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에서 시조로…20년 넘게 ‘우리 소리’ 맥 있고 ‘후학 양성’“회원 회비와 자부담으로 전국대회…“경로잔치 예산에도 못 미쳐”“한 번 사라지면 복원 어려워…지속적인 지원 없인 명맥 단절”“시조는 정서와 교육의 토대…명맥 잇는 건 결국 사람”
  • ▲ 이명숙  제30회 청주 직지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집행위원장이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이명숙 제30회 청주 직지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집행위원장이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9일 충북 청주향교에서 열린 제30회 청주 직지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이 대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은 이명숙 청주 도원일식 대표(전 대한시조협회 충북지부장)는 20년 넘게 대한시조협회 청주지회장을 맡는 등 시조 보급과 후학 양성에 힘써온 인물이다.

    원래 경기민요와 판소리 단가 등 국악 전반을 배워오던 그는 2003년, 우연한 계기로 시조창을 접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정서적으로 저와 잘 맞았어요. 시조는 양반들이 즐기던 ‘정가’로, 국문학적·음악적·정서적 요소가 결합한 장르죠. 우리 소리가 가진 깊이를 알게 됐습니다.”

    이 집행위원장은 사범 자격을 갖추고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폭넓게 시조를 가르친다. 장구 반주와 함께 시조 창법을 지도하며, 제자 중에는 전주대사습 전국대회 학생부 장원 수상자도 있다. 특히 그는 초등학교와 특수학교에서도 강의하며, 산만한 학생이나 발달장애 아동까지 시조 수업에 참여시킨다. “태산이 높다 아, 한 수 읊고 나면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부모님들이 ‘아이 성격이 달라졌다’며 고마워하시죠.”

    그는 시조를 ‘우리 소리의 뿌리’로 본다. “트로트나 K-POP에도 국악의 발성이 깔려 있어요. 시조는 정신문화이자 정체성입니다.” 청주에서 30여 년간 뿌리내린 그는 지역의 양반 문화와 교육도시라는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시조 전승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집행위원장은 “충청도 사람답게, 우리 문화를 지켜가는 일에 끝까지 힘을 보태고 싶다”며 사라져가는 전통의 숨결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번 전국 대회를 준비하면서 예산 부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전국 대회를 하루 앞두고 8일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한 이 집행위원장은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는 5000만 원, 밀양은 3000만 원, 나주 2500만 원… 그런데 청주시는 고작 560만 원입니다. 이러다 시조 명맥이 끊어질까 걱정됩니다.”
  • ▲ 이명숙 제30회 청주 직지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집행위원장.ⓒ김정원 기자
    ▲ 이명숙 제30회 청주 직지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집행위원장.ⓒ김정원 기자
    그는 전국 각지에서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수천만 원씩 지원하는 사례를 소개하며, “청주가 세수도 많고 역사도 깊은 도시인데 전통문화 지원에는 너무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전국 시조 대회 지원 현실을 수치로 비교했다. 그는 “경상북도는 도 차원에서 각 지자체에 기본 1800만 원을 배정합니다. 여유 있는 곳은 더 얹어줘요. 밀양은 3000만 원, 강원도 삼척은 5000만 원, 전남 나주는 2500만 원, 심지어 충북 보은군도 1500만 원을 줍니다. 그런데 청주시는 세수도 많으면서 왜 560만 원밖에 안 주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대회 운영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회원들이 회비를 십시일반 모으고, 우리 돈을 천만 원 가까이 자부담했습니다. 경로잔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는 전국 규모 대회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시·군처럼 안정적인 지원이 없으면, 청주 시조 대회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청주시 지원은 과거보다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200만~300만 원을 받으며 근근이 대회를 유지하다, 이승훈 전 시장 시절에 1000만 원까지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후 계속 삭감돼 지금 수준이 됐어요. 더 황당했던 건, 한 신생 단체에는 설립 첫해부터 1000만 원을 지원하더라는 겁니다. 보통은 2~3년은 자력으로 행사를 이어가야 지원이 나가는데, 이례적이었죠. 그걸 알게 된 저는 시청에 가서 ‘이건 조례 위반이고 감사받을 일’이라고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계기로 “시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역사가 깊은 단체는 계속 깎고, 신생 단체에는 크게 주는 게 말이 됩니까? 전통을 이어가는 데는 꾸준한 지원이 핵심입니다.”

    이 집행위원장은 시조의 가치를 ‘정서 함양’과 ‘교육 효과’에서 찾았다. “K-팝이든 트로트든, 그 밑바탕에는 우리 소리가 깔려 있습니다. 시조는 국문학적·음악적 가치뿐 아니라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정서를 다듬는 힘이 있습니다. 장애 학생들도 시조 수업을 거치면 눈에 띄게 변합니다. 처음엔 소리 지르고 산만하던 아이가 몇 달 뒤엔 시조 한 수를 읊으며 차분해지는 걸 보면, 이게 단순한 예술이 아니라 인성 교육이란 걸 느낍니다.”
  • ▲ 이명숙 제30회 청주직지 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집행위원장이 인터뷰 도중 밝게 웃고 있다.ⓒ김정원 기자
    ▲ 이명숙 제30회 청주직지 전국명인대전 시조경연대회 집행위원장이 인터뷰 도중 밝게 웃고 있다.ⓒ김정원 기자
    그는 직접 지도한 초등학생이 전국 규모의 전주대사습 학생부 장원을 차지한 사례를 언급했다. “시조를 오래 배우면 발성과 호흡이 좋아지고, 국악적 감각이 몸에 배어 다른 장르를 해도 깊이가 달라집니다.”

    강원도 정선 출신인 이 집행위원장은 결혼 후 청주에 정착해 30년 넘게 살았다. “저는 여기서 두 아들을 낳았고, 이제 제 뿌리는 충청도입니다. 충청북도는 ‘양반의 고장’이라 불리는데, 정작 양반 문화의 상징인 시조를 지키려는 움직임은 약한 것 같아요. 이런 건 없어지면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시와 지역사회가 뜻을 모아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대기업 사회공헌 연계, 민간 후원 확대 등을 시도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사회공헌 예산을 많이 쓰지만, 국악·시조 분야에는 손이 잘 안 미칩니다. 누군가 연결해주고, 시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집행위원장은 “대회는 돈으로만 유지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로 살아남는다”고 했다. “회원들이 자부담까지 하며 대회를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헌신도 한계가 있습니다. 후손들이 시조를 듣고 배우며, 청주가 ‘시조의 고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시조는 우리 소리의 뿌리이자 문화 정체성입니다. 이것을 잃으면 우리는 스스로 뿌리를 잘라내는 겁니다.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청주의 더 큰 관심과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