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자연 고사’에 변상·재기증 요구… “도저히 납득 불가”‘관장 찍어내기’ 의혹 확산… “나무 아닌 사람 겨냥” 비판‘정년 앞둔 간부’까지 중징계 요구… “불명예 퇴진 강요” 지적시민연대 “직원들 극심한 압박”… 감사 담당자 전원 ‘역(逆)감사’ 촉구
  • ▲ 지난해 12월 대전·충남·세종·충북 지역 교회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화분형 크리스마스 트리.ⓒ독립기념관 정상화를 위한 시민연대
    ▲ 지난해 12월 대전·충남·세종·충북 지역 교회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화분형 크리스마스 트리.ⓒ독립기념관 정상화를 위한 시민연대
    혹한 속 자연 고사한 성탄트리를 이유로 독립기념관 간부들에게 변상과 재기증을 요구한 국가보훈부 감사 처분을 두고, ‘감사권 남용’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 겨울 지나며 고사한 나무… “그 자체가 징계 사유인가”

    7일 독립기념관 정상화를 위한 시민연대에 따르면, 문제가 된 성탄트리는 지난해 12월 대전·충남·세종·충북 지역 교회와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화분형 크리스마스 트리였다. 

    기증자들은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고 성탄의 의미를 나누자는 취지로 나무를 마련했고, 독립기념관은 이를 겨울철 야외에 설치해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혹한기를 지나며 일부 화분의 나무가 자연 고사했다. 

    이 단체는 “화분 나무를 겨울 장식물로 전시하면 일부 고사는 상식적인 자연 현상”으로, 숨기려 한 사실도 아니었다. 실제로 고사한 나무는 약 20개 안팎으로 전해졌다.

    시민연대는 “기증자는 성탄절 기간 동안의 상징적 전시와 의미를 기대했을 뿐, 혹한기 이후까지 100% 생존을 보장하는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며 “이를 관리 부실이나 위법 행위처럼 몰아가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죽은 나무, 개인 변상하라” “기증자에게 다시 받아오라”

    논란을 키운 것은 국가보훈부 감사실의 후속 요구였다. 감사실은 독립기념관 사무처장과 안전관리부장에게 고사한 나무에 대해 개인 변상을 하거나 기증자에게 다시 찾아가 동일한 수량을 재기증받으라는 식의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연대는 “기증은 상징성과 공공성을 나누는 행위이지, ‘재사용 보장’ 계약이 아니다”라며 “죽은 나무를 이유로 공무원 개인에게 변상이나 재기증 교섭을 강요하는 감사는 기부 문화를 뿌리째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전국 가로수와 공공조경지, 산림 식재지에서 자연 고사가 발생할 때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각 지자체와 산림청 담당자 상당수가 모두 중징계를 받아야 할 것”이라며 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 “그런데도 이런 비상식적 기준을 유독 독립기념관에만 적용했다”는 게 시민연대의 주장이다.

    ◇ 정년 앞둔 사무처장까지 중징계… “상처만 남기는 감사”

    이번 감사 처분 요구에는 독립기념관 사무처장과 안전관리부장이 모두 포함됐다. 

    특히 사무처장은 국가보훈부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뒤 독립기념관으로 옮긴 인사로,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연대는 “법리적으로 다툴 여지가 있다 해도, 정년을 앞둔 간부에게 ‘고사한 화분 나무’를 이유로 중징계를 씌워 불명예 퇴직을 강요하는 모양새”라며 “지나치게 과도하고 비인도적인 감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공시설의 조경·수목 관리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 고사를 이유로 개별 공무원에게 변상과 재기증을 요구하는 감사 논리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알 것”이라며 “이런 식의 감사가 정당화되면 어느 현장 공무원도 안심하고 일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 “다섯 번 넘는 감사에 직원들 ‘심리적 한계’”… 보훈부가 ‘감사 대상’

    시민연대는 이번 사안이 단발성 문제가 아니라, 수개월째 이어진 집중 감사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했다. 

    독립기념관은 최근 감사원, 국회 국정감사, 국가보훈부 특정감사 등 다섯 차례 이상 감사가 겹쳐 진행되면서 3개월 넘게 고강도 압박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과도한 심리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시민연대 측은 “말도 안 되는 사안까지 추궁을 당하다 보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직원이 적지 않다”며 “언로까지 막힌 상황에서 시민연대에 하소연과 제보를 보내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시민연대는 “이제는 국가보훈부 감사실 자체가 감사 대상이 돼야 한다”며 △성탄트리 고사 관련 중징계 요구 철회 △이번 감사를 주도한 감사 담당자 전원에 대한 역(逆)감사 △억지·표적·정치 감사 관련 책임자 징계를 공식 요구했다. 

    또 “독립기념관을 정치 세력의 권력 투쟁 도구로 전락시키는 모든 행태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정치권에선 ‘김형석 관장 사퇴’ 입법·집회…연일 압박

    한편 독립기념관 김형석 관장을 둘러싼 사퇴 압박은 이미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 등은 김 관장의 “광복은 연합국의 승리로 얻은 선물”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원내대책회의와 정무위 회의에서 “독립정신을 훼손한 관장은 마땅히 파면돼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 왔다. 

    천안을 지역구로 둔 여당 국회의원이 독립기념관 앞과 국회 등에서 잇따라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고 퇴진을 요구한 데 이어, 독립기념관법을 개정해 국가보훈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관장 해임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도 발의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