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마저 사랑이 된 시간’…말하지 못한 마음의 기록‘두 사람·한 공간’으로 완성한, 가장 사적인 사랑의 서사‘연말 소극장’에서 만난 삶과 닮은 위로
  • ▲ 충북 청주 소명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뷰티풀나이프에 출연한 순옥역의 김현지, 춘식역의 정경식 씨.ⓒ김정원 기자
    ▲ 충북 청주 소명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뷰티풀나이프에 출연한 순옥역의 김현지, 춘식역의 정경식 씨.ⓒ김정원 기자
    사랑은 언제나 분명하지 않다. 연극 뷰티풀나이프는 그 불분명함 속에서 끝내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이야기한다. 

    크리스마스 성탄절, 청주 소명아트홀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다시오지 않을 이 순간’이라는 문장을 관객 각자의 삶에 조용히 겹쳐 놓으며, 사랑이 남기고 간 흔적을 천천히 되짚게 한다.

    ◇ 가장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가장 큰 약속

    무대 위에는 테이블 하나뿐이다. 작은 포차에서 마주 앉은 춘식과 순옥은 특별한 사람들도, 거창한 꿈을 가진 인물들도 아니다. 

    그러나 “당신을 위해서라면 별도 따줄 수 있다”는 춘식의 고백은 그 시절만이 가질 수 있었던 진심의 언어다. 

    봄처럼 풋풋하고 여름처럼 뜨거웠던 두 사람의 사랑은, 가진 것이 없어도 서로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믿었던 청춘의 얼굴을 닮아 있다. 작품은 이 평범한 시작을 통해, 사랑이 얼마나 쉽게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떠난 사람과 남겨진 시간, 원망하지 못한 이유

    춘식은 어느 날 떠난다. 주소를 알려주고, 언젠가 다시 보자 말했지만 편지 한 통 오지 않는다. 얼굴도, 소식도 없다. 

    순옥은 기다린다. 분노하거나 따져 묻지 않고, 사랑했던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도 않는다. 

    뷰티풀나이프는 이 침묵의 시간을 가장 중요한 서사로 삼는다. 말이 없기에 더 무거운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에 더 오래 남은 감정. 이별 이후의 삶이 어떻게 사랑을 증명하는지를 작품은 조용히 보여준다.
  • ▲ 청주 소명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뷰티풀아니프 포스터.ⓒ김정원 기자
    ▲ 청주 소명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뷰티풀아니프 포스터.ⓒ김정원 기자
    ◇ 다시 만난 그날, 사랑은 끝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몇 해가 지나, 두 사람은 처음 만났던 바로 그 포차에서 다시 마주친다. 

    우연처럼 찾아온 재회는 관객에게 묻는다. 사랑은 끝나는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남는가. 변해버린 시간과 각자의 삶 앞에서도, 눈빛 하나와 짧은 대화 속에 남아 있는 감정은 선명하다. 

    이 장면에서 뷰티풀나이프는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각자가 자신의 기억 속 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 두 배우의 호흡이 만든 감정의 밀도

    이 작품은 2인극이다. 약 90분 동안 무대에는 오직 두 사람의 감정만이 쌓인다. 

    회차별로 다른 배우들이 김춘식 역과 박순옥 역을 맡아 각기 다른 결의 사랑을 만들어낸다. 관람 포인트로 꼽히는 것은 ‘두 배우의 감정 호흡’, ‘일상에 닿아 있는 대사’, ‘웃음과 눈물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흐름’이다. 

    관람객들은 “인생의 한 시절을 꺼내 보게 된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후기를 남기며 깊은 공감을 전했다..
  • ▲ 청주 소명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뷰티풀나이프 출연진.ⓒ김정원 기자
    ▲ 청주 소명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뷰티풀나이프 출연진.ⓒ김정원 기자
    ◇ 화려함 대신 진심을 택한 무대

    뷰티풀나이프는 2019년 한류문화대상(뮤지컬·연극 부문)을 수상한 작품으로, 프로듀서 김승민, 작·연출 김원진, 제작 지안컴퍼니가 참여했다. 

    이 작품은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장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소극장이기에 가능한 밀도, 배우의 숨결과 침묵까지 전해지는 거리감이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비록 모든 순간이 즐겁지 않을지라도 너라면 더 행복한 우리의 사랑 이야기”라는 문장은 공연이 끝난 뒤에도 오래 남아, 관객 각자의 연말을 조용히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