은 한 눈에 봐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처럼 귀엽게 생겼다. 아빠를 닮았다.

    “아버님께서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주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에게서 ‘풍미’와 ‘품격’이 깃들고 있는 ‘경화대반점’의  향기가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