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變數)를 기대한다면 묘수(妙手)가 필요”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파 5 마지막 홀 티잉 그라운드에 섰다. 좌우로 OB 구역이고 페어웨이 한복판에는 벙커가 도사리고 있다. 드라이버를 쥐고 힘껏 휘두르는 순간 머리를 쳐들었으니 공이 어디로 갔는지 보질 못했다. 물었다. “내 공이 어디로 갔는지 보았나요?” 
    잠시 적막이 흐르고 “절로 갔는데요?” 왜 하고많은 곳 중에서 절로 갔는지 알 길은 없으나 아무튼 절로 갔다니 온 수풀을 헤집고 다녔다.
    삶은 달걀을 얻어먹으려고 교회를 들락인 적이 있고 눈에 꽂힌 고등학교 여학생 누나를 따라 예배를 한답시고 고개를 푹 처박고 두 손을 모은 적은 있지만, 절에 가서 예불은 드린 적은 없다. 그런데도 뭘 물어보면 절로 가라고 한다. 절이 대세가 되어 버렸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에는 ‘언바란스 건물’이 멀쩡하게 서 있다. 의장석을 중심으로 600석의 좌석이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의장석을 향해 있다. 이 좌석에 앉기 위해 끌어올 수 있는 것이라곤 죄다 끌어와 올인했다. 껄껄껄이다. 
    어떤 사물이라도 칼(刀)로 휙 갈라 버리면 ‘팔(八)’이 된다. 원래는 ‘分’(나눌 분)자이다. 독음이 서로 비슷하니 후대에 ‘八’자를 써서 숫자를 나타냈다. 그러니 ‘八’자의 태생은 나눌(分) 수밖에 없다. 
    부처는 일생에 여덟 가지 사건을 겪는다. 그래서인지 ‘八’이란 숫자를 ‘오라지게(아주)’ 좋아한다. 불교의식에서 지켜야 할 여덟 가지 계행을 팔계(八戒)라 하고, 하필 석가모니의 일생을 팔 단계로 나누어 그린 그림이 팔상도(八相圖)이며, 예서 그리 멀지 않은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법주사에 팔상도를 봉안한 전각 팔상전(八相殿)이 있고, 허덕이며 댓 시간을 달려 경상남도 밀양시 표충사에 들자면 이곳에도 작고 아담하지만, 은근히 화려한 팔상전이 버티고 있다. 
    그렇다면 손오공, 사오정과 함께 삼장법사를 호위하던 저팔계(猪八戒)는 또 무엇이더냐? 돼지[猪]가 팔계를? 저팔계는 그 외모가 돼지의 머리에 덩치 큰 사람의 몸뚱이를 갖고 있다. 전생의 저팔계는 달나라 항아를 희롱하다 옥황상제에게 찍혀 죗값으로 징역을 안 가는 대신 인간 세상으로 쫓겨난다. 저팔계는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 세상에 먹을 것이 없자 지나가는 선량한 나그네를 잡아먹으며 살아간다. 정말 돼질 놈이다.
  • ▲ 바둑판. ⓒ이재룡 칼럼니스트
    ▲ 바둑판. ⓒ이재룡 칼럼니스트
    여기 인간 세상에 ‘八’ 자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집단이 있다. 팔이 부러지면 ‘아작(결딴)’ 나기 때문이다. 
    너무도 복잡하다. 눈ㆍ귀ㆍ코ㆍ혀ㆍ피부ㆍ뜻(육근)과 대상이 되는 색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감각ㆍ법(육진)이 접촉할 때, 좋고ㆍ나쁘고ㆍ좋지도 싫지도 않은 세 가지 인식이 작용하면 즉 3×6=18 번뇌가 된다는 주장이다. 이로 인해 또다시 기쁜 마음이 생기거나, 괴롭고 언짢은 마음이 생기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상태가 생기기도 하니 18 번뇌가 한 번 더 생겨 36 번뇌가 되고, 이러한 36종의 번뇌에 전생ㆍ금생ㆍ내생의 3세를 곱하면 108이 되어 백팔번뇌의 실수가 연발된다는 일반론을 중시하여 본 장을 연다. 
    108에 들지 않으려 별애별 여론조사를 다 동원해 보았다. 그러나 얻은 것은 결국 108이라는 숫자가 전부였다. 
    ‘8’을 지킬 것인지 ‘108’을 이겨낼 것인지 앞이 캄캄하다. 이제부터라도 허수(虛數)에 얽매이지 말고 상수(常數)를 찾아야 한다. 
    내가 친 공이 절로 갔으니 발에 땀이 나도록 찾았다. 아무리 눈을 뒤집어 까도 찾질 못하여 한 점 벌타를 받았다. 젠장 여기까지 걸어왔으니 한 점 벌타를 또 먹었다. 이제 4번째 공을 쳐야 한다. 그린에 제대로 올려서 한 번에 넣으면 ‘0’이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이스 버디(Birdie)’를 기대한다. 고개를 숙여야 잘 보인다. 
    2024년 5월 2일. 변수(變數)를 기대한다면 묘수(妙手)가 필요하다. 이재룡 ‘아다리(단수)’를 외치며 글 한 수를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