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충(沖)이 들어오는 해인가?
  • 최백수의 차가 뭔가에 걸리는 느낌을 받는다. 빨리 달리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은 과속방지턱이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노란 경고색이 선명해야 하는데 다 벗겨져서 알아볼  수가 없다.
    “깨끗한 도시 청주가 언제 이렇게 변했지?”
    어디 가서 청주 산다는 말을 하기가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요즘은 사건 사고가 나도 청주가 제일 많이 터지고, 깨끗한 교육도시란 말을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지저분해졌다. 이게 다 청주시장이 해야 할 일들인데….

    최백수의 생각은 다시 이승훈시장의 수사 문제로 향한다. 권태호 변호사가 누구인가? 청주사람들은 다 아는 인물이다. 요즘 청주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총선 후보다. 특히 춘천지방 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서울고검 검사로 있다가 퇴직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더구나 청주지검 차장검사를 지낸 경력까지 있다. 아직은 말발이 설 것이다. 청주 법조계에서는 원로로 행세할 게 뻔하다. 이뿐만도 아니다. 청주지검 차장검사 출신의 정상환 부천 지청장도 변호인으로 가세했다고 한다.

    이승훈 시장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는 검사들은 전직 상관 두 명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형국이 된 셈이다. 검사도 사람이다. 언젠가는 퇴직해서 변호사로 활동할 텐데 무시할 수가 없는 압력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전관을 예우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판사 검사 변호사는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동업자?“
    법조인들은 우선 명문대학 법과를 졸업한 동문의식으로 뭉쳐있다. 법조계에서 선후배로 활동하면서 동료의식으로도 뭉칠 수밖에 없다. 특히 언젠가는 변호사로 개업할 것이라는 동업의식으로도 뭉칠 것이다. 이중삼중으로 뭉쳐있는 셈이다.
    “전관예우!”
    전관예우는 법조비리로 연결되는 고리다. 최백수는 법조비리란 말만 나오면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법조비리의 심각성이 바로 이거다.”
    죽기 살기로 대드는 사람에게 뇌물을 받기가 얼마나 쉬운가. 세상에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처럼 급한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렇게 다급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돈을 우려내니 얼마나 쉽겠어?
    얼마나 말발이 잘 먹히겠는가? 손을 벌릴 필요도 없다. 알아서 낼 테니까. 가히 저승사자와 같은 위세를 부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저승사자에게 뇌물을 주고 목숨을 살 수만 있다면 돈을 아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물불을 안 가릴 것이다. 전두환 이상으로 현찰을 긁어모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이지만 요즘은 검찰도 예전 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이승훈 시장 문제에 불길한 느낌을 받는 사람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위세가 대단했다. 이승훈 시장을 부르기까지 맹수가 토끼를 사냥하듯 사방에서 숨통을 조여왔다. 알 만한 사람은 다 불러다가 조사했고, 청주시청까지 압수수색했다. 그러니 작심하고 덤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연 구속이란 말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고, 당선무효라는 단어도 떠올 릴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들이 동요하는 게 당연했다. 동요는 지역사회까지 파급되었다. 최백수는 자기 판단이 20여 년 전쯤에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한다. 옛날 같으면, 권위주의 시절 같으면, 아무리 검찰이라도 현직 청주시장을 소환조사하는 건 지검장 판단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정치적인 판단이 선행되어야만 했다.

    더구나 청주시장은 그냥 시장도 아니다. 충북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초대통합민선 시장이다. 도지사 못지않은 자리다. 국회의원을 지낸 거물까지도 탐내는 자리다.
    “민선 시장!”
    대통령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자리다. 임면권이 없으니까. 그런 시장을 소환 조사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구속을 하거나 당선 무효형을 구형한다는 것은 청와대까지도 눈치를 봐야 하는 중대 사안이다.

    그러나 최백수는 자신이 없다. 백수로 산 세월이 너무 오래되어서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집권여당 소속인데….”
    그러다가 말겠지란 말은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만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야당 편을 들다가 청와대에 찍혀서 떨려 나는가하면, 검찰총장 말도 듣지 않는 검사도 많은 세상이다. 대통령을 ‘카카 새끼’라고 욕하는 판사도 있다.
    최백수는 옛날 생각을 가지고 섣불리 판단할 일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그렇다면 운이 좌우할까?”
    최백수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이성으로는 분석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승훈 시장이 어떤 운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주를 봐야 하는데,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가 필요하다.

    다시 차를 세우고 검색을 해볼까? 그러나 하상도로에선 차를 세울 공간이 없다. 설혹 차를  세운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있다. 이승훈 시장의 생년월일은 알 수 있겠지만, 그게 음력인지 양력인지는 직접 물어봐야 한다.

    “전활해볼까?”
    부질없는 짓이다. 태어난 시는 본인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최백수는 이승훈 시장을 보면서 사람이 분명해 보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섞여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매주 월수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