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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전에는 졸업과 입학시즌에 소위 서울의 몇몇 명문대학 총장의 축사가 유명일간지 일면에 실렸었다. 유력일간지에 대학총장의 졸업식 축사가 실렸다는 사실은 그 시절에 총장 축사를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던지는 교훈적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총장을 존경하고, 총장의 권위를 우리 사회가 인정했다는 의미였을 게다.1990년대 들어 문민정권 때, 모 명문대학 총장이 임기를 상당히 남겨두고 미련 없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그 인사는 대학 총장의 권위가 청와대 비서실장의 권력 아래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행동으로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그 때 이후로 고고한 학처럼 보였던 상아탑의 수장인 대학 총장의 권위가 청와대비서실장 아래의 서열로 굳어져버렸다.
시골 면소재지까지 대학이 들어선 요즘의 대학 총장은 학문적 품격과 덕망을 갖추고 평생 학문을 정진해온 학자이기보다는 한 지역기관의 기관장 정도로 위상이 추락해 버렸다. 게다가 퇴직 정부 관료들이 관직 경력으로 대학 총장이 되는 일이 다반사가 되면서 이제 우리 사회에서 대학총장의 권위를 말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다.
필자가 어렸던 시절에 부모님들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학교 선생님께 대하여 존경과 믿음으로 예를 표하고 제도적으로도 특별히 대우하였다. 예전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지만 선생님에 대한 그런 사회적인 존경과 위엄이 오래 전에 실종되었다. 스승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우리 사회에는 어른의 역할과 기능도 함께 사라졌다. 우리 사회의 향도가 되어야 할 교육 원로가 없어진 것이다.
일부 성직자들이 현실정치에 끼어들어 이념 편향적 선동을 일삼으면서 종교계도 스스로 사회적 존경과 권위를 몰락시키고 있다. 그들은 편향된 이념에 파묻혀서 나라 안위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나라를 지키는데 필요한 정책에는 무조건 반대하거나 방해하고 설교를 빌미로 교인들을 선동하면서 스스로 성직자의 권위를 무너뜨린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향도가 되어야 할 종교계의 원로가 사라지고 있다.
촛불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하여 끌어내리고, 탄핵된 대통령을 구속하고 재판하는 과정에 일반 잡범 다루듯 하는 광경을 생중계로 세계만방에 보내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 마음속에는 대통령의 권위도 함께 무너져버렸다. 그 무너진 권위는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뿐만 아니고, 앞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선출될 어떤 대통령일지라도 언제든지 촛불로든 뭣으로든 대통령직에서 끌어 내릴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었다. 그런 선례가 곧 대통령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국가 리더십을 망가뜨릴 것이다.
정부의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국민들은 후보자들의 자질이 저잣거리 필부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익히 보아 왔다. 새 정부에서도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지명된 장차관 후보자들이 모범이 되고 존경받기는커녕 하나같이 잘 배운 지식으로 불법과 탈법을 저지른 전력이 드러나서 국민들의 지탄을 받기 딱 좋은 데도, 그런 인사들이 똑똑하다거나 민주투쟁 경력이 있다거나 정치성향이 같다는 이유로 고위관료로 임명되었다. 문대통령 취임 일성으로 내세웠던 공직자 임용배제 5대적폐가 그렇게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런 광경을 보는 국민들에게 정부 고위관료의 권위는 나라를 위한 권위가 아니라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국민들이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면 장차관들은 영(令)을 세워 국정수행하기가 어려워진다. 비록 집권 초반의 높은 지지율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라 하더라도 이렇게 시작부터 스텝이 꼬이면 오래지 않아 국정수행에 적지 않은 장애가 생길 것이 분명하다.
뇌물을 받은 죄로 2년의 형기를 마치고 며칠 전에 출소한 전직 국무총리는 마치 양심수로 형기를 마치고 나오는 것처럼 환영인파에 둘러 싸였다. 알만한 정치인들의 환영모습과 핍박받은 투사를 연상시키는 그의 발언에서 국민들은 국무총리 자리의 권위가 아예 뭉개지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보았다. 뇌물수뢰 혐의 증거가 명백하여 대법관 전원이 내린 유죄판결을 부인하는 전직 총리의 마음속에 국가와 국민이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인사가 민주투쟁의 이력으로 총리가 되었고 공당의 대표도 되었지만, 본인이 차고앉았던 자리의 권위를 스스로 모두 깎아 내렸다. 국무총리 권위의 자멸이다.
군대갔다온 남자들은 별을 단 장군이 얼마나 높고 대하기 어려운지를 잘 안다. 별을 단 장군이 사병에게 직접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상상 못할 일이다. 그런데 새 정부 들어 공관병 학대폭로가 이어지고 현역 대장의 명예에 먹물이 뿌려졌다. 평생을 군인으로 국가를 위해서 봉직했던 육군대장이 부인의 공관병 학대가 사실인지는 몰라도 그 이유로 자리에서 밀려나고 전역도 못하고 조사를 받고 있다. 국가방위에 평생 몸 바친 당사자의 심경은 처참할 것이다. 육군대장을 그렇게 개망신 줘서 군복을 벗게 하면 어느 한 쪽에서는 ‘사이다 맛’일지 모르겠지만 군인의 권위, 장군의 위엄, 육군대장의 명예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군의 권위가 그렇게 무너지면 안보가 흔들리고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사회의 권위가 도처에서 붕괴되고, 몰락하고, 자멸하면 나라의 권위도 그 길로 함께 간다. 무너진 권위가 다시 세워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조직의 권위가 무너지고 사라지고 있는 이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