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장관[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경남 밀양시 편
  • ▲ 화엄늪의 억새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 화엄늪의 억새 풍경.ⓒ진경수 山 애호가
    천성산(千聖山)은 경남 양산시 웅상(평산동‧소주동)과 상북면·하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기존의 원효산(元曉山, 해발 922.2m)과 천성산(千聖山 817.9m)을 명칭 변경하여 천성산 제1봉과 제2봉으로 각각 부르고 있다. 이 산은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과 함께 영남알프스 산군에 속한다.

    천성산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이곳에서 당나라에서 건너온 1천(千)여 명의 스님에게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하여 모두 성인(聖人)이 되게 했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이 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소금강산이라 불리었다.

    이번 산행은 온산을 뒤덮은 억새를 보기 위한 ‘원효암주차장~천성산 제1, 2봉 갈림길~은수고개~천성산 제2봉~천성산 제1봉~화엄늪~홍룡사(홍룡폭포)~원효암~원효암주차장의 원점회귀 코스이다. 

    원효암주차장(해발 725m)에 도착하여 온 길을 다시 조금 내려가서 좌측의 천성산 제1, 2봉 방향으로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경사진 길을 0.3㎞ 정도 오르면 또 다른 천성산 제1, 2봉 갈림길(해발 840m)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목교를 지나 3.6㎞ 떨어진 천성산 제2봉으로 향한다.
  • ▲ 천성산 제2봉 고스락으로 이어지는 억새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 천성산 제2봉 고스락으로 이어지는 억새 숲길.ⓒ진경수 山 애호가
    산길을 들어서자마자 이 지역은 과거 지뢰 매설지역으로 출입이 금지된 곳이라는 안내문이 섬뜩하게 한다. 등산로가 아닌 길은 가지 말라는 당부다. 참나무 숲길 옆으로 자생하고 있는 보랏빛 꽃향유가 깊어가는 가을을 향기롭게 한다. 

    돌길과 흙길이 반복되는 오르락내리락 하는 산길을 걷다보면 고스락이 점점 더 멀어짐을 알리는 이정목을 만난다.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천성산 고스락이 마치 사랑을 밀고 당김을 하고 있는 듯 묘한 기분이 감돈다. 

    홍룡사와 은수고개(0.9㎞) 갈림길(해발 879m)에서 은수고개로 방향을 튼다. 무성한 억새 숲이 드넓은 산등성을 온통 차지하고 푸른 하늘의 하얀 구름과 억새의 하얀 꽃이 입맞춤을 한다. 아침 햇살을 안고 광활한 억새를 가르는 길을 걷자니 환희에 젖는다.

    서서히 산비탈로 내려가면서 저 멀리 천성산 제2봉 산등성을 조망한다. 곧이어 억새 숲은 가파른 흙길의 참나무 숲으로 얼굴을 바꾼다. 상쾌한 공기와 맑은 아침 햇살이 호젓하게 걷는 발걸음 가볍게 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은수고개(해발 740m)에 도착한다. 
  • ▲ 천성산 제2봉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 천성산 제2봉 고스락.ⓒ진경수 山 애호가
    은수고개에서 ‘무지개폭포(3.2㎞)‧미타암(1.6㎞)‧천성산 제2봉(1.1㎞)’으로 갈 수 있다. 천성산 제2봉을 향해 참나무 숲길을 오른다. 나지막하면서 꾸불꾸불하게 자란 참나무 숲길은 흙길과 돌길이 번갈아 반복되어 이어진다.

    간간이 만나는 노송 아래는 자연스럽게 쉼터가 된다. 그런 노송을 배경을 사진을 촬영하겠다고 얼마나 올라가 밟았는지 닳고 닳아서 껍질이 헐었다. 그 아픈 상처를 잠시나마 보듬으며 인간의 욕심을 용서해 달라고 빌어본다. 

    한동안 산비탈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오르다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주능선 쉼터에 도착한다. 이정표에는 천성산 제2봉까지 거리가 늘지도 줄지도 않고 1.1㎞로 그대로 있고, 이곳에서 은수고개까지는 0.7㎞이란다. 

    천성산 제2봉을 0.2㎞를 앞두고 만나는 조망바위에 올라 천성산 제1, 2봉의 산등성이와 좌우로 끊어질 듯 한량없이 이어지며 너울대는 이름 모를 산등성의 물결을 조망한다. 
  • ▲ 천성산 제2봉에서 바라본 제1봉.ⓒ진경수 山 애호가
    ▲ 천성산 제2봉에서 바라본 제1봉.ⓒ진경수 山 애호가
    다시 길을 올라 천성산 제2봉에 도착한다. 뾰쪽한 돌산 위에 앉혀 있는 고스락 돌에는 해발 855m 천성산 2봉(비로봉)라고 적혀 있다. 비로봉(毘盧峰)이라는 산명이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된다.    

    천성산 제2봉 고스락에 올라 지나온 산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가야 할 민둥산처럼 보이는 천성산 제1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어떨지 상상해 본다. 그곳의 억새꽃 능선을 상상하며 기대로 가득하다.

    은수고개로 하행한 후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 억새 능선 길을 걸어 천성산 제1, 2봉 갈림길(해발 840m)에 도착한다. 약 100m 정도 고도차의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게 다녀왔다.

    초록색 울타리의 안내를 받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꽃을 보면서 능선을 타고 노닌다. 이어지는 밧줄 보호망의 안내를 받으며 데크전망대에서 사방이 탁 트인 억새밭을 둘러본다. 광활하게 펼쳐진 울창한 은빛 억새밭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 ▲ 통신중계탑이 세워진 구릉에서 바라본 데크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 통신중계탑이 세워진 구릉에서 바라본 데크전망대.ⓒ진경수 山 애호가
    데크전망대에서 데크계단을 통해 하행한 후 원효암(1.5㎞) 갈림길을 지나 천성산 제1봉(원효봉)을 향해 억새 풀숲 사이를 가르는 계단을 오른다. 억새의 하얀 꽃을 가까이서 대면하니 흰 머리칼과 흰 수염으로 변해가는 필자의 모습을 투영하는 듯하다.

    통신중계탑을 지나면서 야자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 구릉을 오르는데, 좌측으로 이 산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기암이 억새를 이부자리 삼아 누워 있다. 

    구릉을 내려와 다시 오르는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이 언덕을 오르는 길옆으로 피어난 하얀 억새꽃이 푸른 하늘의 구름과 속삭이는 듯하다. 순수한 자연의 모습을 본받아 본래의 모습이 어디에 숨었는지 찾아 떠난다.

    구릉을 오르니 억새 군락의 꽃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반갑게 인사하고, 전방으로 수많은 군중이 머물 수 있는 광장이 펼쳐진다. 이 공간이 천성산 제1봉 고스락이다. 한쪽에는 둥글게 쌓은 키 높이 정도의 직경이 큰 돌탑이 있다. 이 탑을 ‘평화의 탑’이라고 한다.
  • ▲ 천성산 제1봉 고스락을 오르는 길목의 억새.ⓒ진경수 山 애호가
    ▲ 천성산 제1봉 고스락을 오르는 길목의 억새.ⓒ진경수 山 애호가
    평화의 탑 맞은편에는 해발 922m의 천성산 제1봉(원효봉)이 세워져 있다. 워낙 드넓고 고요하여 적멸도량인 듯하고, 고도가 꽤 높아 하늘에 닿을 것 같아 마치 도솔천궁인 듯도 하다.

    이곳에서 북동 방향을 바라보니, 천성산 제2봉에서 능선을 따라 걸어온 길이 아득하게 멀리 보인다. 마치 수행자가 발심하여 언제 정각을 이룰지 막연할 때 까마득하게 느끼는 그런 심정이다.

    서북 방향을 바라보니, 드넓은 갈색 능선이 마치 필자의 머리 같기도 하고, 달마대사 머리 같기도 하다. 암녹색 산등성을 파고든 저 갈색 능선이 바로 유명한 화엄늪이다. 

    화엄늪은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1천여 명의 승려들이 모여든 한가운데에서 화엄경을 설법하여 승려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 ▲ 천성산 제1봉(원효봉).ⓒ진경수 山 애호가
    ▲ 천성산 제1봉(원효봉).ⓒ진경수 山 애호가
    화엄벌은 산지습지로서 자연환경 변천의 귀중한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이탄(泥炭)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탄은 늪에 살던 식물들로 만들어진 흑갈색의 퇴적물을 말한다.

    이곳에는 앵초, 물매화, 잠자리난, 흰제비난,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등의 다양한 습지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소중한 자연자산으로 보호 및 관리지역이다. 

    원효봉에서 보호망이 설치된 완만한 길을 따라 하엄늪으로 하행한다. 하엄늪 습지보호지역 안내판에 따르면, 2002년에 지정된 이 늪의 구역은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산 83-2번지 일원으로 면적이 축구장 면적의 17.4배에 달하는 2만4000㎡이다.

    안내판에서부터는 철쭉과 억새가 뒤섞인 비탈길로 이동하는데, 억새풀의 키가 높게 자라 사람이 이동하는 모습이 마치 꿩이 먹이를 찾아 숲속을 이동하는 듯하다. 
  • ▲ 화엄늪의 억새.ⓒ진경수 山 애호가
    ▲ 화엄늪의 억새.ⓒ진경수 山 애호가
    바람에 흔들리는 울창한 억새밭의 은빛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몇 걸음을 이동하면 몇 십 분 동안 머물러 은가루를 온산에 뿌려 놓은 듯이 은빛 억새꽃의 향연에 매료된다. 감히 그런 장엄한 무대를 떠나는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다.

    따가운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한량없이 이어지는 억새 숲길을 걷자니, 망망대해의 파도 물결에 떠밀리며 심해에서 잃어버린 참나를 찾아 헤매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화엄늪을 통과하는 시간이 꽤나 소요되었지만, 기쁨으로 충만하고 즐거움이 가득한 나답게 사는 행복에 젖는다. 어느덧 ‘용주사(4.6㎞)‧홍룡사(1.9㎞)‧원효봉(1.3㎞)’(해발 780m)의 갈림길 이정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돌길을 내려가자마자 참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하산 초입에는 완만한 흙길에 단풍이 물든 숲길이 이어지다가 가파른 계단과 돌길이 이어진다.
  • ▲ 홍룡사 관음전과 홍룡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 홍룡사 관음전과 홍룡폭포.ⓒ진경수 山 애호가
    단풍은 사라지고 싱그러운 청록의 숲으로 바뀌면서 가파른 길은 평온한 길로 이어진다. 원효봉에서 2.8㎞ 지점을 지나고 얼마 이동하지 않아 좌측으로 내려가면 원효대사가 창건한 홍룡사(해발 260m)에 도착한다. 

    대나무 숲이 사찰을 감싸고, 종각·무설전·대웅전을 지나 수정문을 통과한다. 이어 암벽에 걸쳐서 지어진 산신각을 지나 깎아지른 암벽과 우측 계곡 사이의 계단을 오르면 관음전과 홍룡폭포를 만난다.
      
    홍룡폭포는 옛날 하늘의 사자인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제1폭의 높이가 14m에 달하고, 제2폭은 10m 정도이다. 지금은 갈수기라 수량은 그리 많지 않다.
     
    홍룡사를 나와 가홍전을 지나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원효암(1.6㎞) 이정표와 함께 등산로 입구를 만난다. 계단을 오르면서 다소 가파른 길을 오른다. 간간이 암반 길을 오르는 도중에 누군가 세워 놓은 돌탑을 무심하게 지나기도 한다. 
  • ▲ 원효암의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진경수 山 애호가
    ▲ 원효암의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진경수 山 애호가
    청록의 숲이 울긋불긋 단풍으로 바뀌면서 ‘화엄늪(1.4㎞)‧홍룡사(1.9㎞)‧원효봉(0.3㎞)’(해발 720m)의 갈림길 이정표을 지난다. 갈림길에서 참나무 숲이 우거진 완만한 산비탈을 걷다 보면 붉은 개옻나무가 반갑게 인사하니 필자도 하도 반가워 합장 인사를 한다. 

    데크 계단을 오르니 원효암(해발 750m) 해우소가 산객들의 근심을 덜어 준다. 사성각 옆의 하늘 높이 치솟은 암벽 사이에서 흘러내는 석간수를 한 잔 마시고, 산객을 위한 무료 커피 공양을 받는다. 

    대웅전에 들어 석조약사여래를 친견하고. 그 옆에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을 친견한다. 삼존불은 1906년도에 조성된 것으로, 암석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본존을 향하여 몸을 약간 틀어 합장하고 연꽃을 밟고 서 있다.

    원효암을 나와 주차장에 도착하여 총 13.94㎞ 은빛 억새꽃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번 산행은 경남 양산시 효암고등학교에 이동식 모듈러 임시교사를 설치한 ㈜진우아이엔씨의 후원으로 이뤄졌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