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안면이 되고 안면은 인맥이 된다
  • ▲ ⓒ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피고인을 징역 9년에 처한다.’

    ​다 큰 녀석인데 스스로 밥을 먹지 않는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가 싶더니 결국 굶길 수 없다며, 하는 수 없다며 녀석의 입에 밥을 떠먹여 주는 어미의 뒷모습이 아리다. 손에 물이 마를 날 없었던 어미는 녀석과 어떤 인연으로 만난 것일까 왜 아비는 녀석에게 모든 것을 내주어야만 하는 것일까? 먼 하늘을 바라보는 어미와 아비의 얼굴이 그늘진다. 그렇게 녀석은 자랐다. 

    ​녀석은 단 한 번의 실수로 차디찬 방에 갇혀있다. 너무 가혹하다. 아비는 녀석을 마주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녀석을 만나러 간다. 마음을 추스르고 열차에 오르자 불과 1시간여 만에 썩을 대로 삭아버린 아비 몸뚱이를 서대구역에 던져 놓았다. 담장을 따라 을씨년스러운 찬바람이 아비의 몸속 깊은 곳까지 후벼 판다. 360번. 녀석은 눈물을 하염없이 쏟는다. 아비의 마음도 검게 타들어 간다. 목이 저미고 잠기어 소리가 가늘고 짧다. 15분 동안 슬픔에 젖었다. 방을 나오며 아비는 녀석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자책감으로 목놓아 울었다.   

    ​다 큰 녀석이 아비가 뒹구는 독방에 넷플릭스를 설치해 준다. 녀석은 입에 붙은 밥풀을 떼기 무섭게 아비에게 뭐라도 해줄 요량이었다. 추석이나 설날 정도는 돼야 영화를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지만 이제 아비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 앞에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이부자리에 벌렁 누워 목 뒤로 팔을 고이고 리모컨만 누르면 입맛에 맞는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넷플릭스를 켠다. 10부작 소년심판을 보느라 설빔 따위는 잊었다. 보는 내내 자식 잃은 아비의 고통은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과도 같았다.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맙다. 탈 없이 커 줘서, 장하다. 비빌 언덕도 없이 잘 이겨내 줘서” 녀석은 뜻밖에 걸려온 아비의 전화가 생뚱맞은지 “뭐야?” 한 마디를 남긴다.

    ​숨죽이던 어미는 지금의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녀석을 과연 내 배로 낳은 자식인지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눈물을 떨구며 어미는 녀석에게 말한다. “누군가 내 밥 위에 반찬 올려주는 사람, 누군가 내 방에 이불을 펴주는 사람, 누군가 삼시 세 끼를 잊지 않고 차려주는 사람, 어미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 너니? 언제까지라도 기다리마 내 새끼야.”

    ​녀석은 출세하고 싶었는지 “나는 내 과거가 싫다”라고 했다. 자신을 옭아맬 수 있는 인연을 부정했다. 사람과의 인연을 삐따닥하게 몰아간다. 영화 속에서 들었던 대사를 끄집어내서 스스로 주문을 왼다. “모든 것은 밥 한 끼다. 인사는 안면이 되고 안면은 인맥이 된다.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천리 길도 내 신발의 돌멩이부터 털어야 한다.” 녀석은 자신에게 엄청난 비극이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다 큰 녀석이 버젓이 간판 걸고 장사하는 가게를 찾아갔다. 아비는 주방에서 설거지하고 있는 녀석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 묻은 녀석의 손을 지긋이 잡았다. “갑자기 왜?” 아비는 말했다. “그냥 고마워서….”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인다. 

    ​태국행 비행기에 오른 녀석이나 버젓이 간판 걸고 장사하는 녀석이나 오십보백보다. 

    ​녀석에게는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며 사정을 살펴보고 ‘시찰’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보는 ‘관찰’ 패기는 있었지만 예리한 눈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 용기가 부족했다. 

    어미와 아비는 녀석이 품으로 올까 하는 맘에 문밖을 쳐다보고 또 쳐다본다. 녀석은 그런 존재다. 

    ​2024년 2월 16일.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가슴을 친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울음소리다. 그럴지라도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 너니? 이재룡 그런 사람 또 없기에 마음을 달래 글로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