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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 오패산 터널 인근에서 폭행사건 용의자가 쏜 사제 총에 맞고 순직한 고(故) 김창호 경감의 고향이 충북 영동으로 알려지면서 충북 경찰을 비롯한 지역민들이 비통해 하고 있다.충북지방경찰청은 사건 다음날인 20일 오후 6시 도내 12개 경찰서에 일제히 사이렌소리를 울리며 30초간의 묵념과 함께 고 김창호 경감(54)의 명복을 빌었다.
고인의 고향에는 84세 노모가 홀로 살고 있지만 아들의 사망소식에 혹여라도 큰 충격으로 실신이라도 하고 건강에 위협이 될까 염려돼 비보를 전하지 못하다 다음날인 20일 그래도 차마 마지막 가는 자식과 인사라도 나누라고 하는 수 없이 소식을 전했다고 알려지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
낮 12시10분쯤 고인이 안치돼 있는 서울 경찰병원 영안실에 도착한 김 경감의 팔순 노모는 빈소에 닿기도 전에 오열하기 시작하며 끝내 주저 앉았다.
이내 빈소에 도착한 노모는 서글피 울면서 김 경감 이름만 잇따라 외쳐 빈소를 지키던 유족들도 함께 눈물을 터쳐 눈물바다를 이루며 이를 지켜보던 주변사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故 김 경감은 1962년 6월20일생으로 충북 영동고를 졸업하고 1989년 8월19일에 순경 공채로 경찰에 입문, 2005년에 경위로 승진했다.
청와대 경호실 지원부대 101경비단과 서울청 202경비대, 서울청 보안수사대 등을 거쳐 서울 강북경찰서에 지난 2월부터 근무해오다 이번에 참변을 당했다.
27년째 경찰에 몸담아 오며 정년을 6년 정도 남긴 상태인 그는 지난해 모범공무원 국무총리 표창을 비롯해 총 24차례나 각종 표창을 받을 만큼 모범적인 경찰관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평소 현장에 늘 앞장서는 등 솔선수범을 보여 선후배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온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22살의 아들도 서울도봉경찰서 방범순찰대에서 의무경찰로 근무하고 있이며 사건 발생 4일 전인 15일부터 외박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계급 상경)은 “사건 당일 아버지와 가족들이 함께 강원 횡성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야간의 현장 업무를 걱정하며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고 밝히기도 했다.
20일 서울 송파구 경찰대학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는 전날 발생한 사고로 숨진 김창호(54) 경감의 빈소는 애도의 물결로 가득했다.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조문 행렬이 이어지며 경찰 동료들과 이철성 경찰청장, 김정훈 서울청장, 국회 안행위 소속 의원들 및 황교안 국무총리, 홍윤식 행자부장관 등 300여명이 조문하고 명복을 빌었다.
이어 21일에도 아침부터 빈소에는 차분한 분위기 속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그리고 김현웅 법무부 장관 등 정치권과 법조계 인사 등이 조문을 다녀갔다.
황천성 영동경찰서장은 “공권력을 집행하다 이런 안타까운 일이 생겨 고인 고향의 치안책임자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면서 “언제나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안위에는 소홀한 경찰에게 예산을 확보해 필요 장비를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김 경감은 19일 오후 6시45분께 서울 강북구 번동 오패산터널 입구 인근에서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하던 강도 피의자를 좇다 성모씨(46)가 쏜 총탄을 맞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시간 만에 숨졌다.
이에 이철성 경찰청장은 숨진 고 김창호 경위(54)를 사고 전날인 18일자로 1계급 특진시켜 경감으로 추서했다.
이와 함께 22일 오전 10시 진행되는 영결식이 끝날 때까지 전국 모든 경찰관 및 의무경찰대원에 근조리본을 착용하고 조기게양할 것도 지시했다.
고 김창호 경감에게 총을 쏜 피의자 성씨는 살인할 목적으로 총기를 직접 제작했고 그가 사용한 총은 청계천 을지로에서 재료를 구입해 본인이 직접 제작했다고 진술했다. 범행에 사용한 총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불을 붙여 쇠구슬 탄환을 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