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정기를 담은 명산[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북 구미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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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애여래입상 부근에 핀 앙증맞은 작은 철쭉.ⓒ진경수 山 애호가
금오산(金烏山, 해발 976m)은 경북 구미시·칠곡군·김천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1970년 6월 1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우리나라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산명(山名)은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阿道)가 저녁놀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명명하였다고 전한다. 이 산은 산세가 가파르고 기암절벽과 수림이 잘 어울린 산으로, 그야말로 태양의 정기를 받는 명산이다.ㅎ산의 동쪽에서 바라보면 사람이 하늘을 보고 누워있는 형상으로 보이는 까닭에 와불산(臥佛山) 또는 거인산(巨人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
- ▲ 금오지(金烏池)에서 바라본 금오산.ⓒ진경수 山 애호가
금오산을 오르기 전에 애국지사 박희광 동상 근처의 주차장에 도착해 금오산 올레길을 걷는다. 이 길은 1946년에 설치된 금오지의 둘레 2.4㎞ 수변산책길이다. 평일 아침 8시경인데도 많은 사람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다가오는 금오정(金烏亭)을 지나 초록으로 물든 수변로를 걸으니 걷는 이의 몸도 마음도 푸르름으로 금세 물든다. 진분홍 철쭉 너머로 반짝이는 윤슬에 마음마저 빼앗겨 잠시 시인이 된다.배꼽마당이라고 하는 작은 공연시설을 지날 땐 자연과 문학, 그리고 예술의 한마당을 바라보는 관객이 된다. 부잔교와 제방을 걸으면서 물에 비친 금오산을 바라보니 그 산세가 가팔라 오늘 산행이 만만치 않겠다 싶다. -
- ▲ 금오산성 대혜문.ⓒ진경수 山 애호가
금오지의 물넘이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해, 다시 금오산 제1주차장(구미시 금오산로 419)으로 향한다. 주차장에는 경차를 위한 주차공간이 넉넉하고, 주차비도 할인해서 온종일 500원이라니,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할만한 구미시의 똑 부러진 정책이 아닌가 싶다.탐방안내소를 지나면서 울창한 소나무숲은 천막이 되고, 편평한 돌들은 멍석이 된다. 청량한 계곡 물소리와 청아한 새소리는 풍악이 되어 그야말로 잔칫날 춤추듯 발걸음을 가뿐하게 옮긴다. 케이블카 타는 곳을 지나면서 데크 계단이 한동안 이어진다.길 안쪽으로 고개를 쭉 내민 송화 봉오리가 토실토실하다. 송화떡과 송화다식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커다란 돌탑을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돌길을 오르면 금오산성 대혜문(大惠門)을 지난다. 이 산성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 한다. -
- ▲ 해운사 입구.ⓒ진경수 山 애호가
점점 경사가 가팔라지면서 빠진 머리털 구멍에선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연실 땀이 솟아나고, 심장은 마구잡이로 요동치며, 종아리는 뻐근하게 당긴다. 오월 초에 봄 감기로 병치레를 한 탓일 게다. 잠시 쉼을 갖는 데, 눈앞에 누리끼리하게 단풍잎이 아른거린다.그것들은 가을엔 선명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리라. 혹여 기후가 안 좋아 기대에 못 미치면 내년을 기약하리라. 허나 우리네 삶의 색은 한번 물들면 좀처럼 바꿀 수 없으니, 현명하면서도 참으로 미련한 듯하다. 그러기에 매사 살얼음을 걷는 듯 신중해야겠구나 싶다.다시 시작한 발걸음은 케이블카 종착지를 지나 음수대인 영흥정(靈興井)에 닿는다. 센서가 있어 등산객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물이 쏟아져 나온다. 시원하게 물 한 바가지 들이키고 바로 위에 있는 해운사(海雲寺) 경내로 들어선다. -
- ▲ 도선굴 오르는 길.ⓒ진경수 山 애호가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즉, 모든 악을 저지르지 말고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한다는 것을 되새겨본다. 이것은 어찌 보면 양심(兩心)이 아니고 양심(良心)으로 사는 것이 진리(眞理)라는 것이고, 그러면 그 자체가 행복(幸福)이라는 말이다.대웅전 뒤편으로 우뚝 솟은 암봉에 있는 천연 동굴인 도선굴(道詵窟)로 향한다. 천길 낭떠러지 암벽 옆으로 좁은 돌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쇠사슬 난간을 보니 쬐게 마음이 놓인다. 신라말 풍수의 대가인 도선선사가 득도했다는 도선굴에 닿는다.굴 내부 길이 7.2m, 높이 4.5m, 너비 4.8m 정도로 제법 넓고, 그 옆 동굴에는 세류폭포가 있다. 동굴에서 해운사와 구미 시내를 조망한 후, 잠시 머물러 모든 시름을 내려놓는다. 안달하고 조바심한다고 사라질 것이 아니려니, 무위(無爲)로써 삶의 지표로 삼는다. -
- ▲ 대혜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도선굴에서 내려와 해발 400m에 위치한 대혜폭포를 찾는다. 수직 27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대혜폭포의 장쾌한 물소리가 발길을 유인한다. 규모의 웅장함과 쏟아지는 시원함에 매료되어 쉴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그 사이에 몸은 폭포가 만드는 음이온으로 뒤덮여 양이온이 중화되어 자연상태로 복귀되니 기운은 하늘을 뚫을 만큼 샘솟는다. 그뿐인가 금오산 정상부근의 분지에서 발원해 긴 계곡을 따라 흘러 금오지의 유일한 수자원이 되니 그 이름이 대혜폭포(大惠瀑布)가 아닌가.선녀들이 폭포의 물보라가 이는 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주변 경관과 옥같이 맑은 물에 반해 폭포수가 이룬 욕담(浴潭)에서 목욕을 즐겼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
- ▲ 할딱고개에서 만난 연분홍 철쭉꽃.ⓒ진경수 山 애호가
노자는 ‘수선이만물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水善利萬物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라 했다. 즉,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지만 만물이 서로 다투지 않게 하며 뭇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낮은 곳에 머무니 거의 도에 가깝다는 것이 바로 상선약수다.금오산이 품고 있는 풍경에 빠져서 발걸음이 한참 더뎌졌다. 이제 대혜폭포에서 2.1㎞ 더 위에 두고 있는 금오산 정상 현월봉(懸月峯)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수행이 이런 거로구나 싶다.이 계단이 설치되기 전에는 아마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으며 위험스럽게 올라야 했을 테니 외려 계단이 고맙다. 계단은 암봉 조망지로 이끌어 멋진 풍광으로 보상한다. 바로 앞에 도선굴과 발아래로 금오지와 구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
- ▲ 오형석탑.ⓒ진경수 山 애호가
조망지부터 정상을 향하는 길은 때론 칼날처럼 날카롭고 두더지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온 바윗길과 자잘한 돌이 깔린 돌길로 거칠고 험하며 가파르다. 이어지는 돌계단의 가파른 경사는 가쁘고 급하게 숨 쉬게 하니 이름하여 ‘할딱고개’다.오늘 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싶을 땐 새들이 응원하는 소리를 듣고, 소담스럽게 피어난 여러 야생화에서 쉼을 얻는다. 한때 하늘이 열리는 길에선 발아래 펼쳐진 시가지에 가슴을 활짝 열어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렇게 한계를 극복해 나아간다.석간수의 신비함에 갈증을 풀고 연분홍 철쭉꽃의 손짓에 정신을 붙잡는다. 마애석불과 정상 갈림길에 이르러 마애석불 방향으로 다시 거친 돌길을 올라 바위 조망지에 닿는다. 소진된 에너지를 보충하며 칼다봉을 비롯해 금오산이 주는 풍광을 맘껏 누린다. -
- ▲ 마애불입상.ⓒ진경수 山 애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하는 데 무심코 잡은 방향이 되돌아가는 길임을 알고 깜짝 놀란다. 세월의 무게를 오랫동안 짊어지고 살아온 삶 속에서 서서히 총기를 잃어가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잃어가는 것이 총기가 아니던가.가만히 두어도 몸과 마음이 변해가거늘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세파에 시달려 육십 중반에 이르렀으니 그 변화가 오죽할까 싶다. 흩어진 총기를 퍼즐 맞추듯 한 조각씩 모아야겠다. 바로 저 앞에 보이는 오형석탑(烏亨石塔)처럼 말이다.발길이 닿은 오형석탑 조망지에 서니 백운봉과 칼다봉, 마애불의 암봉, 그리고 급하게 내리꽂는 산자락 끝의 금오지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런 멋진 풍광을 뒤로하고 쌍룡문(雙龍門)을 지나 마애불로 향한다. -
- ▲ 약사암.ⓒ진경수 山 애호가
맹렬하게 정진(精進)하는 듯한 진홍색의 철쭉꽃, 화안(和顔) 시주하듯 엷은 미소를 짓는 연분홍색의 철쭉꽃, ‘자정기의(自淨其意,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함.)’의 죽비를 든듯한 하얀색의 철쭉꽃이 눈길을 사로잡는다.금오산 마애불(磨崖佛) 앞에 서서 산란했던 마음을 하나로 다잡고 정진할 힘을 얻는다. 이 불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5.5m에 달한다. 특이한 점은 자연 암벽 모서리의 튀어나온 부분에 좌우를 나누어 입체적으로 불상을 조각한 점이라 하겠다.중생의 소원을 모두 성취하게 해준다는 여원인(與願印) 자세를 취한 마애불께 가족과 이웃, 직장과 사회, 그리고 대한민국과 인류의 평안을 기원해 본다. 소원이 너무 많았나 싶다. 계속해서 금오산 둘레길을 걷는다. 높낮이가 좀 있긴 하지만 그리 많이 힘들진 않다. -
- ▲ 금오산 현월봉 바로 밑에 자리한 동국제일문.ⓒ진경수 山 애호가
‘16 쌍둥이’ 단풍나무와 뿌리를 하늘 향해 자라는 나무, 그리고 석간수를 지난다. 약사암을 0.2㎞ 앞두고 돌계단을 오를 즈음엔 체력이 다 소진된 듯 저절로 ‘약사여래불’이란 말이 튀어나온다. 화사한 연분홍 철쭉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약사암(藥師庵) 경내로 들어선다.신라 시대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약사암은 거대한 암봉 아래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다. 삼성각 뒤편 거대한 두 바위 틈새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 동국제일문(東國第一門)을 지난다.드디어 해발 976m 금오산 현월봉에 도착한다. 이곳은 옛 선조들이 높은 곳에 올라 산 아래와 먼 곳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포부를 마음속에 새겼던 장소인 후망대(候望臺)이다. 금오산 정상의 사방팔방 탁 트인 후망대에서 다시 내일을 힘차게 살아갈 희망을 얻는다.오늘 산행은 ‘제1주차장~금오산성~해운사~도선굴~대혜폭포~할딱고개~마애불·정상갈림길~오형석탑~마매불입상~약사암~정상~금오산성~성안갈림길~마애불·정상갈림길~원점회귀’의 총 9.55㎞이다. 금오산 올레길을 포함하면 총 11.95㎞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