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경 아저씨 오면 거금 5원 손에 쥐고 넋이 빠질 정도 구경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5원 동전.ⓒ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5원 동전.ⓒ자료 이재룡 칼럼니스트
    요지경, 어릴 적 요지경 아저씨가 동네에 오면 엄청난 거금 5원을 손에 쥐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동무들과 오손도손 모여 앉아 신기해하며 넋이 빠질 정도로 구경을 했다. 혹여 요지경 아저씨가 가지고 다녔던 고품질의 요지경을 기억하시나요? 요지경에 흠뻑 취해 해넘이도 잊었다. 

    착한 부잣집 친구는 아버지한테 요지경을 생일선물로 받아 동무들에게 맘껏 구경을 시켜주곤 했다. 어린 시절 꿈을 바꿔 놓을 만할 만큼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그런데 장난감 요지경이 판매되면서 요지경 아저씨는 자취를 감췄다. 어디 이뿐이랴 달고나 아저씨도 엿장수 아저씨도 더는 동네에 오지 않았다. 그럴 때면 동무들과 노랠 불렀다. “동무들아 모여라. 달맞이 가자. 나물 캐는 바구니 옆에 끼고서 달래 냉이 씀바귀나물 캐오자. 종다리도 높이 떠 노래 부르네”

    ​시절을 삼키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 건지 감은 것인지 초점마저 흐트러져 버린 한 여인이 연신 둥실대며 노랠 부른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인생 살면 칠팔십 년 화살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MBC 베스트셀러 극장 똠방각하에서 사팔뜨기 똠방아내 역을 똑 부러지게 연기한 배우 신신애였다. 그랬던 그녀는 72년째 솔로를 고집한다.

    ​신신애식 요지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박진감 넘치는 경쾌한 음악이 무대 위로 짙게 깔린다. 뒤이어 리듬에 몸을 던지며 가수 양혜승이 걸어 나온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서로 구속해 안달이야 아 정말 미치겠다 그런가 봐” 정신 나간 사람이 헛소리로 떠드는지 알았다. 그런데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으니 섬뜩했다. 

    노래는 계속된다. 요지경이 좀 더 진화했다. 결혼은 ‘판단력 부족’이고 이혼은 ‘인내심 부족’이며 재혼은 ‘기억력 부족’이라고 신랄하게 씹는다. 하기야 당초 이 노래 원작 제목이 ‘Eat You Up’이니 그럴듯하다. 노래 ‘화려한 싱글’은 양혜승과 찰떡궁합이다. 요상하다. 정작 노래 가사와는 달리 양혜승 본인은 결혼도 했고 2022년부터는 청주시 청원구 율량동 번잡한 거리에서 7090 라이브 카페를 운영하며 잘살고 있다. 

    ​신신애의 요지경, 양혜승의 화려한 싱글을 제치고 언제부터인지 백일섭의 ‘졸혼’이 안방을 뜨겁게 달군다. 매주 수요일 종편 TV조선에서 방영되는 ‘아빠하고 나하고’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푸근한 동네 아저씨일 뿐만 아니라 부담 없이 어깨동무하고 싶은 친근한 옆집 아저씨를 연상시키는 원로 배우이기도 하다. 

    그랬던 백일섭은 듣도 보도 못했던 졸혼을 들고나와 결혼, 이혼, 재혼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혼인 관을 대놓고 무시한다. 세상 누구보다 가깝지만, 때론 세상 누구보다 멀게만 느껴지는 아빠, 아버지 그리고 나. 왠지 아버지하고 부르면 그분이 살아오신 삶의 무게가 버거워 곁에 다가설 수 없고, 왠지 아빠라고 부르면 그분 등에 폴짝 뛰어올라 목말을 태워달라며 조르고 싶어진다. 뒤엉킨 실타래가 풀리길 간절하게 바란다. 

    졸혼의 형태는 혼인 관계는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혼한 부부가 마냥 서로 다른 거주지에서 머물면서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하니 아리송하다.

    ​확대경을 통해 나무 상자 속을 들여다보면 신통방통한 사진이 무수히 많았다. 누가 그러더라.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고.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왜 결혼해서 서로 구속하고 지랄을 떠느냐고. 아내와 40년 사는 것보다 8년 혼자 사는 게 제일 편했다고. 

    ​정답은 없다. 요지경 속에서 보아왔던 세상(허상)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요지경 아저씨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과연 우리는 상대를 헐뜯고, 두려워하고, 고용 당하고, 노예가 되어 본 적이 있었는가 말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아라. 우렁찬 찬송이 불리기 91년 전 어느 날이었다. 생식기가 잘려나간 한 사내가 어두운 방에서 책장을 넘기고 있다. ‘하루에 9번씩 창자가 뒤틀린다’고 할 정도로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궁형을 자처한 사내 이름은 사마천이고 그가 넘기는 책은 사기였다. 

    사마천은 조용하고 나직하게 말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10배 잘나면 그를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000배가 되면 고용 당하고, 10000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2115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실감 난다.

    ​2024년 2월 초하룻날에 이재룡 사마천에게 냅다 질문을 던진다. 100000배가 되면 죽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