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보다 신뢰”…야구장을 지킨 건 팬들이었다청주시의 170억 투자에도 외면한 구단, 시민들은 ‘배신감 호소’“우리는 계산기로 응원하지 않았다”…지켜온 마음이 무시당했다
  • ▲ 류현진 선수가 지난해 6월 18일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이글스와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류현진 선수가 지난해 6월 18일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이글스와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역투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가 2025년 정규시즌 청주 홈경기 배정에 사실상 선을 그으면서 지역사회에 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청주시는 그동안 17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청주야구장 시설을 꾸준히 보완하며 ‘제2 홈구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 하지만 구단은 대전 신구장 개장을 이유로 “청주 경기 배정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청주시는 이 같은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범석 청주시장은 지난 19일 시청 기자실에서 “청주 홈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건 청주 팬들의 열띤 응원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직격했다. 이 시장은 “청주시가 구단의 요청을 대부분 수용해왔다. 지금 와서 경기 배정을 외면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응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은 청주 시민들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그들은 단지 ‘야구를 본다’는 차원을 넘어 오랜 시간 지역 연고 구단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함께 쌓아온 주체였다. 청주야구장은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닌, 이 도시의 기억이자 공동체의 응원 공간이었다.

    ◇“우리는 계산기로 응원하지 않았다”

    청주 팬들은 누구보다 뜨겁게, 그리고 묵묵히 팀을 지켜왔다. 성적이 좋을 때만 박수 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진한 시기에도 등을 돌리지 않았던 이들이다. 그 신뢰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시민들은 언론을 통해 “20년 넘게 아들과 함께 청주구장을 찾았다. 한화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늘 자리를 지켰다. 그런데 이제 와서 수익이 적고 시설이 부족하다고 청주를 외면한다니, 팬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이어 “한화그룹처럼 규모 있는 기업이라면, 몇억의 손실보다 지역과 맺어온 신뢰가 더 큰 자산이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하소연했다.

    시민들은 “야구는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 야구장에 들러 한 게임 보고 집에 가는 그 소소한 즐거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 허전하다. 이제 대전까지 원정 가며 응원해야 한다면 더는 이 팀을 응원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한화 팬들은 특히 지난해 청주 경기에서 느꼈던 감동을 기억하고 있다. 또 다른 팬은 “청주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며,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관중들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그 함성 속에서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랫동안 야구를 사랑해왔는지를 실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날 나는 단순한 관람객이 아니라, 이 팀의 역사에 함께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부심마저 외면당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단순한 경기 수가 아니다…지켜온 마음이다”

    한화이글스를 보유한 한화그룹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기업이다. 방산, 에너지, 금융, 조선, 레저, 백화점 등 굵직한 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경기 수익만 따지는 것이 아닌, 연고지와의 관계, 지역 팬들과의 신뢰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충청권을 기반으로 강한 리더십과 뚝심 있는 경영 스타일로 그룹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재계 인물이 아닌가. 

    물론 구단의 고민도 존재한다. 선수 보호, 관중 수입, 시설 인프라 등 현실적 조건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한화이글스가 지금 잃고 있는 건, 단순한 경기 수익 몇억 원이 아니라는 점을 곱씹어야 한다. 그것은 곧 ‘한 팀을 수십 년간 지켜준 팬들의 마음’이며, 한 구단이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신뢰’다.

    청주 시민들은 여전히 야구장을 지키고 있다. 낡은 좌석에서도, 미끄러운 잔디 위에서도,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함성을 보냈다. 프로야구가 진정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스포츠라면, 지금 한화가 등 돌리려는 바로 그곳이야말로, 다시 돌아봐야 할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