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및 지질공원, 전라북도 도립공원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전북 진안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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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산(馬耳山)은 서로 등지고 있는 기이한 모습의 서쪽 암마이봉(687.4m)과 동쪽 수마이봉(681.1m)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산봉우리와 10여 개의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진안읍 단양리와 마령면 동촌리 경계면에 걸쳐 자리하고 있다.숨 가쁘게 달려온 마이산도립공원 남부관광안내소, 아침인데도 제1주차장은 만원이라 제2주차장으로 주차관리원이 유도한다. 그만큼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낙엽을 반쯤 떨군 벚나무길을 따라 포장도로를 걷는다.마이산 금당사 일주문을 지나 상가 거리를 얼마 지나지 않아 길 좌측으로 달마대사와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비포장길로 접어들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산행코스는 ‘납부관광안내소~고금당~비룡대~성황당~봉두봉~마이산돌탑~천왕문~암마이봉~탑형제~남부관광안내소’로 산행 거리는 총 1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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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 구절초가 활짝 웃는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니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아득하게 보이는 비룡대, 그곳의 풍경을 기대하며 걷는 가벼운 발걸음이 금세 마이산 탄금봉(彈琴峰, 해발 528m) 고금당(古金堂) 입구에 닿는다. 산길로 들어서자 계단으로 시작될 만큼 가파르다.해맑은 가을빛을 만난 참나무 끝자락엔 그윽하게 가을빛이 깊게 퍼졌다. 고금당 가는 길이 계단 공사 중이라 우회해 오른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기댄 커다란 몸집의 바위를 지나 비룡대·고금당 갈림길에서 고금당으로 방향을 튼다.마치 큰 자갈을 섞어 혼합한 거친 콘크리트를 부어놓은 것 같은 거대한 퇴적암 위에 금빛 고금당이 고즈넉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급경사의 사면을 올라 고승 나옹선사가 수도했다고 하는 자연암굴 나옹암(懶翁庵)에 들러 그간의 번뇌를 씻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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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당 앞에서 이따가 만나게 될 마이산 풍경과 먼저 시선을 맞댄다. 암봉을 넘어서면 광대봉으로 가는 이정표에서 우측의 숲속으로 내려선다. 천상의 소리인 듯 청아한 새소리, 맑은 공기, 싱그러운 숲 내음 속으로 내려서니 움막 속의 부처님을 만난다.다시 능선으로 올라 참나무잎을 검붉게 태우는 가을 햇살과 만난다. 무심한 발걸음은 보아도 보이지 않게 하는 모양이다. 문득 눈을 떠보니 가는 길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되돌아가서 구릉을 내려간다. 매사 관심이 없으면 눈뜬장님이란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다.물결치듯 울렁이는 능선을 걷다가 마치 마분(馬糞)처럼 볼록한 퇴적암 봉우리를 오른다. 그곳에 오르니 노자의 ‘천하유도 각주마이분(天下有道 却走馬以糞)’이 생각난다. 세상 사람들이 도를 안다면 군마(軍馬)를 멀리하고 농마(農馬)를 부렸으리라. 전쟁을 멀리하고 평화를, 편리함으로 인한 기후위기가 사라지고 불편하더라 기후회복을 택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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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겹겹이 이어진 산너울과 그 아래의 주차장과 북쪽으로 진안농공단지와 용대리 마을을 조망한다. 땀에 젖은 얼굴을 닦고 잔잔한 파도를 타듯 산길을 이어간다. 보슬비에 옷 젖듯 오르내림이 반복되니 쉼이 필요하다. 우리네 삶도 그래서 산을 찾아 쉼표를 찍는다.오르막길 나뭇가지 사이로 풍경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비룡대 발밑에 닿는다. 사방으로 거침없이 펼쳐진 매력적인 풍광에 흠뻑 취한다. 지나오고 가야 할 길이 또렷이 드러나는 나봉암(해발 527m) 비룡대에 올라 감회에 젖는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봄에는 안개를 뚫고 나온 암수 두 봉우리가 쌍 돛배 같다 하여 돛대봉, 여름에 수목이 울창해지면 용의 뿔처럼 보인다고 용각봉, 가을에는 단풍 든 모습이 말의 귀와 같다 해서 마이봉, 겨울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먹물을 찍은 붓끝처럼 보여 문필봉이라 하는 것처럼 살면 어떨까. 마치 노자의 덕선(德善)과 덕신(德信)의 가르침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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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르는 용처럼,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홀가분한 발걸음으로 매우 가파른 나봉암을 철제 난간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바위를 휘감고 살아가는 소나무의 힘겨움을 달래고 첫 번째 두꺼비 바위를 거쳐 금당사 갈림길을 지난다.나지막한 소나무 군락지인 퇴적암 구릉을 넘어서고 참나무 군락지의 가을 풍경 속을 걷는다. 두 번째 두꺼비 바위를 거쳐 탑영제 삼거리를 지난다. 빽빽한 참나무 숲을 비집고 난 길을 따라 구릉에 오른 후, 사방이 온통 소나무로 가득 찬 성황당 안부로 내려선다.이어 봉두봉으로 오르는 길은 참나무와 소나무가 사이좋게 어울린다. 나뭇잎을 투과한 햇빛은 맑고 투명한 가을 색을 만들고, 이내 내 가슴마저도 뚫고 지나가 티끌을 없앤다. 보이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 절벽을 오르면서 우측으로 힐긋힐긋 보이는 나봉암, 얼른 보고픈 마음과 부푼 기대감으로 힘을 내 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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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울창한 소나무 숲의 봉두봉(해발 545m)에 닿는다. 지나온 산길에 우뚝 솟은 타포니라 불리는 거대한 구멍(동굴)이 있는 나봉암 비룡대가 멋진 풍경을 이룬다. 마이산은 약 1억년 전, 자갈과 모래, 진흙이 쌓여 만들어진 역암으로 구성돼 있다.고금당과 금당사를 품은 산세, 하산할 때 만나게 될 탑영제까지 조망하고 나서야 비로소 요기로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한다. 떠나오기 전 번잡했던 마음이 비교적 단순해지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뾰족하게 높이 솟은 암마이봉을 조망한다.다시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길, 그 끝자락에 자리한 헬기장을 지나 암마이봉 입구 삼거리에 닿는다. 천왕문 방향 이정표는 있지만, 밧줄로 길을 막아 놓아 탑사 방향으로 하산한다. 출입 통제하려 했으면 이정표까지 없앴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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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재그 계단 길, 숲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마이봉에 마음이 설렌다. 웅장한 암마이봉 뒤로 얼굴을 살짝 내미는 수마이봉을 바라보며 마이산돌탑, 탑사에 닿는다. 1885년에 입산한 이갑룡 처사가 건립한 탑사는 암마이봉의 수직 벽이 올려다보이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그는 30여 년 동안 탑사 주변에 120기의 탑을 쌓았으나 지금은 강한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는 80여 기의 탑이 남아있다. 대부분은 주변의 천연석으로 쌓아졌지만, 천지탑 등의 주요 탑들은 전국 팔도의 명산에서 가져온 돌들이 한두 개씩 들어가 심묘한 정기를 담고 있다.타포니(Taponi) 현상이 뚜렷한 암마이봉 굴 안에도 돌탑이 세워져 있어 신비를 더한다. 암마이봉을 타고 오르며 서식하는 줄사철나무와 능소화가 자연이 빚고 세월이 만든 자연의 오묘함에 생동감을 보태준다. 돌탑과 사찰을 돌아보며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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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사에서 포장된 경사로를 따라 은수사로 오른다. 이 사찰은 고려 장수 이성계가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를 드렸던 곳이다. 기도 중에 마신 샘물이 은같이 맑아 은수사(銀水寺)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한다. 현재 샘물 곁에는 기도를 마친 증표로 심은 청실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불교 신자와 소원을 기원하는 이들, 그리고 등산객들이 주말을 맞아 북적인다. 그들과 뒤섞여 암수마이봉 사이에 설치된 324개의 계단을 올라 천왕문에 닿는다. 문이 없는 천왕문은 이성계가 꿈속에서 하늘로부터 금척(金尺) 받은 후 이 고개에 올라 왕이 하늘로 오른다는 의미로 천왕문(天王門)이라 불렀다고 전한다.천왕문에 닿아 수마이봉 화엄굴(華嚴窟)을 다녀오려 했으나 안전점검 중이라 아쉬움을 안고 암마이봉을 오른다. 화엄굴은 예전에 한 이승(異僧, 기이한 행적을 남긴 스님을 일컫는 말)이 이 굴에서 연화경(蓮華經)과 화엄경(華嚴經) 등 두 경전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된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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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마이봉을 향해 계단을 오르자마자 마주 선 수마이봉이 웅장한 자태로 위용을 뽐낸다. 계단이 끝나고 산길을 오르는가 싶더니 초소에 닿는다. 다시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길이 계속되는데,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로 나뉜다.60~70도에 가까운 워낙 급경사이고, 찾는 이들이 많아 안전을 고려한 듯하다. 오르는 길 일부는 아직 암반 구간이라 상당히 위험하지만, 내려오는 길은 계단이라 천천히 내려오면 안전하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면 수마이봉이 기운을 준다. 삿갓봉(해발 532m)과 사양저수지를 조망하면서 잠시 숨을 고른다.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만나는 진안읍 전경을 보며 쉬어간다. 한두 발씩 내딛는 걸음이 어느새 전망대, 이곳에서 수마이봉의 힘찬 기운을 얻는다. 그 기운으로 지척인 정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드디어 암마이봉 정상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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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 전망대에서 기우는 해를 등에 진 광대봉, 탄금봉, 고금당, 봉두봉, 나봉암 등을 조망하고, 동북쪽 전망대에서 부귀산(해발 806m)과 진안읍을 조망한 후 하산을 시작한다. 기기묘묘한 기운을 받아서일까 단숨에 내달려 은수사를 거쳐 탑사에 이른다.도로 옆 벚나무는 내년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고 일찌감치 휴식에 들었다. 그러나 탑영제를 품은 벚나무들은 아직도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방문객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긴다. 금당사에 들러 안전산행의 감사와 모든 이들의 안전과 행복을 기원한다.즐비하게 늘어선 상점들 사이를 부지런히 걷다 보니 긴 여정으로 지친 몸이 카페레드의 테이크아웃 식혜에 이끌린다. 시원하게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에 주인은 단골손님인 것 같다며 진안홍삼 쫀드기 두 개를 덤으로 건넨다.자연이 배려한 만큼 사람이 자연을 보호하고 사람들이 서로를 배려할 때, 내일 또 오늘같이 좋은 날은 계속되고, 힘든 날은 새로운 희망으로 모습을 바꿔 다가오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