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놈펜에서 만난 사람들’ : “캄보디아 미치도록 사랑하고 품고 싶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이재룡 칼럼니스트
    대양으로 나가는 꿈을 꾼다는 것은 엄청난 사치다. 캄보디아 해안선은 베트남의 윽박에 밀려 남부 작은 어촌마을 Prek Chak부터 시작하여 ‘태국이 하품하다’ 그어 놓은 Cham Yeam에서 멈춘다. 그마저도 수심이 낮아 근해에서 고기잡이하는 것 말고는 아무 쓸모가 없다. 바다를 가진 내륙국과 다를 바 없다.  

    ​너무 매우면 안 된다. 맵기만 하면 입안을 자극하기만 할 뿐이다. 지나치게 맵지 않다. 적당히 맵다. 마치 와인 같다. 오랫동안 입안에 두면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흑후추, 적후추, 백후추 세 종류가 익어간다. 백후추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30g에 100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비싸다. 베트남은 값싸고 조악한 후추를 캄폿(Kampot) 후추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시장에 내놓고 있다. 

    ​베트남은 통일 과정에서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NFL)을 결성하였고, NFL은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한 미국과 대리전쟁(1960∼1975)을 벌인다. 호찌민(胡志明)의 승리로 끝났다. 후추를 사랑했던 베트콩은 베트남 전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1974년 2월 6일부터 4월 2일까지 캄폿에서 전투를 벌인다. 크메르루주(Khmer Rouge) 살인 정권은 백성들에게 농사 대신 전투를 강요했다. 이 기간에 캄폿 후추는 전멸하다시피 했다. 정권이 패배한 후 농민 몇몇이 살아서 그들의 땅 캄폿으로 돌아왔다. 살아있던 후추나무들을 조금씩 되살렸다. 캄보디아의 보석 캄폿 후추는 부활했다. 우라질 놈의 후추가 세계사를 휘젓고 있다.  
  • ▲ 이재룡 칼럼니스트가 프놈펜에서 현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가 프놈펜에서 현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이재룡 칼럼니스트
    프놈펜에서 남쪽으로 곧장 2시간을 내달려 캄폿을 마주했다. 저만치 베트남 땅 푸꼭(Phu Quoc)이 실하게 웃고 있다. 캄보디아에서 가자면 15㎞, 베트남에서 가자면 45㎞라 하니 이게 뭔 일인가 싶다. 중국(공산당) 대륙에서 2㎞ 타이완(국민당) 본섬에서 200㎞ 떨어져 있는 외로운 섬 ‘진먼다오(金門島)’가 클로즈업된다. 한때 크메르루주 정권이 푸꼭을 되찾아 왔다고 한다. 캄폿에서는 푸 곡을 그리워한다. 누구 땅인가? 기력이 쇠해버린 캄보디아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보꼬산(Bokor Park)에서 발원한 물이 강으로 모여 캄폿을 지나 천천히 태국만으로 흐른다. 캄폿 리버사이드에 생뚱맞은 해마 조형물이 애꿎게 물을 뿜고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싱가포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머라이언(Merlion)을 리 카피한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상상의 동물이며 상반신은 사자, 하반신은 인어(물고기)로 치장한 조형물이다. 

    신조어도 하나 생겨났다. Mer(인어)+Lion(사자)=Merlion(사자 반 고기 반) 그렇다면 캄폿에 웬 해마 조형물을? 나름 ‘짱구를 굴려본다’. 해마(海馬, Seahorse, Hippocampus)는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 ‘Hippocampus’는 고대 그리스어로 ‘말’을 뜻하는 “Hippo”와 ‘바다괴물’을 뜻하는 “Kampos”에서 유래됐다. 

    순간 ‘깜놀’이다. 캄폿(Kampot)과 캄포스(Kampos)의 연관성을 유추해서 개똥철학으로 정리해 본다. 어쩜 이런 일이,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는 믿지 못할 일이, 바다괴물이 되어 캄보디아를 지켜 달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 ▲ ⓒ이재룡 칼럼니스트
    ▲ ⓒ이재룡 칼럼니스트
    생산 시설이 전무한 캄보디아는 소비가 전부이고 막장엔 부동산으로 끝을 본다. ‘기-승-전-부동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크메르 백성들 얼굴에 슬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캄폿 강가 그늘진 야자나무 아래에 소녀 셋이 더위를 피해 있다. 곁으로 슬쩍 다가가 말 동냥을 구했다. 19살 또래들이 영어로 또박또박 들려주는 캄보디아 긍정 시그널에 무릎을 쳤다. 오히려 K-POP와 ‘BTS’를 아는지 물음을 던졌다. 캄보디아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가슴 저미게 품고 싶다는 소녀들의 당당함에 목이 말랐다.

    ​2024년 4월 23일. 미처 몰라 머리만 긁적였던 찬란한 캄보디아 문화와 소녀들의 자부심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이재룡 뙤약볕에서 하염없이 걷다가 나무 그늘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을 가둬 글로 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