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바닷길로 찾은 곳, ‘간월암’[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서산시 편
  • ▲ 도비산 정상의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 도비산 정상의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도비산(島飛山, 해발 358m)은 충남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와 인지면 신동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의 이름은 개벽 초 중국에서 날아왔기 때문에 도비산(島飛山)이라 했다고 전해져 온다. 또한, 복숭아꽃이 많이 피어 도비산(桃肥山)으로도 불린다.

    이 산은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 부석사(浮石寺)를 품고 있다. 키도 몸집도 비록 작지만, 산자락에는 크고 작은 7개의 사암을 품고 있을 정도로 만물을 깨우치는 기운이 넘치는 산이다.

    신록이 짙어지는 계절, 잠시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고자 도비산을 찾는다. 산행의 기점은 공중화장실 옆 주차장에서 출발해 부석사와 동사, 그리고 해돋이 전망대를 거쳐 도비산 정상에 오른다. 그리고 곧바로 부석사로 하산하여 원점회귀 하는 약 7㎞ 코스를 걷는다.
  • ▲ 부석사로 향하는 겹벚꽃의 꽃길.ⓒ진경수 山 애호가
    ▲ 부석사로 향하는 겹벚꽃의 꽃길.ⓒ진경수 山 애호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바로 인접하여 도비산 부석사의 일주문이 하나의 마음을 갖게 한다. 일주문 좌측으로는 도비산 석천암(1.5㎞)과 해넘이 전망대(0.8㎞)로 길이 이어진다. 일주문을 통과하여 부석사(0.6㎞)를 향해 짙어 가는 신록에 포근하게 감싸 있는 포장길을 오른다.

    부석사 가는 길에서 설핏설핏 연분홍 꽃길을 걷게 되니, 35년 전 아내에게 꽃길만 걷게 해주겠노라고 철석같은 언약을 했건만, 그러하지 못한 아쉬움에 후회의 봇물이 쏟아져 내린다. 꽃길을 걸으면서 이제야 실제로 꽃길을 같이 걷게 됐다며 달콤하게 속삭여 본다.

    그리곤 ‘나답게 사는 행복’ 그 자체의 행복을 만끽하며 그저 묵묵히 오늘처럼 동행하자고 한다. 길가에 펼쳐놓은 연분홍 주단은 다른 벚꽃보다 유달리 뒤늦게 펴서 이제야 그 화려함을 내려놓기 시작하는 겹벚꽃이다. 
  • ▲ 부석사의 경내 모습.ⓒ진경수 山 애호가
    ▲ 부석사의 경내 모습.ⓒ진경수 山 애호가
    때늦은 왕벚꽃을 보니, 대기만성(大器晩成)인가 싶다가도,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어리석은 인간들이 내 권력이, 내 재력이 더 나아가 내 삶까지도 다함이 없는 줄 착각해 본래 마음을 잃고 살기 때문은 아닐까?

    현실 세계의 모든 것은 한결같을 수 없으며 모두가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깨우친다면, 아상(我相)에 빠져 집착하고 고통의 바다에서 허덕이지 않을 텐데 말이다. 생각을 내려놓겠다고 떠나온 걸음 속에 또 삶을 돌아보는 것은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하려고 하는 몸부림은 아닐까?

    그러자, 절정에 이른 연분홍 겹벚꽃 뒤로 운거루와 다원의 운치 있는 앉음새가 눈길을 끈다. 수백 년 이상 넘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세월을 무색하게 할 만큼 싱그러운 생기를 내뿜으며 발길을 부석사 경내로 이끈다.
  • ▲ 첫 번째 세거리에 자리한 고령의 느티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 첫 번째 세거리에 자리한 고령의 느티나무.ⓒ진경수 山 애호가
    부석사의 경내에는 극락전, 안양루, 관음전, 산신각 등이 있다. 산신각에는 산신과 함께 선묘 낭자와 용왕을 모셨으며, 산신각에서 산 위로 좀 더 올라가면 만공스님이 수행하던 토굴이 있다. 그 속에 들어가 본래 마음자리를 찾기 위한 수행의 길을 되새겨 본다.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의상을 연모한 선묘 낭자가 바다에 몸을 던져 죽은 후 용이 돼 귀국하는 의상의 바닷길을 수호했다. 의상은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도비산에 절을 짓고자 했으나 반대하는 무리가 있자 선묘의 용이 커다란 바위를 하늘에 띄워 그 무리를 물리쳐 주었다. 그래서 불사를 무사히 마친 후 절의 이름을 ‘떠 있는 바위’라는 뜻의 부석사가 됐다고 한다. 

    이제 마음을 다잡고 경내 입구에 세워진 이정표의 안내를 따라 도비산 정상(0.7㎞)으로 향한다. 각목계단을 오르고 나니 고령의 느티나무가 상흔을 가득 안고도 푸른 생기를 힘차게 쏟아내고 있다. 이곳에 세워진 부석사(0.1㎞)·부석사 정상(0.6㎞)·동사(1.5㎞)의 이정표 안내에 따라 동사로 발길을 옮긴다.
  • ▲ 고령의 느티나무와 동암.ⓒ진경수 山 애호가
    ▲ 고령의 느티나무와 동암.ⓒ진경수 山 애호가
    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산길은 계단과 바윗길이 연거푸 반복되며 이어진다. 길옆으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각목계단을 오르니 하늘이 열리고, 이정표는 도비산 정상이 0.4㎞ 남았다고 안내한다.

    유순하면서 보드라운 흙길을 걷다 보니 산행보다는 산책에 가까운 걷기 길이다. 그야말로 실버 산객을 위한 맞춤형 산행코스 같다. 다시 만난 이정표는 부석사(0.5㎞)·부석사 정상(0.2㎞)·동사(0.8㎞)라고 알린다. 잠시 부석사 정상을 멀리하고, 동사 쪽으로 산허리를 따라 걷는다.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 이어지는 길의 리듬에 몸의 율동을 맞춰가며 사분사분 발걸음을 옮긴다. 흙길의 단조로움을 달래주듯 간간이 기묘한 바위들이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지산리 세거리를 지날 때 부남호를 바라보지만, 그 풍광이 아련하다.

    희한하게 생긴 두 개의 흰 바위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그 바위들처럼 그대로 따라 오랫동안 친구처럼, 애인처럼 같이 있어 준 사람과 함께 엉덩이 내리고 여유를 부린다. 이어 사찰을 들어설 때 지나는 산문처럼 길을 지키고 있는 바위들 사이를 통과하자 동암(東菴)과 마주한다.
  • ▲ 도비산 능선에서 만나는 바위 조망터.ⓒ진경수 山 애호가
    ▲ 도비산 능선에서 만나는 바위 조망터.ⓒ진경수 山 애호가
    신록이 우거진 임도를 0.5㎞ 걸으면, 커다란 바위 앞에 세워진 낡은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이정표의 날개를 잃은 쪽인 숲속으로 들어선다. 다시 이어지는 산길은 종친 묘터를 지나자 길이 신기루처럼 흔적이 희미해진다. 

    이럴 땐 그동안 산행에서 체득한 방향감각이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해 이내 이정표를 만나 제 길로 들어선다. 이정표는 해돋이 전망대(0.3㎞)·동사(0.7㎞)·부석사 정상(1.3㎞)이라고 안내한다. 해돋이 전망대 방향으로 이동했으나 바다가 조망되는 그곳이 묘터인가 보다. 

    다시 이정표로 돌아와 햇빛을 머금어 눈부시게 싱그러운 신록의 능선 숲길을 오른다. 부드러운 흙길과 계단을 거듭해서 오르고 나니 모나지 않은 매끈한 바위들이 길을 막아선다. 그 바위 틈새를 통과해 0.2㎞를 더 오르자 하늘이 열리는 바위 조망터에 이른다.
  • ▲ 산길에서 만나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진경수 山 애호가
    ▲ 산길에서 만나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진경수 山 애호가
    산마루를 향해 쉴새 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아니라 바다의 물결처럼 일렁이며 오르는 능선길, 해풍을 받으며 살랑거리는 연초록 나뭇잎에서 반짝이는 햇빛, 그야말로 황홀한 숲 바다를 걷는다. 길과 숲이 일렁이지만, 마음만은 흔들림 없이 외려 선명해진다.

    산길 곳곳에 부드러운 모습으로 기기묘묘한 형상을 빚어내는 바위들이 마음을 붙잡아 지루할 틈이 없다. 마치 조각 예술품 전시장을 차근차근 감상하는 듯 자분자분 걷는다. 작은 키와 몸집을 지녔지만, 그 속살만큼은 어느 명산에 뒤지지 않는 기품을 지녔다. 

    의상 대사가 이곳에 선묘의 넋을 달래기 위해 부석사를 지은 까닭을 감히 헤아려 본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굽어졌다 펴지기를 반복하는 유순한 길을 따라, 유달리 쪼개진 바위들을 많이 만나는 발걸음을 이어간다. 
  • ▲ 도비산 산마루.ⓒ진경수 山 애호가
    ▲ 도비산 산마루.ⓒ진경수 山 애호가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거칠어지면 중간중간 쉬어가라고 쉼터가 기다린다. 얼마가 걸었을까, 동사와 도비산 정상이 0.5㎞를 남겨둔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이어 신록이 지붕이 되고, 해풍이 잠을 깨우는 평평한 참선 바위에 앉아 맞보는 바위와 신선을 맞추고 마음을 교감한다. 

    조그맣게 열리는 하늘, 그곳의 바위 조망터에 서니 나지막한 산들과 드넓게 펼쳐진 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어느새 석천암 갈림길에 이른다. 도비산 정상과 석천암까지는 0.3㎞이다. 아쉽지만 석천암 가는 길도 언제 올지 모를 그날을 위해 남겨두고 도비산 산마루로 향한다. 

    남은 길마저 신묘한 바위들이 눈길, 마음길, 발길을 모두 사로잡기를 수차례, 이제 숲속의 육각 정자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도비산 산마루가 몇 걸음만 남았다. 드디어 평평한 구릉을 이루고 있는 정상(해발 352m)에 닿는다.
  • ▲ 바닷길이 열린 간월암.ⓒ진경수 山 애호가
    ▲ 바닷길이 열린 간월암.ⓒ진경수 山 애호가
    도비산 정상에서 직진하면 해넘이 전망대(1.2㎞)로 갈 수 있다. 훗날을 위해 그 길을 남겨두고, 좌측 만개한 진홍색 철쭉밭 사이로 내려선다. 솔향 그득한 계단을 내려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흙길을 하행한다. 

    곳곳에서 만나는 기묘한 바위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잠시 가파른 길을 내려가자, 동사와 부석사 갈림길에 이른다. 이곳에서 부석사로 가서 다시 한번 고즈넉한 분위기에 선명해진 마음을 더 밝게 하고, 탑돌이 하며 모든 이들이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행복하길 기원한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자동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간월암으로 향한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때마침 하루종일 바닷길이 열리는 물때라 그 길을 따라 간월암에 닿았는다. 만나지 못한 닫힌 바닷길은 상상으로 접선해 본다.
  • ▲ 달을 보며 깨우침을 얻는 곳, 간월암.ⓒ진경수 山 애호가
    ▲ 달을 보며 깨우침을 얻는 곳, 간월암.ⓒ진경수 山 애호가
    간월암(看月庵)은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만공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달을 보며 깨우침을 얻는 곳이라 한다. 열린 바닷길을 건너 간월암 대문을 들어서니 150년 된 팽나무가 따가운 봄볕의 가림막이 되어 준다.

    무학대사가 짚고 다니시던 지팡이가 다시 살아난 사철나무는 늘 푸르름을 간직한 채 깨우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법문하고 있다. 밤이면 바다에 비친 달을 보며 깨우침을 얻기에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는 서해의 낙조가 장관을 이룬다는 데 그 즐거움도 내일로 미뤄 둔다.

    관음전은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오색찬란한 연등이 걸려있고, 산신각과 범종각 뒤로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서 있다. 범종루를 내려서니, 난간에도 작은 연등이 한가득 밟게 빛난다. 그 모든 빛이 마음을 밝히고, 세상을 밝히니 어리석은 중생을 바른길로 인도한다.

    산의 기운과 바다의 평화로움을 마주한 하루, 신록의 숲으로부터 내일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딛도록 에너지를 받고, 바다로부터 걸림 없는 삶을 살라고 지혜를 받으니 ‘나답게 사는 행복’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이제 방향을 늘 머무는 곳으로 향하며 일정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