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농촌 한복판서 12년째 이어온 ‘존중의 약속’상패와 장학금에 담긴 메시지…농업의 미래는 ‘사람 투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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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병순 광복영농조합법인 대표가 지난 5일 청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광복농업상 시상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농촌의 현실은 냉정하다. 인구는 줄고, 마을은 늙어가며, 농사를 이어가겠다는 젊은 이름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폭염과 이상기후, 농자재·인건비 상승은 농업을 ‘생계’가 아닌 ‘버팀’의 문제로 만들었다. 오늘도 많은 농업인이 수지를 따지기보다 “올해도 버텨야지”라는 말로 밭으로 나선다. 바로 그 현실 한가운데서, 광복영농조합법인(대표 전병순)의 ‘광복농업상’은 12년째 같은 자리에서 조용히 불을 밝히고 있다.지난 5일 청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제12회 광복농업상은 단순한 시상식이 아니었다. 이 상은 광복영농조합법인이 매년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농업인에게는 상패와 시상금을, 학생들에게는 장학금으로 되돌려 온 ‘지속의 실천’이다. 일회성 지원도, 이벤트성 기부도 아니다. 농업이 존중받아야 지속할 수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법인이 스스로 증명해 온 시간이다.대상을 받은 옥산면 윤병욱 씨의 이름이 호명될 때, 그 상패가 상징하는 것은 ‘성과’보다 ‘세월’이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던 농번기의 더위와 농한기의 불안, 해마다 반복되는 자연과 싸움 속에서도 땅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에게 공동체가 건네는 최소한의 예우였다. 광복농업상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값어치를 가진다.이 상이 더 특별한 이유는, 농업인을 ‘지원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주체’로 세운다는 데 있다. 전병순 대표가 밝혀온 제정 취지는 분명하다. “드러나지 않는 농업인의 삶을 지역이 먼저 기억하자.” 행정의 언어로는 담기 어려운 이 메시지를, 광복영농조합법인은 12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실천해 왔다. -
- ▲ 광복영농조합법인‧청주시농업기술센터가 주최한 제12회 광복농업상 시상식이 5일 오전 청주시농업기술센터 청심관에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김정원 기자
올해 처음 전달된 ‘희망얼굴’ 작품은 시상의 의미를 한층 깊게 만들었다. 수상자의 얼굴을 직접 그려 건넨 이 선물은, 상패보다 오래 남을 기억이자 농업인의 삶을 ‘예술’로 기록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농업인의 얼굴을 이렇게 바라봐 준 적이 있었나”라는 말이 수상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학생 장학금 역시 같은 맥락이다. 초‧중‧고교생과 대학생 20명에게 전달된 2000만 원은 숫자로만 보면 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농촌에서 ‘공부를 계속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는 돈, 다시 지역으로 돌아올 이유를 남기는 씨앗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는 훨씬 크다. 농촌이 비어가는 지금, 사람에 투자하지 않는 농업 정책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광복농업상은 묻는다. 우리는 그동안 농업인을 얼마나 존중해 왔는가. 농촌이 무너지면 농업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뿌리와 공동체의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 왔는가.12년째 이어진 광복농업상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답을 내놓고 있다. 농업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는 태도에서 시작된다는 것. 피폐해진 농촌의 한복판에서 이 상이 여전히 ‘희망’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묵묵히 땅을 지키는 농업인들에게, 광복농업상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의 삶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
- ▲ 전병순 대표의 지원으로 지선호 희망얼굴연구소장이 그린 농업인들의 희망얼굴을 전달했다.ⓒ김정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