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매섭고 암팡진 산세가 매력[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강원 홍천군 편
  • ▲ 팔봉산.ⓒ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진경수 山 애호가
    팔봉산(八峰山, 해발 327.4m)은 강원도 홍천군 서면 팔봉리에 있는 산으로, 맑고 깨끗한 홍천강이 산허리를 휘돌아 흐르고 있다. 가장 동쪽 봉우리가 1봉이고 서쪽 물가의 끝 봉우리가 8봉이며, 최고봉은 2봉이다. 

    팔봉산을 접하고 나면 세 번은 놀란다. 처음 이 산을 볼 때 명성에 비해 나지막하여 놀라고, 거칠고 험한 바윗길을 오르면서 만만치 않아 다시 놀라고, 봉우리마다 선보이는 기암괴석과 산수(山水)의 아름다운 풍광에 또다시 놀란다.

    이번 산행은 팔봉산사주차장(홍천군 서면 어유포리 272-13)을 출발해 팔봉교를 건넌 후, 산행안내센터를 지나 1봉부터 8봉까지 차례로 오른 후 강변로를 따라 원점 회귀하는 코스로 총 거리는 약 5.5㎞이다.
  • ▲ 팔봉교 건너편에 자리한 팔봉산 1봉.ⓒ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교 건너편에 자리한 팔봉산 1봉.ⓒ진경수 山 애호가
    주차장에서 한치골길을 따라 팔봉교를 향해 걷는다. 유유히 흐르는 홍천강과 어우러진 팔봉산이 한 폭의 한국화 같다. 팔봉교를 건너 산행안내센터에 이르니 남근석과 장승이 눈길을 끈다. 산의 음기 중화로 산행 사고를 막고 사자(死者)의 혼령을 달래기 위함이란다.

    팔봉산 등산로 입장료는 2025년 1월 1일부터 무료화했다. 연보라색 등나무꽃 아래의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 내음이 복잡한 뇌를 시원하게 씻어낸다.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능선을 타다 보면 1봉과 2봉 갈림길을 만난다.

    1봉으로 가는 험한 길을 오른다. 청록에 가려졌던 산의 거친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깎아지른 암벽을 오르고 험한 산길의 오아시스 같은 계단을 오르자 조망이 터진다. 홍천강을 비롯해 여러 산과 시선을 맞추고 다시 바윗길을 오르다가 바위 틈새에서 옆으로 자라는 소나무를 만난다.
  • ▲ 팔봉산 2봉을 오르는 암벽.ⓒ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2봉을 오르는 암벽.ⓒ진경수 山 애호가
    한치골길을 걸으면서 바라볼 때 관모(官帽)와 유사한 모양이었던 1봉 정상에 도착한다. 눈앞에 닿은 2봉으로 가기 위해 꼬꾸라질 듯 미끄러지는 암벽을 내려간다. 다행스럽게도 철제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 안전하게 하행한다. 

    안부를 지나 2봉과 3봉 갈림길을 만난다. 2봉 가는 길이 암벽 구간이라 위험하여 곧장 3봉으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2봉을 직접 오를 수 있다. 2봉을 오르는데 암벽 등반을 방불케 하는 수직처럼 곧추선 바윗길, 손은 밧줄에 발은 바위에 박힌 디딤판에 의지해 오른다. 

    잠시 쉼을 가지며 지나온 1봉과 홍천강 건너 금학산을 조망한다. 말없이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이 켜켜이 이어지는 산 너울 사이로 파고들어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처럼, 민초(民草)의 올곧은 사상이 차별 없는 모두가 평등한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일구기를 기원해 본다.
  • ▲ 팔봉산 3봉.ⓒ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3봉.ⓒ진경수 山 애호가
    드디어 해달 327.4m인 2봉 정상에 닿는다. 이곳엔 산신각(山神閣)과 세 부인(이씨, 김씨, 홍씨)의 신(神)을 모신 삼부인당(三婦人堂)이 있다. 이것은 예부터 주민들이 고산준령을 마다하고 이 자그마한 산에 의지하며 살아왔다는 증표일 게다. 그건 이 산을 산 중의 산이라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넘어야 할 3봉을 바라보고 험한 바윗길을 철제 난간에 의지해 내려선다. 안부에 이르니 하산로가 있다. 3개 구간의 곧추선 철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의 폭이 좁아 일방통행만 가능하다. 3봉에 오르니 봉우리는 망설임 없이 경치를 내어준다. 

    산자락을 휘돌아가는 홍천강과 산등성이 펼치는 장쾌한 풍경이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다. 실바람조차 걸림이 없는 사람이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하듯이 말이다. 자연 풍경이 사상(思想)을 키우고, 소소한 사상이 잘 엮어질 때 삶의 철학이 무르익는 게 아닐까 싶다.
  • ▲ 팔봉산 3봉에서 바라본 홍천강.ⓒ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3봉에서 바라본 홍천강.ⓒ진경수 山 애호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니 아찔하게 아래로 내리꽂고, 2봉은 수줍은 듯 숲 사이로 살짝 얼굴을 내민다. 4봉으로 진행하기 위해 철제 계단을 내려선다. 해산굴과 4봉 갈림길에서 해산굴 통과를 도전하기로 한다. 해산굴이란 이름은 이 굴을 통과하기가 산모의 고통에 버금갈 만큼 어렵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정말 굴을 통과하기에 어려운 듯 순서를 기다리는 등산객들이 줄지어 있어 다시 돌아가 구름다리를 건너 4봉을 오른다. 일망무제로 펼쳐진 풍광은 지나온 봉우리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 있건만, 발길 닿는 이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느낌은 또 다르다.

    사람의 관점에 따라, 처한 상황에 따라 같은 사물을 달리 해석할 수 있으니,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빚는 원인일 게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자연의 조화처럼 대화와 소통, 토론과 경청, 그리고 배려로 상호 조화를 이루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 ▲ 팔봉산 5봉 정상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5봉 정상 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노자는 도덕경 제50장에서 ‘출생입사(出生入死)’라 했다. 즉 삶을 얻어 살다가 언젠가 죽음에 이른다는 것이니,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의 처세에 대해 언급했다. 

    즉, 내가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쓸데없이 나서지 않으며, 교만하지 아니하고 자랑하지 않으며, 잘난 척하지 않고 물과 같이 유약하게 처세를 하니 어찌 누가 나에게 죽일 듯이 덤벼들 수 있겠는가? 

    내가 탐욕을 버리고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며 삶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났는데 어찌 고통이 따를 수 있겠는가? 팔봉산의 여덟 개 봉우리 중 4개의 봉우리를 넘었으니, 이제 불가항력(不可抗力)인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벗어났을까?
  • ▲ 팔봉산 6봉을 오르는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6봉을 오르는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5봉으로 가기 위해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오른 만큼 다시 내려서게 되면, 내려선 만큼 다시 오르게 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니던가. 이는 나눔만큼 다시 얻는 게 되는 삶과 같다. 그래서 산은 늘 고민을 받아주고 해결해 주는 무언지교(無言之敎)의 스승과 같다.

    5봉을 오르면 다섯 번째 고통인 좋아하지 않는 것들과 만나는 괴로움인 ‘원증회고(怨憎會苦)’가 사라질까? 5봉 정상은 바윗덩이로 이뤄져 있다. 3봉과 4봉을 이루는 암벽, 어유포리 마을, 팔봉교 등을 두루 조망한다. 

    풍경과 만나는 것이 환희이니 원증회고가 웬 말인가 싶다. 남은 세 가지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남은 봉우리를 마저 넘는다. 5봉에서 철제 난간을 붙잡고 바윗길을 내려와 6봉을 향해 곧추선 계단을 다시 오른다. 5봉과 6봉 사이에는 하산길이 있다.
  • ▲ 팔봉산 7봉.ⓒ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7봉.ⓒ진경수 山 애호가
    계단이 없었더라면 산행이 어렵고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고도 빈번했을 것 같다. 이어지는 암벽을 올라 팔봉산 6봉에 닿는다. 위험천만한 절벽을 오르내리면서도 산행의 맛을 제대로 느끼고, 산이 지닌 비경에 맘껏 취하다 보니 생각보다 산행시간이 꽤 걸렸다. 

    여섯 번째 고통인 좋아하는 것들과 헤어지는 괴로움인 ‘애별리고(愛別離苦)’는 어찌 되었는가? 미워하는 것을 만들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만들지 않으니, 만날지라도 헤어질지라도 그저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 생각하면 괴로움이 사라지리라.

    7봉을 향해 암릉과 단짝인 소나무가 어우러진 한국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바윗길이 위험하지만, 발판과 손잡이가 잘 설치되어 외려 암릉 산행의 묘미를 제대로 느낀다. 지난 일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앞일은 걱정이 먼저 앞서는 것처럼, 7봉이 가까워지자 6봉은 아늑함을 안고 점점 멀어져 간다. 
  • ▲ 팔봉산 8봉.ⓒ진경수 山 애호가
    ▲ 팔봉산 8봉.ⓒ진경수 山 애호가
    7봉에는 도착해 일곱 번째 고통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괴로움인 ‘구부득고(求不得苦)’가 아니던가. 산은 정복하거나 소유의 대상이 아니고, 건강과 추억을 위해 잠시 빌려 쓰는 것처럼, 필요한 것 이상으로 바라지 않는 것이 참된 무소유(無所有)이리라. 그러면 늘 감사한 마음이 앞서고 괴로움이 뒤로 물러나리라.

    팔봉산의 표지석은 봉우리마다 쪼그마하고 앙증맞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원래 이름 없는 자연에 이름을 붙이려니 미안했던 것일까. 노자는 도덕경 1장에서 ‘명가명 비상명(名可名 非常名)’ 즉,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순간 그 이름은 진정한 이름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자연의 한 일부인 봉우리들을 구태여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나누고 구별하는 것이 자연의 순수함을 해치는 것이라 미안해서 그랬을까? 이것 또한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든 잡념을 내려놓고 정화된 마음으로 마지막 봉우리로 향한다.
  • ▲ 강변로에서 만난 큰바위얼굴.ⓒ진경수 山 애호가
    ▲ 강변로에서 만난 큰바위얼굴.ⓒ진경수 山 애호가
    이제부터 가장 가파르고 험난한 산행이 이어진다. 마지막 고통을 떨구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어찌 그리 쉽사리 얻어지겠는가? 가파른 암릉에 설치된 철제 난간 덕택에 7봉에서 어렵지 않게 내려와 구름다리를 건넌다. 7봉과 8봉 사이에 있는 하산길을 만나지만 8봉을 끝까지 오르기로 한다. 

    수직 절벽에 박힌 손잡이를 잡고 오르고, 코가 발판에 닿을 만큼 수직에 가까운 철제 계단을 오르기도 한다. 철제 난간 구간을 힘겹게 오르니 마지막 봉우리에 닿는다. 이제 마지막 여덟 번째 괴로움이 무엇인가? 바로 ‘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오취온고(五取蘊苦)’이다. 

    예컨대, 스스로 어떤 상황에서 대상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대상의 의미에서 모양을 취하여 통합하고, 그 통합된 모습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름을 붙여 조작하여 그 이름으로 인식하는 오온(五蘊)이 인연에 의해 생겨난 일시적 존재에 불가하거늘, 그 오온이 '나'라고 집착하고 있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다.
  • ▲ 강변로에서 만난 매발톱꽃.ⓒ진경수 山 애호가
    ▲ 강변로에서 만난 매발톱꽃.ⓒ진경수 山 애호가
    이제 ‘나’라고 할만한 ‘나’가 없음에 소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 돌과 바위, 우리 강산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예로부터 팔봉산을 다 넘으면 팔고(八苦)가 말끔히 사라진다 했으니 오늘 산행이 정말 그리되었을까 물어본다. 아니 그냥 그리 믿는다.

    8봉에서 하산하는 길은 매우 험하고 급경사이지만, 철제 난간이 좌우 양쪽에 설치되어 어렵지 않게 하산한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바람에 실어온 강 내음이 산행의 매운맛을 가시게 한다. 홍천강과 맞닿은 팔봉산자락이 이루는 강변로에서 ‘큰얼굴바위’와 야생화들을 만난다.

    팔봉산은 형상에 집착하지 말고, 내일 걱정은 털어내며 뭐든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라 한다. 고통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마음을 다잡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닐지니, 마음이 혼란할 때면 언제든 찾아오라 한다. 참나를 덮고 있는 먼지를 털어준다 하니, 산은 우리네 삶의 스승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