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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 교수.ⓒ서원대
#1. 1866년 병인년에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를 탄압하면서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 신자를 대량 학살하자 이를 빌미로 프랑스가 함선을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한다. ‘병인양요’이다. 침입한 프랑스 함대를 물리친 흥선대원군은 “서양 오랑캐가 침입해 오는데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해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며, 그들과 교역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내용의 글을 반포하며 쇄국 의지를 강하게 천명한다.
1871년 미국이 조선을 침략하는 신미양요가 일어난다. 미군이 강화도에서 조선군과 싸운 뒤 4월 25일 퇴각하자,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하여 서울 종로 네거리, 경기도 강화, 경상도 동래군·함양군·경주·부산진 등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운다.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무능한 정치로 쇄진해진 조선에서 국력이랄 것도 없었지만 백성과 군졸들이 외침(外侵)에 대항했고 서양 군대는 지형지물을 잘 몰라 전황이 일시적으로 불리해서 철수했다. 그럼에도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고 나라를 지켰다고 오판하고 나라 문을 걸어 잠근 대원군의 외고집 쇄국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갔는지는 훗날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2. 최근에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에칭가스, 포토레지스트, 불화수소 등 반도체 제조공정 필수 소재의 수출제한을 하려는데 화가 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게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제한에 대하여 오지랖 넓은 청와대 민정수석이 SNS에 올리는 글이 국민들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한다. 민정수석의 SNS 글에 환호하는 국민들도 물론 있을 게다. 그러나 대부분의 양식 있는 국민들은 나가도 너무 나가는 민정수석의 글로 장차 한·일 정부 간 외교 협상력만 흠집 낼 거라고 걱정한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은 “SBS 드라마 ‘녹두꽃’ 마지막 회를 보는데, 한참 잊고 있던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나왔다”면서 7월13일에 ‘죽창가’를 올렸다. 설마 민정수석이 총대 메고 대통령의 의중을 내비친 건가? 국민들은 그것이 궁금하다.
120여 년 전 동학군이 수적 우세만 믿고 화승총과 죽창으로 관군과 일본 연합군에 대들다 단 몇 대의 기관총에 궤멸되었던 공주 우금치 전투를 두고 그들이 나라 지키려다 장렬히 산화한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동학군이 죽창을 들었던 이유는 관의 폭정과 가렴주구에 대한 저항이었지 일본에 대한 저항은 아니었다.
조 수석이 7월18일에는 “대한민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경제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속에서도 ‘협상’은 진행되기 마련이고…. 그러나 ‘전쟁’은 ‘전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진보’냐 ‘보수’냐, ‘좌’냐 ‘우’냐가 아니라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이다” 라고 썼다.
지난 20일에는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 비난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마땅히 ‘친일파’라 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썼다.
21일에는 “문재인 정부는 국익 수호를 위해 ‘서희’의 역할과 ‘이순신’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일본 국력, 분명 한국 국력보다 위다. 그러나 지레 겁먹고 쫄지 말자. 법적·외교적 쟁투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는 싸워야 하고, 또 이겨야 한다.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라고 했다.
이날 여당 원내대표도 “경제 한·일전에서 우리 선수를 비난하고 심지어 일본 선수를 찬양하면 그것이야말로 신친일(新親日)이다”라면서 민정수석을 거들었다.
조 수석이 SNS에 올린 일련의 글과 여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국민들에게 반일운동을 하라고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말이다. 정부가 나서서 국제적 관례에 맞게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긁어 부스럼 만들고 나선 아무 대책 없이 국민더러 반일운동을 하라는 게다.
국민들에게 동학군처럼 죽창을 쥐고 기관총에 대들라는 건가? 민정수석과 여당 원내대표의 말을 요약하면 ‘일본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日本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이라고 협박하는 말이다.
국민들은 일본의 반도체 관련 소재 수출제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나라 안보도 우려한다. 또한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대책이 과거의 항일 투쟁 수준 밖에 안 되는 것에 큰 실망을 한다.
문재인 정권의 대일 정책을 보면 150여 년 전에 세워졌던 흥선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가 21세기 대한민국의 ‘척일비(斥日碑)’로 되살아난 것 같다.
반일선동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겠는가?
‘비전즉화 주화매국(非戰則和 主和賣國)’이라는 선동으로는 절대 일본을 이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