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봉과 바랑산의 연계 산행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논산시 편
  • ▲ 바랑산(좌)과 소서바위(우)를 잇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바랑산(좌)과 소서바위(우)를 잇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바랑산(해발 555m)은 논산시 양촌면과 벌곡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서 사면은 식생으로 남동 사면은 응회암류의 기반암 절벽이 산정을 이루고 있다.

    이 산의 이름은 산의 생김새가 바랑(걸낭)같이 생겼다 하여 바랑산이라 불리며 금남정맥의 한 줄기이다. 바랑산 단독 산행은 중간에 내려올 길이 마땅치 않아 월성봉과 연계해 산행한다.

    월성봉(月城峰, 해발 650m)은 동쪽의 대둔산, 남쪽의 천등산 등과 함께 노령산맥의 북부 산군을 이룬다. 원성봉이라는 이름은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月城)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월성봉·바랑산 능선은 거대한 암벽과 암봉이 돋보이며, 많은 힘을 들이지 않고 수려한 경관을 보고 즐길 수 있지만, 대둔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 ▲ 바랑산(좌)과 월성봉(우)을 잇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 바랑산(좌)과 월성봉(우)을 잇는 능선.ⓒ진경수 山 애호가
    전국 유일의 비구니 노후복지시설인 법계사(法界寺) 도착 200m 앞 이정표 부근에 차량을 주차한다. 경차를 두 대 정도 너끈하게 주차할 수 있다.

    길 위로는 마치 도덕을 갖춘 품격을 드러내 보이는 소서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길섶에는 작은 풀꽃들이 영롱한 이슬을 머금고 제 빛깔의 아름답고 밝은 얼굴을 선보인다.

    등산로 초입은 여린 연두색으로 온통 하늘과 땅을 덮고 있어 금새 몸과 마음이 물들어 간다. 청순한 심신의 변화를 축하라도 하는 듯 영롱한 새소리가 요란스러울 정도다.

    길섶의 개별꽃이 발걸음을 더디게 한다. 법계사 옆을 지나 계곡을 건너면서 자잘한 돌이 깔린 완만한 길을 걷는다. 대나무 잎과 활엽수 새순들이 한창 색을 내밀며 세상을 물들인다.
  • ▲ 새순을 돋아내고 있는 고목.ⓒ진경수 山 애호가
    ▲ 새순을 돋아내고 있는 고목.ⓒ진경수 山 애호가
    키 높이로 자란 초록빛 조릿대 구간을 지나면서 길은 가파른 바윗길 구간으로 바뀐다. 그 끝자락엔 수령이 제법 오래되어 밑동이 헐어 있는 고목이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마다 새순을 돋아내고 있다.

    “나답게 사는 행복”에 나오는 글귀가 떠오른다. “늙어가는 것을 새로운 도전으로,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을 지금에 집중하는 것으로 삼는다”라고 말이다. 그런 삶을 응원이라도 하듯 어디서 그리 많이도 날아왔는지 새들의 응원가가 산중을 울린다.

    이제 바윗길이 산벚꽃을 만나면서 자잘한 돌 위에 갈색 낙엽이 수북이 쌓인 경사가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른다. 머리 위를 올려다보니 낙엽이 워낙 두툼하게 덮어서인지 어디가 길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다. 
  • ▲ 대둔 04-16 지점에서 바라본 대둔산.ⓒ진경수 山 애호가
    ▲ 대둔 04-16 지점에서 바라본 대둔산.ⓒ진경수 山 애호가
    그러나 차곡차곡 한 발 한 발 내딛자 흐릿했던 산길이 어슴푸레 하게 나타난다. 삶의 미래가 희망이 없을 것 같아도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차근차근 나답게 살다 보면 길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초여름 날씨 탓에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방울이 시야를 가리는 순간 월성봉 주능선에 닿는다. 이정표는 수락주차장(2.5㎞)과 월성봉(0.5㎞)을 안내한다. 올랐던 길에 비하면 등산로를 확인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양반 길이다.

    산벚꽃과 진달래꽃이 협연하는 오르막길을 오르자니, 우측으로 대둔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랑제비꽃이 지척으로 경쟁하듯 자태를 뽐낸다. 우람한 소나무가 땡볕에 지친 산객에게 그늘을 선물한다.

    쉼터 소나무를 지나면서부터 활엽수 군락지를 오르는데 아직 몸 소식을 접하지 못한 탓인지 잿빛의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짙푸른 하늘이 거침없이 파고 들어온다. 그들 사이에 분홍빛 진달래꽃과 하얀빛의 산벚꽃이 봄을 직접 전하고 있다.
  • ▲ 대둔 04-16 지점에서 바라본 소서 바위(前)와 바랑산(後).ⓒ진경수 山 애호가
    ▲ 대둔 04-16 지점에서 바라본 소서 바위(前)와 바랑산(後).ⓒ진경수 山 애호가
    대둔 04-16 푯말(해발 637m)을 지나면서 좌측으로 절벽 조망 포인트를 만난다. 이곳에서 지금까지 힘들게 올라온 보상을 톡톡히 받는다. 대둔산 산등성을 한눈에 조망하고, 멀리 뾰족하게 솟은 천등산도 또렷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발아래로 초록 바다에 피어난 한 송이의 연꽃 같은 법계사와 조용하고 평화롭게 힘찬 삶을 살아가는 오산리 마을을 조망한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나지막한 산들이 파도의 너울처럼 일렁인다.

    법계사의 요사채가 팔괘의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팔괘는 하늘(天), 못(澤), 불(火), 우레(雷), 바람(風), 물(水), 산(山), 땅(地)을 상징할 뿐 아니라 만물의 이치를 다루고 있다. 추측하건대 아마도 이런 의미로 팔각 배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찌 이뿐인가 오늘 산행에서 거쳐 갈 소서바위와 목적지인 바랑산을 조망한다. 소서바위를 어찌 봉우리라 하지 않고 바위라 했으며, 이름을 소서라 했을까? 오서리 마을에서 봤을 때 하나의 거대한 바위와 같고, 황석공이 지은 ‘소서(素書)’의 내용처럼 득도(得道)해서일까?
  • ▲ 두 번째 조망 포인트에서 바라본 법계사와 오산리 마을.ⓒ진경수 山 애호가
    ▲ 두 번째 조망 포인트에서 바라본 법계사와 오산리 마을.ⓒ진경수 山 애호가
    만물이 생기 넘치는 풍광에 취하니 마음이 뭉클해지면서 삶의 가치를 되새기게 된다. 잿빛 세상에서 초록의 세계로 변화되는 여정, 모든 것이 끊임없는 변화의 순환을 겪는다는 변치 않는 진리를 깨닫는다.

    한참을 머물고 나서 몇 걸음을 옮기자 다시 조망 포인트에 이른다. 이동하면서 바위 절벽 틈에 의지해 수많은 세월, 속세의 변화를 지켜보며 묵언 수행 중인 소나무를 지난다. 부모가 자식을 지켜보듯 때론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묵묵히 지켜보는 것도 좋다.

    더 가까워진 월성봉을 비롯해 소서 바위, 바랑산을 다시 조망해도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보면 볼수록 그 초록의 향연 속으로 점점 더 깊게 빠져들어 간다. 일상의 잰걸음을 잠시 멈추고, 쉼표와 하심의 시간을 갖는다.

    다시 소나무를 지나 얼마 가지 않아 해발 627m에 자리한 흔들바위에 닿는다. 수많은 산객들이 정말 흔들릴까 하는 의구심으로 흔들어봤을 흔들바위다. 필자도 “나답게 사는 행복”이 널리 알려져 많은 이들이 읽고 공감해 나다움으로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흔들어본다.
  • ▲ 흔들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흔들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흔들바위에 소원을 빌고 월성봉을 향해 길을 나선다. 월성봉을 이루는 암벽이 마치 굳건하게 쌓아 올린 철옹성의 성벽처럼 다가온다. 마침내 월성봉 정상에 닿는다. ‘대둔산 월성고지 전적지’라는 푯말과 함께 월성봉 안내판과 정상석, 그리고 추락위험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통신중계탑 앞에 세워진 이정표는 영주사(3.9㎞)·바랑산(1.9㎞)·수락주차장(3.2㎞)를 안내한다. 바랑산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자 곧바로 헬기장과 대둔산도립공원 등산로 안내판을 만난다. 주변에는 온통 새싹이 막 돋아나는 철쭉의 세상이다. 

    좌측으로 이정표 두 개를 지나 소서바위를 향해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간 후, 완만한 능선을 물결치듯 오르락내리락하며 이동한다. 지금까지 만난 산객들과 인사를 건네고 응답을 받은 사람이 열에 한 명이다. 자연이든 사람이든 만남이 서로에게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골바람이 흘린 땀을 식히니 서늘한 느낌마저 든다. 리듬을 타는 진달래의 반가운 손짓과 손을 맞대고, 기묘한 형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소나무와 시선을 마주하며 산등성의 리듬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바랑산(1.1㎞)·월성봉(0.8㎞) 안부에 다다른다.
  • ▲ 소서바위에서 바라본 월성봉과 대둔산.ⓒ진경수 山 애호가
    ▲ 소서바위에서 바라본 월성봉과 대둔산.ⓒ진경수 山 애호가
    풀꽃과 산꽃들, 그리고 거대한 암벽 아래 펼쳐진 풍광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체되다 보니 허기를 느낀다. 이를 달래줄 소서바위를 향해 발걸음에 잔뜩 힘을 주어 오른다. 역시 기대와 희망은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하는 모멘텀을 준다.

    드디어 해발 540m 소바바위에 닿는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다리에 휴식을 주고 눈과 마음에 자연을 담으며 지금 주어진 황홀한 시간에 자신을 내맡긴다. 한 끼의 공양에 감사하며 자리를 일어설 때 산객 일행들이 몰려든다.

    금남정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이다. 그들에게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무사 종주를 기원하며 보이지 않는 암벽을 밟으며 이동한다. 기풍의 소나무가 자리한 낭떠러지기 암벽 조망처에 서면 바라보는 것마다 절경 아닌 게 없다.

    잠시 내려가는가 싶더니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월성봉(1.6㎞)·오산2리(1.5㎞)·바랑산(0.3㎞) 세거리에 이른다. 이곳에서 이번 산행의 목적지인 바랑산을 향해 암반과 흙길을 걸어 오른다. 마침내 도착한 정상에는 정상목, 이정표, 그리고 바랑산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나 숲으로 둘러싸여 조망은 거의 없다.
  • ▲ 하행길에서 만난 병풍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 하행길에서 만난 병풍바위.ⓒ진경수 山 애호가
    바랑산에서 내려와 오산2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길 초입에는 진달래꽃과 산벚꽃이 봄바람을 타고 안전 하행하라 손짓한다. 이어서 쉬엄쉬엄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 구슬봉이, 제비꽃, 고깔제비꽃, 현호색꽃 등 갖가지 야생화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꽃과 연초록의 세상, 산에 오르지 않으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풍경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에 설치된 밧줄을 잡고 병풍바위를 옆에 끼고 한동안 완만한 길을 걷는다. 이어 바랑산에서 내리뻗은 산줄기를 넘어 비탈길을 내려간다.

    이곳에서 산등성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소서바위와 대둔산 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하행 코스에는 이정표가 없어서 확실한 등산로가 아니면 가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어림짐작으로 이 길로 가도 되겠지 판단하는 순간 조난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 ▲ 하행길에서 만난 죽단화.ⓒ진경수 山 애호가
    ▲ 하행길에서 만난 죽단화.ⓒ진경수 山 애호가
    자잘한 돌이 깔려 미끄러질 수 있는 길,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그런 긴장감을 조금 풀고 가란 듯이 숲은 쉼터를 준다. 그러나 그곳엔 간식을 먹고 버린 쓰레기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늘 그랬듯이 이번 산행도 플로깅(Plogging) 산행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산을 찾는 산객들이여! 제발 산을 좋아서 산을 찾았으면, 산이 좋아하는 행동만 하시라! 자연에 남길 것은 당신의 발자국만, 그리고 가져갈 것은 자연에 대한 당신의 추억만 가져가시라! 

    ‘물물각득기소(物物各得其所)’라는 말이 생각난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저마다의 고유한 역할과 역량이 있는데, 그것을 벗어나 욕심을 부릴 때 질서가 무너지고 자연스러움은 훼손된다는 것을…

    비탈길을 얼마나 내려왔을까? 반복되는 비슷한 길에 지루함을 느낄 즈음에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이리저리 흐느적대는 죽단화를 만난다. 그래도 그 꽃은 제자리를 벗어나는 적이 없다.
  • ▲ 억새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소서바위와 월성봉.ⓒ진경수 山 애호가
    ▲ 억새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소서바위와 월성봉.ⓒ진경수 山 애호가
    이어 아기 오줌 지린듯한 계곡을 건너 돌계단 길이 이어진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계단을 제대로 찾을 수 없다. 한 발 한 발이 함정을 건너는 듯하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고급승용차가 자랑하듯 고속운행에 방향지시등도 켜지 않고 끼어들어 사고의 함정을 만드는 것처럼…

    고된 비탈길은 완만하고 부드러운 흙길로 얼굴을 바꾼다. 곧이어 임도를 걷는다. 산들바람에 여린 새순들이 쉴새 없이 고개를 살랑대고, 산벚꽃 나무를 지날 땐 황홀한 꽃비를 맞는 행운도 맛본다. 그렇게 숲길과 하나가 되어 걷다 보면 황갈색 종이 위에 붉은 물감을 떨어뜨린 듯한 풍광을 만난다. 

    억새들판을 가로질러 걸으면서 붉은 단풍나무 군락지를 만나고, 대둔산, 천등산, 월성봉, 소서바위, 바랑산을 조망한다. 초여름에 버금가는 따가운 햇빛을 그대로 받으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산행 출발점에 도착하여 산행을 갈무리한다. 

    이번 산행은 ‘법계사 입구~법계사 갈림길~흔들바위~월성봉~소서바위~바랑산~오산2리 갈림길~임도~법계사 입구’ 코스의 약 7.5㎞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