茅山 걸으며 순결한 삶을 배우다[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남 합천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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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돛대바위가 있는 모산재의 암릉.ⓒ진경수 山 애호가
모산재(해발 767m)는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자리하고 있는 합천팔경에 속한 산이다. ‘모산재’라고 하는 이름은 ‘무지개터’에 작은 못이 있어 ‘못재’ 또는 ‘못산’이라 불리다가 세월이 흘러 ‘모산재’로 바뀌었다고 한다.모산재의 이름에 ‘재’가 붙은 연유는 이 산이 재와 재를 잇는 길 가운데 위치한 탓이라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신령스런 바위산’이란 뜻의 영암산(靈巖山)으로 부르기도 한다. 삼라만상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바위산의 절경이 그야말로 ‘묘산(妙山)’이 아닐 수 없다. -
- ▲ 하산하게 될 절묘한 형세의 암봉들.ⓒ진경수 山 애호가
1차 산행으로 황매산 정상을 다녀온 후, 2차 산행으로 모산재에 오른다. 산행은 이른바 ‘기적의 길’이라 부르는 ‘모산재 주차장~돛대바위~무지개터~모산재~부처바위~득도바위~순결바위~국사당~영암사지~모산재 주차장’의 원점회귀 코스로 약 5.8㎞이다.모산재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온통 바위로 뒤덮여 군데군데 초록 옷을 입은 모산재를 보니 산세가 예사롭지 않다. 주차장에서 황매산로를 따라 약 200m을 되돌아가면 ‘기적의 길’ 들머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영암사지까지 이어지는 포장길을 따라 오른다. -
- ▲ 샛돔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모산재와 영암사지’ 갈림길의 이정표를 만나 모산재 방향으로 들어선다. 얼마 오르지 않아 산길은 암릉으로 바뀌고, 주변으로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가파르게 암릉을 올라채자 숲에 가려졌던 암봉들이 절묘한 형세를 드러나기 시작한다.갖가지 모양의 바위들과 그 사이를 화폭에 점을 찍듯 자리한 소나무들이 어우러지니 마치 한 폭의 한국화를 보는 듯 압도적인 풍경에 발걸음은 점점 늦어진다. 수직 바위에 걸쳐진 밧줄을 잡고 오르고, 바위 옆을 트래버스 하듯 휘돌아 오른다. -
- ▲ 급경사의 돛대바위 철제 계단.ⓒ진경수 山 애호가
건너편 하산하게 될 암릉의 풍광을 보고, 오르는 암릉의 기암괴석을 감상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절경이 아닌 게 없으니 감탄사가 연실 튀어나온다. 모산재의 기운을 제대로 받았는지 두 번째 산행인데도 힘들 줄 모르고 오른다.바윗길을 휘돌아 고도를 높일 때마다 또 어떤 풍경이 기다고 있을까 기대감이 앞선다. 그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한 탓에 이른바 ‘샛돔바위’를 만나 잠시 숨을 가지런히 한다. 낭떠러지 위험 구간과 가파른 암릉 구간에 난간 밧줄이 설치돼 있어 그나마 수월하게 오른다. -
- ▲ 돛대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바위에 매달린 밧줄을 잡고 트래버스 하며 올라 아담한 석굴을 만나고, 이어 무심하게 늘어선 밧줄을 외면하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자 돛대바위에 수직으로 매달린 계단이 기다린다. 코가 계단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맞은 편 깎아지른 직벽의 암봉에서 부처바위, 득도바위, 순결바위를 차례로 조망한다.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윗덩어리이고 기기묘묘해 보는 이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보인다. 많은 이들이 이 산을 일컬어 금강산의 만물상을 보는 듯하다고 말한 까닭을 알겠다. -
- ▲ 무지개터 앞에서 바라본 하행(左)과 상행(右) 암릉.ⓒ진경수 山 애호가
경사진 바위를 기어오르면 배의 돛처럼 생긴 돛대바위를 만난다. 그 옆으로 깎아지른 암벽 아래로 대기저수지의 푸른 물이 굽어 보인다. 다시 두 발 또는 네 발로, 그리고 밧줄을 잡고 오르니 장쾌한 풍광이 펼쳐진다.곧이어 산행의 오르막이 거의 끝나는 무지개터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일망무제(一望無際)로 펼쳐지는 경치를 감상하다 보니 명당자리로구나 싶다. 널찍하고 편평한 마당바위이고, 뒤편으로 길게 누운 평바위가 있고, 앞으론 용의 머리와 말의 몸통을 한 용마바위가 있다. -
- ▲ 무지개터와 용마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천하제일의 명당자리로 알려진 이곳은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비룡승천(飛龍昇天)’ 하는 지형이란다. 이곳에 묘를 쓰면 효자가 태어나고 자손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반면에 온 나라가 가뭄으로 흉작이 든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명당자리이지만 누구도 묘를 쓰지 못하는 곳이라 한다.이제 완만한 능선을 따라 숲길을 걸어 해발 767m의 모산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돛대바위가 있는 암릉을 비롯해 황매산 철쭉군락지와 그 정상을 조망한다. 모산재에서 우거진 숲속을 내려간다. 바위의 풍화작용으로 떨어져 나온 굵은 모래가 깔려 있어 미끄럼에 조심한다. -
- ▲ 부처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얼마 내려가지 않아 하늘이 열리는 조망처가 곳곳에 있지만, 안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으니 추락 사고에 조심해야 한다. 이곳에서 맞은 편 샛돔바위에서 돛대바위에 이르기까지 상행 코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다.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암봉을 기어오르면서도 힘들 줄 모르고, 외려 기운차게 올랐으니 참으로 대견하다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이 산의 정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앞을 보니 곧 만나게 될 바위 조망처가 천 길 낭떠러지 직벽 바위로 아찔하다. -
- ▲ 첫 번째 암봉(前)의 하행과 두 번째 암봉(後) 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몇 걸음 옮기자 암릉 구간이 시작된다. 완만한 듯하다가도 고꾸라질 듯 급경사 구간도 있다. 안전시설이 거의 없으니 릿지화 착용을 권한다. 암릉을 내려가면서 법연사와 황매산 능선, 그리고 옆 능선을 따라 삐죽삐죽 머리를 세운 기암을 조망한다.바위 모습이 부처와 닮았다고 하는 부처바위를 지난다. 이 바위는 상행 암릉에서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기기묘묘한 암봉에 뿌리를 내린 채 기이하게 가지를 뒤틀고 자라난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
- ▲ 득도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첫 번째 암봉을 내려가는데 경사가 꽤 급하다. 산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바위인 셈이다. 눈이나 얼음이 있는 겨울이나 비 내리는 여름날에는 삼가는 게 좋겠다. 잠시 내려가는 듯하다가 다시 두 번째 암봉을 올라탄다.위험한 듯 안전하고, 힘이 든 듯 힘이 들지 않는 신비로운 산행이다. 이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천길 벼랑 위 바위 틈새에 앉아 수도했다고 전해지는 득도바위를 만난다. 가파른 바위를 내려갔다가 세 번째 암봉을 오른다. -
- ▲ 순결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바위틈새를 빠져나가고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바위를 타고 넘는다. 부드러운 유선형 바위들이 마음을 순화시키는 듯하다. 가파른 암릉을 오르다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지나온 흔적을 바라보니 바위산이 서서히 초록으로 덮여간다. 세월의 힘을 느낀다.모산재의 명소 순결바위에 도착한다. 이 바위는 바위 끝부분이 갈라진 커다란 바위로, 남녀의 순결을 시험할 수 있는 곳이란다. 이 바위는 평소 사생활이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으며, 만약 들어간다 해도 바위가 오므라들어 나올 수가 없다는 전설이 전해진다.산 이름 모산(茅山)은 ‘띠 모(茅)’를 쓴다. 띠는 볏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지붕을 덮거나 도롱이 등에 사용된다. 띠 꽃은 은백색의 명주 털로 둘러싸인 모양으로 순결을 상징한다. 따라서 모산은 순결한 산을 의미하며, 여기에 순결바위가 있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닌가 싶다. -
- ▲ 국순당.ⓒ진경수 山 애호가
순결바위를 출발해 안전 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암릉을 내려간다. 고도를 낮추는 한참 동안 거친 바윗길과 너덜 길이 이어진다. 가파름이 끝나고 하늘을 향해 치솟은 매끈한 몸매의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향긋한 솔향이 전신을 파고드니 생기가 솟는 듯하다.조선 태조 이성계의 등극(登極)을 빌었다는 국사당(國祠堂)에서 잠시 쉬어간다. 꽤 긴 소나무 숲길을 지나 덕만주차장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덕만주차장과 반대 방향인 영암사지로 평탄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에 발자국을 남긴다. -
- ▲ 영암사지.ⓒ진경수 山 애호가
숲을 빠져나오면서 영암사지(靈巖寺址)에 닿는다. 신라 시대의 절터로 그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지 못하지만, 고려 때인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곳에서 83세로 입적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황매산 자락의 하나인 모산재는 전설과 자연이 어우러진 신령스러운 바위산으로 도법자연(道法自然)을 일깨우는 산이다. 노자의 도상무명(道常無名)이 떠오른다. 도는 영원히 이름이 없으니 순박한 상태라는 것이다. 순결하고 순박한 삶을 이 산에서 배워 내일을 펼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