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自然城陵 위에서 龍이 춤추는 듯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공주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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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계룡산은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충남 제일의 명산이다. 계룡(鷄龍)이란 이름이 전체 능선의 모양이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아서 붙여졌다고 전한다.계룡산의 주봉은 천황봉(天皇峰, 해발 847m)이지만 지금은 통신안테나가 세워진 출입통제구역이다. 계룡산 대표적인 등산코스인 ‘동학사 주차장~세진정~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세진정~동학사 주차장’을 다녀온다.동학사 주차장에서 포장된 평탄한 길을 따라 상가지역을 지나 동학사 매표소에 이른다. 길가로 세상을 만날 준비에 분주한 철쭉꽃의 모습이 마치 혼례를 올리는 새색시 입술처럼 붉다.매표소를 지나 길을 걷다보면, 청아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 물소리, 지친 심신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싱그러운 연초록빛의 초목, 맑고 투명한 산새의 지저귐이 화창한 아침햇살과 함께 온몸에 전율을 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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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一心)을 의미하는 계룡산 동학사 일주문(一柱門)과 자연관찰로을 지나 극락교(極樂橋)를 건너 길을 오른다. 청초한 계곡과 함께 잇는 발걸음이 덩달아 사뿐해 진다.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나뭇잎 뒤로 검은 머리에 주홍빛 얼굴을 또렷하게 드러내는 동학사불교문화원을 지난다.관음암의 단아한 향아정(香牙亭)에 매료되어 가던 발길을 잠시 멈추고 다가서서 향취를 느낀다. 이어 청기와의 길상암과 미타암을 지나 연초록으로 치장을 시작한 고목들이 즐비한 계곡 길을 오르면 세진정(洗塵亭)에 이른다. 계곡의 반쯤을 차지한 정자 위에 올라서니 투명한 계곡물이 마음속에 얼룩진 티끌을 다 씻어 내리는 것 같다.세진정에서 남매탑으로 오르기 전에 잠시 동학사 대웅전에 들어 부처님을 친견하고 계룡산 등산객들의 안전산행을 기원하고 모든 것을 방하(放下)한다. 다시 세신정으로 되돌아와 남매탑 방향으로 계곡을 따라 바윗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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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물소리가 마치 쟁반 위의 옥구슬이 구르는 소리처럼 맑고 깨끗하다. 그야말로 마음속의 모든 잡념과 욕심이 엄동설한의 얼음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라진다. 하얀 속살을 드러난 바위를 징검다리 삼아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유구한 세월을 뒤로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고사목을 지나면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음을 되새긴다. 그런가 하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초목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으며 산길을 가로질러 흘러드는 물처럼 살고프다.남매탑을 0.6㎞를 앞두고 경사가 급한 돌계단과 바윗길을 오른다. 미끄러질 위험이 있는 곳에 설치된 철제 난간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숨 가쁘게 오르자 천정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르는 길과 합류된다. 이어 금수(禽獸)와 중생(衆生), 그리고 수행자(修行者) 사이에 얽힌 인연(因緣)의 도(道)를 담은 남매탑에서 천년의 열기를 뜨겁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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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탑과 역사의 숨결을 함께한 상원암은 산객들에게 아낌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보시함에 작은 보시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남매탑을 남겨두고 떠나지만 그 뜻을 품고 바위계단을 잠깐 오르면 삼불봉과 금잔디고개로 갈라지는 세거리에 이른다.이 세거리를 삼불봉고개라 하며, 이곳에서 삼불봉을 향해 돌계단과 철제 계단을 오른다. 철제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 시작 후 처음으로 탁 트인 풍광을 만끽한다. 삼불봉 고스락(三佛峰, 해발 777m)에서 자연성릉(自然城陵), 관음봉, 문필봉, 연천봉, 쌀개봉, 천황봉 등을 조망한다. 삼불봉은 산의 형상이 마치 세 부처가 앉아 있는 것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삼불봉에서 철제 계단을 내려와 만개한 진달래가 줄지어 환영하는 돌길을 걷는다. 또 다시 계단을 오르면 사방으로 시원한 조망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능선 벼랑이 예리하여 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산길을 걷는다. 뒤를 돌아보면 삼불봉의 위용이요, 앞을 바라보면 닭의 볏을 쓴 용의 꿈틀거림을 닮은 자연성릉, 관음봉, 천황봉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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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수탉의 볏처럼 뾰족하여 감히 오를 수 없어 철제 계단을 통해 옆으로 비켜 지나간다.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관음봉을 향해 진행하다보면 잠시 암릉에 올라서는가 싶더니 다시 계단을 통해 암봉을 휘돌아 간다. 산 아래 커다란 저수지가 보이는데 아마도 계룡저수지가 아닌가 싶다.암봉 옆으로 계단을 오르고 가파른 비탈길에 잘 정비된 바윗길을 산책하듯 걷는다. 이렇게 삼불봉을 출발하여 0.8㎞ 지점에 이르면 평탄한 능선을 만난다. 이어 오석이 깔린 산길을 색다른 기분으로 걷다가 계단을 오르고 데크로드와 햐얀 돌길을 걸은 후 암릉에 올라선다.이곳에서 휘돌아 온 봉우리를 돌아보고 앞으로 진행하게 될 암릉을 조망한다. 눈길 닿는 곳마다 참으로 기가 막힌 풍광이 펼쳐진다.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 가고 싶다. 벼랑을 이룬 암릉에는 수많은 참나무들이 소나무에게 자리를 비워준다. 이처럼 자연스러움이란 자신이 머물 자리를 알고, 알면 그 자리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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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처럼 깎아지른 낭떠러지 암릉을 걷자니 신선이 따로 없다. 내가 신선이 되어 주유(周遊)하며 자연의 기운을 듬뿍 받는다. 그림 같은 암릉을 떠나기 싫어 어슬렁어슬렁 오르락내리락 하며 걷는다.관음봉을 0.4㎞를 남겨두고 계단이 관음봉 고스락까지 쭉 이어진다. 이 계단을 오르면서 힘들지만 간간이 발길을 멈추고 돌아서서 힘든 보상을 받듯이 자연성릉의 위대한 조화를 원 없이 즐긴다. 계단은 하행과 상행을 한 줄로 지나갈 만큼 충분히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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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봉 고스락(觀音峰, 해발 766m) 오르니, 마치 필요할 때 부르면 언제나 응답하는 관세음보살처럼 대자대비하게 삼불봉과 쌀개봉의 양 줄기를 손잡아 잇고, 양팔을 벌려 좌우로 산천을 품고 있는 형상이다. 관음봉 고스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려는 산객들의 줄이 육각정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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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봉 부근에는 많은 산객들이 쉬어갈 자리를 많이 마련해 두었다. 돌계단을 0.1㎞ 하행하면 관음봉 고개에 이른다. 고갯마루에는 긴급재난 안전쉼터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연천봉까지 1.0㎞에 불과하여 다녀오고 싶지만, 다음 산행을 위해 남겨두고 동학사(2.3㎞) 방향으로 하산한다.돌계단을 하행한 후 좌측으로 자연성릉을 조망하고, 그 다음 데크계단을 내려오면서 동학사와 유성을 조망한다. 이어서 경사진 너덜지대를 지그재그로 하행한 후 끝없이 이어질 듯 돌계단을 하행한다. 생노병사를 일깨우는 산길 옆 고사목을 지난다.서서히 계곡 옆으로 이어지는 바윗길을 내려가면서 돌무더기를 지난다. 관음봉에서 1.0㎞를 하산하면 돌이 얹혀 있는 나무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돌덩이를 내려놓는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하니 괜스레 미안한 감정이다. 자신의 기원을 위해 무심코 올려놓은 돌로 나무가 느꼈을 무게만큼이나 내가 지은 구업(口業)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참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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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선폭포상단 쉼터에서 돌길을 따라 구릉을 오르면서 은선폭포 상단을 내려다본다. 은선폭포상단 쉼터에서 0.2㎞를 이동하면 은선폭포전망대에 이른다. 가는 물줄기의 폭포수를 조망하고 다시 계단을 밟으며 산비탈을 오른다.은선폭포에서 0.2㎞를 지나자 산행에서 처음으로 밟아보는 흙길을 걷는다. 구릉을 오르면서 좌측으로 자연성릉과 삼불봉을 조망하고, 삼불봉의 바위자락에 자리 잡은 파란 물체가 무엇일까 의구심이 생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곳이 심우정사다.몇 발자국 이동하여 동학사까지 1.0㎞가 남게 둔 넓은 쉼터를 만나 잠시 쉬어간다. 다시 시작되는 돌계단을 내려가자 안전 난간이 설치된 가파른 비탈길을 하행한다. 마지막 계단을 하행하면서 천왕봉과 향적봉의 치맛자락 같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동학사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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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사를 0.6㎞를 앞두고 계곡 물소리가 점점 크게 다가와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시 돌길을 내려가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작은 구릉을 오른다. 좌측으로 심우정사(尋牛精舍)가 35분 거리가 있다는 푯말에 이끌려 잠시 올라가 본다.연등(燃燈)을 따라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심신이 지쳐가면서 잃어버린 소를 찾기가 이처럼 어렵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등산로에서 출발하여 1㎞ 정도 오르자 해발 약 500m에 위치한 심우정사에 도착하였으나 인기척이 없다.하기야 열심히 공부하여 본성(本性)을 찾았으나 그 자체가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온갖 잡념과 번뇌를 씻어버린 순수한 나 자신의 모습은 바로 자연과 닮았다. 이제 다시 등산로로 하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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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을 내려와 계곡을 건너면서 계곡을 비추는 늦은 오후 햇살이 연초록 나뭇잎을 티끌 없이 선명하게 한다. 마치 본성이란 이런 것이라고 일깨워 주는 듯하다. 숲이 울창한 공간 쉼터를 지나 향아교(香牙橋)를 건너면서 동학사 경내로 들어선다.담벼락을 뚫고 나와 하늘 높이 솟은 고목이 의연해 보인다. 모든 고난을 딛고 참나를 찾은 이들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동학사 대웅전과 범종루를 지나 다시 계곡을 건너 동학사 옛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향한다.맑은 물소리에 떠있는 세신정을 지나고, 2022년 9월 5일 태풍 힌남노에 의해 쓰러진 나무 밑을 허리를 구부려 통과한다.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 나무를 보니, 삶이란 이런 모습이 아닌가 싶다. 나만이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 세상 어디에도 아픔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이렇게 계곡의 청아한 아름다움으로 흐릿해진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평탄한 길을 따라 주차장에 도착하여 13.33㎞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