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감상하는 아름다운 속리산 산세[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상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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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산(百岳山, 해발 858m)은 경북 상주시 화북면 중벌리와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의 경계에 위치한다. 이 산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봉우리로 문장대에서 화양구곡 방향으로 뻗은 능선에 솟아 있다.백악산에는 수양대군(세조)의 딸이 단종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아버지의 음모를 눈치채고 발설했다가 쫓겨나 숨어지낸 산이라고도 전한다.이번 산행은 옥량폭포 진입로로 상행하여 입석초등학교 방향으로 하행하는 코스이다. 승용차는 옥량폭포와 상주시 관광안내도가 세워져 있는 갓길 주차장(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리 867)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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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길 주차장에서 문장로를 가로질러 옥량폭포로 이동한다. 백악산 등산로와 석문사 갈림길에서 백악산 방향으로 접어든다.탐방로 우측으로 단단한 바위 허리를 비스듬히 홈을 파고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음을 붙든다. 이것이 바로 유연함은 견고함을 이긴다는 자연의 진리를 자연스럽게 보여 준다.계곡을 건너 탐방로를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여 얼마 되지 않아 옥량폭포 이정표를 만나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옥량폭포는 약 15m 길이의 바위가 계곡을 가로질러 얹혀 있는 그 아래로 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요하면서도 청량한 폭포수의 낙수 소리가 귀를 부드럽게 하고, 용소의 잔잔한 물결이 눈과 맞추질 때 날뛰던 심장 소리도 잦아들고 마음도 저절로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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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량폭포에서 다시 탐방로로 돌아와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바위틈을 비집고 나와 산들바람에 흐느적대는 수줍은 보랏빛 도라지꽃에 눈과 마음을 준다.울창한 숲속에 즐비하게 늘어선 기암괴석과 괴목이 출현하기 시작하면서 가팔라지는 경사에 발걸음은 느려지지만, 산행의 즐거움을 점점 더 고조돼 간다.첫 번째 조망 점에서 가을로 막 들어선 고즈넉하고 풍요로운 농촌 풍경이 마음을 풍부하게 하고, 송면저수지 뒤편으로 우뚝 솟은 조항산의 산줄기가 산행을 유혹한다.산의 고도는 높아질수록 시야는 넓어지는데, 어찌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나이가 들수록 시야가 좁아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산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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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오르막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이마에 맺힌 땀이 견디지 못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헐떡이는 호흡은 노송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로 가득한 숲속의 상쾌한 공기를 한껏 맛보게 한다.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이동하면서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바람과 호젓한 산행은 나만의 시간을 갖기 더없이 좋다.이제 솥뚜껑바위를 만나 잠시 쉬어간다. 이 바위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국립공원공단에서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정한 이름이라 한다.그런데 필자는 이 가마솥 뚜껑을 닮은 바위가 마치 울 엄마의 젖꼭지처럼 보이는 걸까? 그건은 아마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서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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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한 소나무 뿌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가파르고 거친 산길이 이어진다. 나무에 매달려 무심하게 늘어선 밧줄을 잡고 경사진 암벽을 타고 오르니 그 덕택에 가뿐하게 오를 수 있다.옥량폭포 기점 3.8㎞ 지점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해 그 옆에 자리한 둥글납작한 부드러운 조망 바위에 올라 손에 손을 잡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쾌한 산군을 감상한다.동쪽으로 조항산, 대야산, 중대봉 등의 능선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너울대고, 남쪽으로는 문장대, 관음봉, 묘봉 등의 속리산 산군들이 넘실거린다.아무튼,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진리가 이 산행에서 어김없이 또 실감하면서 0.7㎞을 남겨둔 백악산 고스락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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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백악산 고스락으로 오르는 탐방로에는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곳곳이 조망 점이 있어 걷는 시간보다 멈추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속리산 명산들의 기운을 눈과 마음으로 담을 수 있는 황홀경에 심취한다.외계인을 연상시키는 바위군과 5층 석탑처럼 생긴 바위, 그합장한 손 모양의 바위가 편평한 바위에 올려져 있는 기도하는 바위 등이 마치 조각예술품과 다름없다.이어서 우아한 백조의 품새를 갖춘 바위를 지나고 탁 트인 조망처에서 장쾌한 속리산 능선을 조망한 후,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서부터 백악산 고스락의 기운이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계단을 오른 후 판다 곰처럼 생긴 바위와 눈을 마주치고, 작은 돌에 괘여 있는 쓰러질 듯하면서도 굳건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집채만 한 바위를 지난다. 그 아래에는 몇 사람이 들어가도 될 만큼 충분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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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움을 지닌 채 고고한 모습의 바위를 바라보니, 세속에 물들지 않으려는 고독한 몸부림이 역력하다. 자연의 힘은 일부러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이뤄지는 무위(無爲)라는 것을 깨닫는다.고스락에 다 오른 듯하나 고스락 돌이 없다. 술래를 찾듯 두리번거리다가 이정표를 발견하고 바위를 돌아가니 바위를 등받이 삼아 앉아 있는 ‘속리산국립공원 백악산(해발 857m)’ 고스락 돌이 의젓하다.백악산의 기운을 듬뿍 받으며 충분한 휴식을 취한다. 그러다 문득 산멍하는 여유로운 시간에서 깨어나 흘러간 시간을 보완하기 위해 하산을 재촉한다.앞으로 거쳐 갈 전경이 발길을 옮기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보지 않은 곳이라 설레기도 하고 두려움도 공존한다. 이는 마치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설렘과 함께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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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밟으며 하산을 시작하는데 바위 틈새에 자랐던 소나무가 고사목으로 변해 아름다운 산 풍경의 한 요소를 이룬다. 이처럼 익어가는 가는 삶의 풍경화 속에 어떤 점경(點景)으로 남을지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산행의 의미를 더한다.한참 동안 암릉을 하행하다가 코끼리 머리처럼 생긴 거대한 바위를 만난다. 그 옆으로 설치된 밧줄을 잡고 트래버스 하며 가파른 암벽을 힘차게 오른다.이어 완만한 경사의 슬랩바위를 오르다가 잠시 멈춰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한 폭의 동양화에서 빠져나온 듯하다. 다녀온 백악산이 점점 작아지는 것처럼 세월은 기억을 그렇게 잊혀져 가게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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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릉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이동한다. 암릉 구간에 늘어선 명품 바위들이 잠시도 지루하다고, 힘들다고 투정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어느덧 해발 804m의 덕봉 앞에 이른다. 곧바로 직진해서 오를 수 있으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암봉을 우회하여 설치된 밧줄을 잡고 고스락을 오른다.널찍한 암봉 위에는 품위 있는 선비의 자태를 갖춘 명품 소나무가 굳건하게 한 자리를 지키고, 그 앞에 놓인 바윗돌은 찻상을 대신한다. 차 한 잔과 스치는 바람, 떠도는 구름을 친구삼아 자연을 노래하니 선계와 다르지 않다.덕봉에서 내려와 바윗길을 하행하면서 시원한 조망이 터지면서 높고 낮은 산들의 산등성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물결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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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위는 넘고, 큰 바위는 우회하며 하산을 계속한다. ‘추락 주의’ 푯말이 붙은 밧줄을 잡고 암벽을 트래버스 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지나온 하행 코스가 한눈에 들어온다.엄청나게 많은 거리를 이동한 것 같은데 하산한 거리가 겨우 1.5㎞에 불과하다. 그만큼 체력이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수안재까지 1.3㎞를 더 이동하는데 하산 길은 미로찾기를 방불케 한다.입석초등학교 방향 지시를 따라 가파른 길을 이동하니 부처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를 지나서 수안재에 도착하여 입석초교까지 4.2㎞의 기나긴, 약간은 지루한 하산을 한다.입석초교에서 문장로를 따라 약 1㎞을 이동해 갓길 주차장에 도착한다. 어둑해서야 돌아온 백악산 14㎞ 산행을 이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