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호서역사문화연구원 부원장 강철수
  • ▲ 언론인/호서역사문화연구원 부원장 강철수ⓒ강철수 부원장
    ▲ 언론인/호서역사문화연구원 부원장 강철수ⓒ강철수 부원장
    조선왕조실록과 경국대전은 인사 공정성이 국가 기강의 뿌리임을 반복해 강조해 왔다.  조선은 인사를 나라의 흥망을 가르는 핵심으로 보았고, 경국대전은 관직 임명 기준을 철저히 법제화했다. 

    인사 비리에 연루되면 파직과 유배는 물론, 중형까지 가능하다고 적시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적 청탁이 국정을 무너뜨린다는 역사적 교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록 곳곳에는 임금조차 사사로운 인사 개입을 시도하자 대신들이 “청탁을 허하면 나라의 법도가 무너진다”며 간쟁한 기록이 적지 않다. 

    사헌부와 사간원은 왕권을 견제하며 부당한 인사 의혹이 보이면 즉시 탄핵을 올렸다. 국가의 기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인사의 공정’이라는 확신이 제도화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 최소한의 원칙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인사 개입 논란에서는 “훈석이형”, “현지누나” 같은 사적인 호칭이 공적 인사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오르내렸다. 

    공직 임용이 친분의 연장선으로 거론되는 듯한 풍경은 국가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는 특정 개인의 비위가 아니라 사적 인맥이 공적 권한을 침투할 여지를 구조적으로 방치한 제도의 실패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사 기준과 절차가 지나치게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공적 인사임에도 과정이 기록되지 않거나 공개되지 않아, 비공식적 영향력이 관행처럼 작동하고 있다. 이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조선시대조차 인사 기록을 실록으로 남겨 통제와 감시의 근거를 마련했는데, 오늘의 국가가 그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인사는 국정 운영의 기초다. 인사가 흔들리면 정책은 설득력을 잃고, 행정은 신뢰를 잃는다. 실록은 “잘못된 한 번의 인사가 나라를 기울게 한다”고 경고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이 바로 그 경고에 다가서고 있다. 사적 청탁의 그림자가 인사에 드리워진다면 국가 운영의 도덕적 기반은 순식간에 붕괴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사안을 일시적 논란으로 봉합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의 해명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총체적 점검과 재설계다.

    첫째, 인사 과정 전반을 기록·공개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둘째, 사적 접촉과 청탁 개입을 차단하는 법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셋째, 인사 기준을 명확히 해 누구도 임의로 해석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조선조가 500년 전에 실록과 경국대전으로 제도적 장치를 세웠듯이,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견제 장치를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조선보다 못한 인사 시스템”이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 아니다. 인사의 공정성 회복은 국가의 존립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사적 청탁이 발붙일 틈을 없애지 못한다면 오늘의 혼란은 반복되고, 국정 신뢰는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가 응답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