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개혁보다 더 시급한 사법개혁
  • “현직 판사가 저지른 사법폭력을 사회에 고발하고, 응징하는 일은 법으로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그래서 법 이외의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 못된 판사를 미행․감시하여 법관의 탈을 쓰고 자행하는 온갖 불법을 다 들춰내기로 작정했다.“

    최백수는 여기까지 작가의 집필의도를 읽고 두 눈을 감는다. 주마등처럼 옛날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다시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면서 감정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최백수는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추스른다.
    두 눈은 다시 폭력판사 고발소설 감치명령을 쓰게 된 작가의 말 “난 죄가 없어.”를 읽기 시작한다.

    “판사를 미행․감시한 결과는 사안에 따라 형사적으로, 민사적으로, 폭력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난 또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가 파멸하기 전에 내가 먼저 파멸 당할 수도 있다.
    무고로, 명예훼손으로, 그보다 더 무서운 괘씸죄로 내가 먼저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장에 또 들어가는 것은 무섭지 않다. 복수도 못하고, 여론화도 못 시키고, 매장도 못시키고, 개죽을 당하는 게 분할 뿐이다.
    가장 현명하게 복수하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심하다가 이 방법을 쓰기로 작정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쓴 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나 그 판사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시대적인 흐름일 테니까 수많은 사람이 겪었을 수도 있다.
    그 판사 한 사람을 응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법부에 경종을 울려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제때 봉급을 못 주면서도 미안해하지도 않는 사이비․부실 언론의 문제도 사회에 고발하고 싶었다.
    신문개혁이 정치적인 문제 말고도 생존의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민생이란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더 이상 늦추다가는 상처받고 좌절하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이란 사실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그게 억울해서 찾아간 법원은 사이비․부실 언론사보다 더 크고 처절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체불임금을 받기위해 3년 동안 법원을 쫓아다니면서 겪어야 했던 수모와 고통도 함께 고발하고 싶었다.
    난 못된 판사보다, 부실 언론보다 더 큰 것을 발견했다. 3년 동안 임금 한 푼을 못 받은 것보다, 아무 죄도 없이 유치장에 갇히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슬픔은 나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최백수는 더 이상 읽지를 못하고 책을 덮는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란 대목이 가슴이 아파서다. 아무리 가슴이 아파도 글을 안 읽을 순 없다. 결국 또 책을 편다.
     “아무 죄도 없이 유치장에 들어가 10일 동안 갇혀있으며 난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10일 동안 유치장에 있으면서 인생 경험도 많이 했지만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 지를 비로소 알았다. 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매달려있었고,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막장에 와있었다. 어쩌다 난 이 지경이 됐는가를 탄식했다.
    어쩌다가 난 가정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사회로부터, 배척당해 외톨이가 됐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난 패륜아도, 사기꾼도, 폭력배도, 노름꾼도 아니다. 어떻게든 내가 해야 할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선량하게 살려고 발버둥을 쳤던 소시민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보니 난 가정으로부터, 직장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척받고 소외 받는 사람이 돼 있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살아왔다. 아니 안 그런 척 내숭을 떨며 살아왔다.
    이제 현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이유를, 그 원인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더러는 내 책임도 있었지만 내 책임이나 잘못이 아닌 부분이 더 많았다. 난 내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굳이 죄를 따진다면, 내가 무능력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해서 이 지경이 된 것이다.
    난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난 눈을 밖으로 돌렸다. 이게 어디 나뿐이겠는가? 우리사회에는 말을 안 할뿐이지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난 그들이 차마 못하는 말까지 다하고 싶었다.
    그래서 난 이런 말들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이다.“

     최백수는 가슴이 아프다. 이런 내용을 제보하던 그 기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런 고통을 받는 기자는 아직도 많을 것이다. 최백수는 옛날 일을 돌이켜 보면서 회한에 잠긴다.
    독자들의 반응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이었다.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세상을 변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감치명령이란 소설은 미련을 남긴 채 책장 한편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최백수는 감치명령을 책장에 다시 꽂는다. 허공을 맴돌던 그의 눈길이 머문 것은 만세력이란 서적이다. 옛날엔 역학을 배우는 게 만세력이란 책을 보는 방법을 배우 것이라고 여길 만큼 중요시했다.
    기독교인에게 성경과 같은 존재다. 지금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니까 생년월일과 시(時)를 검색하면 사주가 나온다. 사실상 만세력이란 책이 필요 없게 됐다. 최백수는 만세력을 펼쳐들면서 인사신(寅巳辛)이란 생각을 한다.
    인사신은 삼형살(三形殺)이라고도 한다. 사주에 삼형살이 있는 사람은 범죄로 감옥에 갈 확률도 높지만, 판검사나 경찰 등 법이나 형(刑)을 다루는 일에 종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그 해에 삼형살이 들면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게 역학의 형살(刑殺) 이론이다. 최백수는 감치명령이란 소설을 쓰도록 제보한 기자가 그 해에 인사신 삼형살이 들어오는 해였다는 기억을 떠올리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