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산 114번 찾아가 ‘사업 기틀’…책으로 인생 개척한 중졸 청년, 석사·박사 되기까지공무원 준비하며 동네 아이들 가르친 ‘마을 교사’, 학원 운영하다 30살에 고향 떠나 ‘늦깎이 창업’200억 들여 ‘제산컬쳐센터’ 건립…“고향 보은, 다시 비상할 수 있도록 작은 날개 달아주고 싶었다”
  • ▲ 충북 보은 출신의 김상문 ㈜아이케이 회장이 자신의 고향에 200억 원을 들여 건립하는 복합문화공간 ‘제산(霽山)컬쳐센터(JESAN CULTURAL CENTER)’에서 오는 15일 준공식을 앞두고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충북 보은 출신의 김상문 ㈜아이케이 회장이 자신의 고향에 200억 원을 들여 건립하는 복합문화공간 ‘제산(霽山)컬쳐센터(JESAN CULTURAL CENTER)’에서 오는 15일 준공식을 앞두고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충북 보은 출신의 김상문 ㈜아이케이 회장이 자신의 고향에 200억 원을 들여 복합문화공간 ‘제산(霽山)컬쳐센터(JESAN CULTURAL CENTER)’를 건립하고 오는 15일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레미콘, 아스콘, 골재, 토양정화 등 건설자재 분야에서 탄탄한 사업 기반을 닦아온 김 회장은 “계산기로 따지면 적자인 투자지만, 보은에 제산컬쳐센터를 설립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투자”라고 단언한다. 

    그는 “이 공간에서 고향의 후배들이 책을 읽고, 꿈을 품고,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하며 “그 자체가 제 평생학습의 보람이자 최대 수익”이라고 밝혔다.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1년 2개월간 114번 찾아간 ‘석산 일화’ 

    그러나 그가 오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간절한 시간이 있었다.

    김 회장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일화는 업계에서도 유명하다. 생면부지의 석산 주인을 무작정 찾아간 그는, “외상으로 석산을 빌려주시면 골재사업으로 돈을 벌어 반드시 갚겠다”고 제안했다. 돌아오는 건 냉랭한 거절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일주일에 두 번씩, 총 1년 2개월 동안 114번(‘114 도전정신’)을 찾아갔다. 마침내 석산 주인의 마음이 움직였고, 그가 건넨 손을 김 회장은 꽉 잡았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증명했듯 “어려운 일일 수는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가르치는 것도 내 길이었죠”… 제대 후 ‘마을 교사’가 된 평생학습인

    1952년 충북 보은군 이평리에서 태어난 김상문 회장은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갔다. 1972년 입대는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 ▲ 서용 동덕여대 교수가 만든 천상언어 중 ‘탄생’ 작품. 보은에 제산컬쳐센터가 개관하면서 보은의 문화를 새롭게 깨어나길 바라는 이미지를 작품에 담았다. 김상문 회장이 오는 15일 준공을 앞두고 조연환 이사장에게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서용 동덕여대 교수가 만든 천상언어 중 ‘탄생’ 작품. 보은에 제산컬쳐센터가 개관하면서 보은의 문화를 새롭게 깨어나길 바라는 이미지를 작품에 담았다. 김상문 회장이 오는 15일 준공을 앞두고 조연환 이사장에게 작품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군에서 보초를 서는 시간에도 그는 책을 놓지 않았다. 군용 손전등 앞을 종이로 가리고 불빛이 새지 않게 하며 책을 읽었고, “경계 근무 중 딴짓한다”는 이유로 얼차려와 구타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운 좋게 만난 중대장의 배려로 학습 시간을 확보했고, 하루 12시간씩 보초를 도맡아 서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1974년 말 군 제대 후, 김 회장은 고향 보은에서 본격적으로 공무원 시험 준비에 나섰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의 모습에 이웃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그러던 중 옆집 주민이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의 공부를 봐달라고 부탁했고, 이것이 김 회장의 ‘교육자적 기질’을 일깨운 계기가 됐다.

    먼저 성적을 점검해 보니 수학 과목이 특히 취약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산수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문제를 풀게 했고, 매일 풀이 과정을 점검하며 모르는 부분은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 가르쳤다. 그렇게 학생은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까지 중학교 2학년 과정까지 완전히 마스터했고, 개학 후 첫 시험에서 전교 3등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학생을 잘 가르친다”는 평판에 그에게 배우려는 아이들이 200명이 넘게 몰렸고, 그는 새벽 5시에 시작하는 ‘새벽반’까지 만들어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지도했다. 급기야 그는 직접 학원을 열고 운영하며 지역의 사실상 대표적인 ‘마을 교사’로 자리 잡았다.

    “가르치는 것도 내 길이었죠. 누군가의 인생에 불씨 하나를 지피는 일이 얼마나 큰 보람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게 교육자로서 제2의 삶을 살던 그는, 서른이 되던 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이후 조선일보 판매국에서 10년간 근무하며 사회 경험을 쌓았고, 마흔 살에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 인천·청주·당진 등에 사업장을 두고 있으며 연 매출은 천억 원대, 직원 수는 200여 명에 달한다. 

    이후 김 회장은 50대 후반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고, 방송통신대를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박사과정을 밟으며 논문만을 남겨두고 있다.
  • ▲ 김상문 회장이 오는 15일 준공식을 앞두고 보은 ‘제산컬쳐센터(JESAN CULTURAL CENTER)’를 점검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김상문 회장이 오는 15일 준공식을 앞두고 보은 ‘제산컬쳐센터(JESAN CULTURAL CENTER)’를 점검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나는 나 자신이 평생학습의 증거입니다. 지금도 공부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배울 겁니다.”

    ◇“독만권서 행만리로”… 책 16권 저술, 둘레길 5035㎞ 완주

    그는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 즉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걷는다는 철학을 실천해왔다. 그는 ‘백이전(伯夷傳)’을 11만3천번 읽은 조선 중기 다독왕는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 선생이 독서광으로 인정할 만한 인물이다. 독서를 통해 전 세계 유명인사를 만나고 ‘책에서 길을 찾고 책 밖에서 길을 냈기’ 때문이다. 독서와 끈기가 없었다면 사업도, 보은 ‘제산컬쳐센터’도 없었을 것이다.

    중졸 학력으로 시작해 학문과 실천을 병행한 그는 지금까지 16권의 책을 저술하며 자신이 얻은 지식과 삶의 지혜를 나누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환갑에 골프장 144홀을 하루 만에 걸어서 돌았고, 고희를 맞아 대한민국 5대 둘레길(제주 올레길, 남파랑길, 해파랑길, 서해랑길, 평화누리길) 총 5035㎞를 완주하는 등 ‘극한의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살아 있다는 것을, 끝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내 몸으로 증명하고 싶었다”고 그는 말했다.

    ◇고향에 지은 ‘책의 궁전’… 제산컬쳐센터 15일 준공

    ‘제산컬쳐센터’는 총 5층 규모로 구성됐다.

    1~2층은 북카페와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는 화합의 공간으로 설계됐다.

    3층은 향후 지역 관계기관이 입주할 수 있도록 준비됐고, 4층은 재단 사무실과 함께 보훈 관련 기관 유치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된다. 5층은 전시회, 강연,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가 가능한 다목적 문화홀이다.

    김 회장은 “책 읽기를 숨 쉬는 것처럼 해야 한다는 게 재단의 모토”라며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 책을 통해 이런 선순환이 일어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 ▲ 김상문 회장이 보은 제산컬쳐센터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 김상문 회장이 보은 제산컬쳐센터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김정원 기자
    ◇고향 보은 위해… 주소 옮겨 70억 지방세 납부, 장학재단 설립도

    김 회장은 이 재단을 통해 보은의 청소년과 주민들에게 다양한 문화 경험과 교육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물론 전국 대상이지만, 손이 안으로 굽는다고 보은 지역 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길 바란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동안 노인회관 기부 등 지역사회에 꾸준히 나눔을 실천해온 김 회장이 이번처럼 대규모 복합문화센터를 고향에 건립한 것은 처음이다.

    “보은군은 충북 11개 시·군 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입니다. 희망과 활력이 사라진 고향에 작은 날개라도 달아주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지방세 납부를 위해 주소지를 고향으로 옮겼고, 약 70억 원의 지방세를 납부했다. “국가에 세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고향에 이처럼 보람 있는 공간을 세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책 속에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걸어보세요.” “책 속에 길이 있으니까, 그 길을 찾아 많은 사람이 걸어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책 밖에서 또 다른 길을 내며, 보은이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72세 평생 학습인’의 눈동자엔 고향을 향한 깊은 사랑과 또렷한 사명감이 어렸다.
  • ▲ 제산컬쳐센터는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로 책꽂이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립됐다. 이은석 경희대 교수가 설계한 제산컬처센터는 음양의 조화, 지성과 감성의 공존 등 조화와 공존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했다.ⓒ김정원 기자
    ▲ 제산컬쳐센터는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로 책꽂이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건립됐다. 이은석 경희대 교수가 설계한 제산컬처센터는 음양의 조화, 지성과 감성의 공존 등 조화와 공존에 중점을 두고 디자인했다.ⓒ김정원 기자
    조연환 재단법인 제산평생학습 이사장(전 산림청장)은 “보은에서 태어나 글로벌 친환경기업 인광(仁光그룹)을 일으켜 세운 김상문 회장은 ‘114 도전정신’으로 굴지의 기업을 일으켰고, 평생학습을 신조로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걷는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를 몸소 실천한 분”이라고 말했다.

    조 이사장은 “김 회장은 제산평생학습재단을 설립해 평생학습과 출판문화 활동을 후원하고 고향 발전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2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고향 땅에 제산컬처센터를 건립했다. 제산컬쳐센터가 보은에 활력을 불어넣는 지식과 정보의 숲이자 문화예술을 진흥시키는 은혜의 전당으로써 사랑받는 보은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