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목불조각 50년’…“나무로 깎고 다듬는 것, 내 수행이자 철학” 칠불암 시작으로 옥천 용암사·정수암·한마음선원 등 ‘100여 점 남겨’하나의 목재로 전체를 조각하는 ‘일목조’ 방식…“세부까지 원형 유지 가능”
-
- ▲ 충북 무형유산 ‘목불조각’ 보유자인 하명석 목불조각장이 보은 속리산 공방에서 망치와 조각칼을 이용해 불상을 조각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전통 불조각의 정수 ‘일목조’를 고수하며 100여 점을 남긴 불심(佛心)의 장인. “내가 깎는 건 나무가 아니라 마음입니다.”불기 2569년을 하루 앞둔 4일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한 충북 무형유산 ‘목불조각’ 보유자인 하명석(66, 충북도 무형유산 제21호,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북암길 1) 장인은 반세기 넘게 한결같은 자세로 불상을 조각해 온 우리 시대의 진정한 장인이다.열 여설 살 무렵 불교 조각에 입문한 그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매일 새벽 가장 먼저 작업장의 문을 연다. “아침에 정신이 맑을 때 집중이 잘 되지요. 조각은 도면대로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날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나무를 만지는 겁니다.”하 장인이 고수하는 방식은 하나의 목재로 전체를 조각하는 ‘일목조(一木彫)’다. 이 전통 기법은 부위별로 나눠 붙이는 방식이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의 통나무에서 깎아내는 고난이도의 수작업이다. “전체를 하나의 나무로 깎으면 그 안에 흐르는 숨결도 하나로 이어집니다. 조각가의 호흡과 나무의 결이 일치해야 진짜 불상이 됩니다.” -
- ▲ 불상을 조각하고 있는 충북 무형유산 ‘목불조각’ 보유자인 하명석 목불조각장.ⓒ김정원 기자
1975년 조각에 입문한 그는 1981년 지리산 칠불암의 중창불사를 계기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에 나섰다. 청원 스님과 함께 주전불, 후불 목탱화, 신중 목탱화 등을 조성하며 전통 불조각의 기법을 익혔고, 이후 옥천 용암사, 울산 한마음선원, 서울 정수암 등 전국의 유서 깊은 사찰에 100여 점 이상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는 △충북 유형문화재 제193호 옥천 용암사 목조아미타열의좌상 △정수암 삼존불 △한마음선원 주전불 등이 있다.그의 작품은 단순한 불상이 아닌 ‘신심의 형상’이다. “불상은 예술이 아닙니다. 창작이라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돼요. 보는 사람이 자비로움을 느끼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이어야 진짜 불상입니다.”그는 주문자의 요청에 따라 불상의 형상과 상징을 맞추되, 자신의 해석을 과하게 덧붙이는 것을 경계한다. “내 식대로만 고집하면 아무도 안 모셔갑니다. 불상은 조각가의 예술작품이 아니라 신도들의 기도 대상이니까요.”그렇다고 해서 그의 손길이 단조로운 것은 아니다. 그는 불상의 ‘얼굴’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자비로운 눈매, 부드러운 미소, 그 안에 신심이 담겨야 해요. 얼굴 하나만 잘 나와도 절반은 성공한 겁니다.” 눈썹의 각도, 입꼬리의 곡선, 콧대의 미세한 굴곡까지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작업 도중 불상이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면, 그제야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
- ▲ 충북 무형유산 ‘목불조각’ 보유자인 하명석 목불조각장이 공방에서 완성된 목불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하 장인의 손은 현재도 살아있다. 최근 건강 문제로 작업을 잠시 쉬고 있지만, 그는 담담하게 말한다. “몸이 좀 안 좋아서요. 그래도 손은 기억합니다. 언제든 다시 깎을 수 있어요. 칼을 들면 감각이 돌아와요.”그가 고수하는 ‘일목조’ 방식은 보관, 복개, 각반 등 세부 부위까지 별도 결합 없이 조각하는 기법이다. 이는 파손 가능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복장물(불상 내부에 봉안하는 사리나 경전 등)을 넣을 때도 전체의 일체감을 해치지 않는다. “보는 사람은 모를 수 있어도, 안에서 틈이 생기면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불상은 속까지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그의 조각은 불상뿐 아니라 목탱화, 불감에도 적용된다. 모든 작품에 그가 강조하는 ‘일체감’과 ‘숨결’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원목 선정부터 계금, 조각, 채색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그에게 조각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종합적인 수행 행위다. “도면을 보지 않습니다.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 이미 상이 있어요. 나는 그걸 꺼내줄 뿐이지요.”1988년 문화재수리기술자 기능장을 충북에서 가장 먼저 딴 그는 2006년, 목불조각이 충북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서 그는 보유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어 지금은 전승에도 힘을 쏟고 있다. “누군가는 이 길을 계속 걸어야 하잖아요. 제자도 받고, 내가 아는 건 다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속리산에도 제자가 있고, 대학에서도 강의하고 있습니다.” -
- ▲ 충북 무형유산 ‘목불조각’ 보유자인 하명석 목불조각장이 작업 중인 불상.ⓒ김정원 기자
전승의 어려움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는다. “대중화는 어렵지만, 맥은 끊기지 않을 겁니다. 다만 믿음의 대상을 일반 제품처럼 홍보하거나 전시하는 건 조심스러워요. 불상은 시장에서 경쟁할 물건이 아니라, 신앙이 깃든 형상이기 때문입니다.”다가오는 석가탄신일에도 그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조용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그날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어요. 늘 같은 마음이지요. 불상을 조각해온 사람은, 평생 그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그에게 조각이란, 결국 ‘마음을 깎는 일’이다. 나무의 결 하나, 미소의 곡선 하나에도 수행자의 자세가 스며든다. “작품 하나를 조성한다는 건 수행입니다. 내 마음이 흐트러지면 나무도 따라 흔들립니다. 그래서 조각은 평생 배우는 공부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