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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인이 못되는 것 같습니다. 허허.”
선출직 초대 통합청주시의 수장인 이승훈 시장의 웃음 섞인 말에서 그동안 통합시장직을 맡은뒤겪어온 고뇌와 노력이 그대로 배어 나왔다.
청주시는 다른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는 달리 청주·청원 ‘통합’의 완성에 대한 짐이 초대 시장에게 짊어져있다. 비록 당적을 갖고 주민들의 투표로 선출된 어엿한 ‘정치인 시장’ 자리지만 이 시장의 행보는 정치인이 아닌 주민의 대표 ‘시장’ 그 자체의 모습이다.
지난 21일 약속한 인터뷰를 위해 집무실에서 만난 이 시장은 검게 그을린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해 보였다.
이 시장은 “오늘 농업관련 현장에 다녀오느라 얼굴이 많이 탔다”며 바쁜 와중에 반갑게 취재진을 맞았다.
벌써 1년 반이란 시간이 흘렀다. 역사적인 주민 투표에 의해 탄생한 통합청주시 초기에는 60만 도시에서 80만 도시로 순식간에 커져버린 ‘대형 통합시장’ 자리에 대한 관심으로 여야를 비롯한 정치인과 주민들의 관심이 대단했었다.
당시 이 시장과 남상우 전 시장이 새누리당에서 공천권을 겨뤘고 야권에서는 한범덕 청주시장과 이종윤 전 청원군수가 민주당에서 새정치연합이라는 신당 아닌 신당의 탄생과 맞물려 후보 경선이 치열하게 진행됐다.
본선에서 여당 주자로 뛴 이 시장은 야당의 현직 한 시장과의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초대 시장으로 선택 받았다. 숨 막히는 선거전을 치를 때 이 시장은 “비전과 정책, 추진 능력으로 승부하겠다”며 그 흔한 비방 성명 한번 내지 않고 ‘성실함’ 하나로 집중했다.
스스로 정치인이 아닌 것 같다고 자평하는 이유와 모습이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라는 증거다. 이 시장은 취임 초기부터 모든 행정력을 ‘통합’에 집중했다.
이 시장은 ‘통합’의 과정을 정치적 이념과 구호가 아닌 시민과 현장에서의 ‘길’을 택했다. 그 길은 상징적 의미가 아닌 실제로 사람이 다녀야할 ‘도로’의 개선에서 시작했다. 전국 도로망을 뚫기 위해 포클레인을 동원한 게 아니라 ‘삽’을 들고 이웃과 이웃의 길을 먼저 텄다.
통합 전, 청주를 둥글게 감싸고 있던 청원군은 같은 생활권에 살면서 많은 차별과 불이익을 받아 왔다. 전 ‘시’와 ‘군’은 각기 다른 행정권으로 지도상의 경계선을 넘을 때 마다 엄청난 제약과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이 시장이 공약 중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옥산교 확장’만 보면 바로 이해 할 수 있다. 청주 공단과 청주역, 옥산, 오창을 잇는 옥산교의 출퇴근 시간은 서울 중심가의 러시아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비좁고 혼잡했지만 시도 군도 마치 다른 동네 일로 미루며 누구하나 나서지 않았다.
“그렇게 그저 ‘남의 일’로만 떠넘기면서 겪게 되는 시민의 불편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통합의 시초”라고 이 시장은 말한다.
현재 옥산교 확장 공사는 그동안 개별사업에 머물다가 전체 계획에 포함돼 진행 중이며 통합 효과의 상징적 사업이 됐다.
‘길이 있으면 통한다’는 미래 지향적인 말을 이 시장은 ‘길을 만들어 통하게 한다’는 현실적인 명제로 바꿔 놓았다.
이 시장은 이외에도 도로 확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얼마 전 오창과 시내 권을 연결하는 ‘LG로’ 개통과 ‘하이패스 전용IC’ 사업 추진도 모두 ‘도로 먼저’를 선택하고 시행하는 이 시장의 작품이다.
“몇 년 후에 대기업이 들어오도록 힘쓰겠다”는 막연한 꿈보다 “오늘 육거리 시장가고 청주 터미널 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이 이 시장이 말하는 현실적인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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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시의 큰 명제 중의 하나인 청주산단의 탈바꿈에 대한 열정도 만만치 않다. ‘100만 도시’를 지향하는 청주시의 현재 공단지역은 그야말로 ‘굴뚝’ 지대다. 그나마 LG와 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반도체와 전지 등 첨단 산업을 이끌고 있지만 지역 중소기업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이를 위해 이 시장은 ‘청주테크노폴리스’라는 첨단 산업단지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현재 기초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사업 초기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 시장은 “청주 발전을 위해 꼭 이뤄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사업을 추진했다“며 “정말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올해는 청주의 상징인 직지의 위상을 키우기 위해 대규모 행사인 ‘직지코리아’를 준비 중이다. 그런데 사업초기 기자회견을 통해 프랑스에 있는 원본 ‘직지’를 전시할 수도 있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모든 관심은 ‘직지가 오느냐’에 쏠려 버렸다.
직지 원본이 최초로 국내에 들어와 전시 된다면 그야말로 ‘이벤트’가 될 수 있겠지만 프랑스는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반출 자체를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장은 “직지가 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현재 추진 과정에서 외교적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어 “직지코리아는 직지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시도하는 행사로서 꼭 직지가 오지 않아도 행사의 의미와 방향은 변치 않는다”고 에둘러 말했지만 처음부터 ‘원본 전시’ 같은 현실성 희박한 아이템을 섣불리 공개하지 않는 것이 나을 뻔 했다.
행사 관계자들도 “직지 원본이 오고 안 오고를 떠나서 행사를 진행 한다”고 설명하지만 김이 빠진 건 어쩔 수 없다. 이 시장의 스타일대로 좀 더 현실성 있는 계획과 추진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그에 맞는 계획과 홍보를 통해 ‘청주 너머의 직지’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외에도 지난해 대성공을 거둔 ‘젓가락 축제’를 올해도 이어갈 계획이며 5월쯤 전국 최초로 ‘드론 축제’도 준비 중이다.
청주시의 현안 문제에 대해 이 시장은 “오송 역세권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KTX오송역은 영호남을 연결하는 충북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됐지만 실제 이용 현황은 세종시 공무원들의 출퇴근용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어 ‘오송역세권’ 개발은 충북도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부분이다.
하물며 이번 20대 총선에서 세종시에 출마한 이해찬 의원(더민주)이 “KTX세종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해 지역의 여야가 한목소리로 “말도 안 돼”를 외칠 정도로 충북에서 오송역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시장은 이에 대한 여러 구상에 대해 “심도 있게 계획 중”이라고 언급했다.
이외에 청주노인병원문제 해결도 큰 과제다. 얼마 전 세 번째 수탁자였던 의명의료재단이 돌연 수탁포기를 선언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이 시장은 “의명의료재단이 여러 가지 문제로 수탁을 포기해 안타깝다”며 “곧 재 공모 절차를 밟아 다른 수탁자를 찾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인병원 문제는 현재 시청 정문 옆에서 장기 농성중인 옛 노인병원 노조와의 우선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큰길을 가기위해 멀리보기보다 오늘 내 옆의 시민을 품었다”는 말처럼 행동하는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이날 마주한 이 시장은 정치인이라기보다 ‘지역의 일꾼’이라는 말이 잘 어울려 보였다.
물론 안팎으로 어려운 문제도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 그러나 이 시장이 진정한 지역의 일꾼이라면 “길 먼저 내고 사람이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가 이뤄지는 법”이란 의지대로 통합의 기초를 튼튼히 마련해 ‘100만 청주시’의 초석이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