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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방영되었던 ‘해를 품은 달’이라는 TV드라마가 있다. 조선시대 가상의 왕 ‘이훤’과 무녀 ‘월’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인기를 끈 궁중 로맨스 드라마이다. ‘해품달’ 드라마처럼 예로부터 해나 달은 흔히 절대 권력자나 최고 통치자의 상징으로 비유되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우리 사회에서 그런 ‘해’와 ‘달’이란 말이 나돌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 66회 생일인 1월24일을 앞두고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시내 주요 지하철역에 대통령 생일축하 광고를 실었다. 유명 아이돌스타의 열성 팬클럽이 돈을 모아 지하철에 아이돌 스타를 응원하는 광고를 낸 적이 있지만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는 정치지도자의 생일광고를 지하철역에 게재하는 것에 지지자와 비판자 사이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논란이 뜨겁다.
지하철역에 대통령 생일축하 광고를 게시하는 게 적절한 행위인가도 생각해봐야 하지만, 그보다는 광고 문구가 필자에게는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온화한 표정의 대통령 사진 옆에 ‘1953년 01월24일, 대한민국에 달이 뜬 날’이라는 문구에서 김 아무개가 태어난 날을 태양절로 받드는 북한이 생각나서 섬뜩함을 느꼈다.
대통령 성(文)을 영어로 표현하면 달(MOON)을 의미해서 그런다고는 하지만 대통령이 달로 비유되는 것을 예사로이 아무렇지 않게 볼 것인가에 대하여는 앞으로도 논란이 될 소지가 많다.민주공화국인 자유대한민국에서 개인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시하는 것에 무어라 말할 수는 없다. 전쟁의 참화와 어려운 시대를 겪은 우리 사회의 원로 세대들은 대통령을 ‘달’로 비유하는 생일 축하 광고를 보면서 ‘태양’으로 추앙받는 북한의 김 씨 왕조가 자꾸 오버랩 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6‧25에 대한 트라 우마 때문에 나오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래서 생일축하광고가 우리 사회에 드리우는 우상화의 시발이 될지도 모른다는 일부의 걱정이 기우(杞憂)는 아닐 터이다.
지난 17일에는 집권 여당의 대표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게재되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비난 댓글에 대하여 “익명의 그늘에 숨어 대통령을 ‘문재앙’, ‘문슬람’으로 부르고 지지자를 농락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일반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너그러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댓글에 대한 법적 장치를 신속하게 마련하여 처벌하겠다는 여당 대표의 발언에서 자유대한민국에 우상화와 전체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어지려는 것 같아서 또 한 번 섬뜩함을 느낀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구호로 겸손과 소통을 앞세워 출발했던 촛불혁명정부의 정치적 언사와 정책이 갈수록 강압적이고 일방적이며 독단적으로 바뀌고 있다. 집권 7개월 차에 들어서서도 대통령의 여론 지지도가 높은 것에 고무되어서인가? 정치의 맛을 알게 되어서인가?
역사의 전례로 보아 치자(治者)가 겸손의 덕목을 놓을 때가 권력의 힘(지지도)이 하강국면에 들어서는 시점이었음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필자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어느 시점부터 이승만 대통령 탄신일이 오면 대통령 탄신축하 꽃단장한 시내버스가 거리를 누비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4‧19 민주혁명이 일어났고 자유당 정부는 몰락했었다.
대한민국에 뜬 ‘달’이 온 누리를 고르게 환히 비쳐줄 지는 알 수 없으나 5년 시한의 대통령을 나라의 ‘달’이라 말하는 건 낯간지러운 찬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현대 민주문명국가 어디에도 치자(治者)가 ‘해’나 ‘달’로 불리는 곳은 없다. 그래서 고언하건데 대통령이나 여당 정치권이 나서서 광고를 내리게 할 의사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