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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의 시사칼럼] ‘5월 9일 자정’과 ‘5월 10일 0시’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2-03-24 00:31 | 수정 2022-04-30 11:43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5월 9일 자정’과 ‘5월 10일 0시’는 시곗바늘이 같은 위치에 있는 시각이고 9일과 10일의 날짜 분기점이다. 9일에서 보면 하루의 끝이고, 10일에서 보면 하루의 시작이다. 2022년 ‘5월 9일 자정’과 ‘5월 10일 0시’는 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5년의 재임 기간이 끝나는 시각이고,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5년의 재임 기간이 시작되는 시각이다. 그러니 특별한 시각이고 특별한 순간이다. 

윤 대통령 취임 날인 5월 9일까지는 47일 남아 있다. 2022년 5월 9일을 화두로 꺼내는 이유는 요 며칠 사이에 현 대통령 청와대 측과 차기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 측 사이에 오가는 브리핑의 행간에서 서로 지지 않고 상대의 속을 훑어내려는 날카로움이 엿보여서이다. 

선거 기간 내내 후보들이 상대 흠집 내기만 하다 치러진 저질 선거였지만, 선거가 끝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대로 신구 권력이 원만하게 권력을 인수인계하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안 되어 어느 쪽이 먼저라 할 것 없이 서로를 흔드는 바람에 가라앉은 앙금이 위로 올라와 분위기가 혼탁해졌다. 앞일이 순조롭지 않아 보인다. 5월 10일 이후가 어찌 될지도 걱정이다.

#2. 필자의 청년 시절은 ‘민주’라는 단어와 다소 거리가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땐 청년들 누구나 학교에서 배운 대로 정의(正義)가 충만했고, 열혈 용기로 민주주의 쟁취와 독재 타도 대오에 기꺼이 나섰다. 필자도 그러했다. 

민주주의 본산이라는 미국에서 선거라는 교과서적 제도로 권력이 평화롭게 이양되고, 신·구 대통령들이 이·취임식에 참석하여 성대하고 멋지게 축하하고 화답하는 광경이 무척 부러웠다. 우리는 언제 저렇게 대통령 이·취임식을 멋지게 할 수 있을까 라며 부러워했다. 미국같이 큰 나라가 선거라는 제도로 평화롭게 정권이 바뀐다는 사실이 그때의 필자에겐 머나먼 유토피아의 이야기로 보였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당시에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 이해된다. 의식주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콧등이 따뜻해질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나니 인권이 어떻고, 노동의 대가가 어떻고, 민주주의가 어떻고 하는 담론이 먹힌다는 사실도 이해된다. 

우리나라에서 오늘날처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까지(제대로 작동한다고 봐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희생자가 여럿 생겼고 많은 사람이 고난을 겪었다. 민주주의는 그냥 엿 바꿔 먹듯 쉽게 공짜로 얻어지는 게 아님을 우리 세대는 몸으로 실제 경험했다. 그런 연유로 필자 세대는 자유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3. 지난 3월 9일의 대선에서 국민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개표과정을 하얗게 밤새며 지켜보았다. 개표과정에서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결승전 같았던 쫄깃한 골든크로스도 보았다. 선진국이 민주적 절차만으로 권력이 교체되는 것을 부러워했던 50년 전 20대 청년이 70대 장년(?)에 이르러 우리도 권력 교체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느낀 감회가 그래서 더 남달랐다. 그건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긴 했구나’라는 자긍심이었다. 그땐 필자의 눈시울도 뜨거웠다.

그러나 그런 감격이 이제는 사라져 간다. 윤 당선인이 청와대를 폐지하고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실행하겠다는 시점부터 나라 안이 시끌벅적 한다. 진영에 따라 당선인 지지자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찬성하고, 그 반대 측은 연일 졸속 이전 운운하면서 온갖 이유를 들이대며 반대한다. 그런 과정까지는 민주국가에서 늘 그럴 수 있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청와대 시대를 마감하고 저잣거리에서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당선인에게 임기가 47일 남은 현직 대통령이 제동을 걸고 있다. 명분은 안보 공백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정부 예비비에서 이사 비용 충당을 요청하려는 대통령 인수위 측의 희망 사항을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개발되는 반대 논리가 자꾸 더해져서 양측이 감정 싸움할 위험한 지경까지 되었다. 

현 대통령 지지자들은 당선인의 졸속 결정을 연일 비난한다. 서둘 필요가 없다. 천문학적 이사 비용이 들 거다. 그 돈을 민생에 써라. 정권교체기의 안보가 우려된다 등등, 따지고 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공자님 훈수 같은 논리는 일이 안 되게 하려고 펴는 반대 논리이다. 그런 여론에 업혀서 문 대통령은 22일 “국가 안보와 국민 안전은 한순간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 임기 마지막 날 밤 12시까지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군 통수권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라며 5월 9일 자정 시각을 들먹였다.

#4. 문 대통령은 북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할 때도, 서해에서 표류하다 북에서 사살 소각된 우리 공무원의 죽음에도 무반응이었던 군 통수권자였다. 수없이 쏴대던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미상 발사체’ 또는 ‘불상 발사체’라 하면서 감히 도발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던 군 통수권자였다. 그런 건 안보 대비가 튼튼해서 그랬던 건가? 

필자의 눈엔 지난 5년의 치세 동안 뭐 하다가 지금에야 ‘안보 대비, 군 통수권’ 운운하는 대통령이 낯설고 매우 새삼스럽다. 5월 10일 청와대를 국민에게 개방하겠다는 당선인의 선언에 5월 9일 자정까지는 내 집이니까 기분 나쁘게 건들지 말라는 대통령의 뜻인 것 같다. 그것이 청와대 인사의 입을 통해 ‘격노’라는 단어로 표현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군 통수권자가 격노할 일은 국민이 적으로부터 위해를 받거나 나라가 도발을 받을 때이지 대통령직을 인계하는 일에 대해서 격노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 어느 국회의원은 “대통령 임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으니 당선인은 너무 나대지 말라”는 투의 말까지 했지만 어쨌든 47일은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군대에서도 전역 명령받은 왕고참은 후임 고참에게 내무반 일을 맡기고 내무반 TV 앞에나 앉아서 열외로 있는 게 관행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군대 다녀온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

떠날 대통령은 들어올 대통령의 의사를 최우선 존중해주는 게 세상 이치이고 미덕이다. 국민은 2022년 5월 10일 신임 대통령이 취임식 후에 퇴임 대통령을 정중하게 배웅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앞으로 47일간 군 통수권 운운하는 자존심으로 분란을 만드는 소식이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국민은 원하고 있다. ‘5월 9일 자정’과 ‘5월 10일 0시’의 차이가 뭔지 잘 이해해야 한다. 동서고금 권력의 세상이 원래 그런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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