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공유하기

[박규홍의 시사칼럼] “여의도에 해 안 뜬 대두 난 모르오”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3-05-06 07:52 | 수정 2023-05-07 12:58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1.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 주고,/ 그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받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 대두/ 난 모르오 웃은 죄밖에.

고교 국어 시간 때 선생님께서 들려주셨던 파인(巴人) 김동환의 ‘웃은 죄(罪)’라는 시이다. 그 때 시의 여운이 매우 강하게 남았던 탓인지 아직도 시구(詩句)가 생생하다. 문학적 감성이 부족하더라도 정지용의 시 ‘향수’처럼 단박에 광경이 그려지는 시이기 때문이다.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던 아낙네에게 지나가던 나그네가 길을 물으니 아낙네는 친절하게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길을 일러줬고, 목이 마르니 물 좀 달라기에 한 바가지 떠줬다. 나그네가 고맙다고 인사하기에 살포시 미소 지었을 뿐이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던 동네 아낙네가 그 광경을 봤다. 그날 저녁 마침 아낙네는 일이 있어 마실을 못 갔고, 마실 나온 동네 다른 아낙네들이 모여 떠들다가 “오늘은 왜 안 왔지?”란 물음에 우물가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 아낙네가 농으로 “아까 우물가에서 눈 맞은 거 아냐?”라 했다. “어머, 어쩜~~” 하던 말이 몇 다리 건너가더니 이내 그 아낙네와 나그네가 눈이 맞아 밤마다 몰래 어디로 간다는 소문으로 커진다.
#2. 야당 대표였던 송영길 씨가 당 대표로 뽑혔던 경선 과정에서 돈 봉투를 살포한 정황이 녹취록에서 명백히 드러나서 여론이 비등하자 연수 중이던 프랑스에서 중도 귀국했다. 그런데 귀국 기자회견에서 송 전 대표는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참모들을 괴롭히지 말고 자신을 벌하라’라고 말하면서도 ‘자신과는 무관하고 모르는 일’이라고 앞뒤가 어긋나는 주장을 했다. 

검찰이 소환하지도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날짜를 잡아, 같이 몰려든 지지자들과 함께 검찰에 출석하는 헤프닝도 벌였다. 송 전 대표가 검찰청사 입구에서 모른다(그 주장이 진실인지 허위인지는 아직 안 밝혀졌지만)는 언어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게 일반 시민의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특이하고 권위적인 행태이다. 

송 전 대표의 ‘난 모른다’라는 주장에서 김동환의 ‘웃은 죄’ 마지막 시구 ‘난 모르오’라는 말이 연상된다. 하지만 시구에 나오는 아낙네의 ‘난 모르오’라는 주장은 정말 억울하여 우러나온 진정한 하소연이지만, 송 전 대표의 ‘난 모르오’라는 주장은 시 ‘웃은 죄’에서 함의하는 ‘난 모르오’와는 결이 전혀 다르다. 

일부 열성 지지자들은 녹취록에 들어있는 빼 박할 수 없는 돈 봉투 수수 정황에도 송 전 대표의 결백 주장을 믿으려 한다. 그가 86세대의 신성불가침 민주투사이니까 그런 건가? 민주투사의 주장과 행위는 항상 정의로워서 지지자들이 무조건 지지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서 86세대 민주화 투쟁 이력도 역사의 뒤꼍으로 사라질 시기가 훨씬 지났다. 그래서 민주 투쟁 때에나 통했을 송 전 대표와 같은 주장은 허공을 향한 외침이 되는 게다. 송 전 대표는 언제까지 민주투사로서 국민에게 결백하다고 외칠 건가? 

#3. 당 대표 경선 전당대회가 ‘쩐당대회’였던 걸로 밝혀진 후에도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흔한 일인데 뭘 그렇게 까탈스럽게 따지냐는 반응이었다. 자기들끼리 하는 당내 선거는 자기들 이너서클 행사인데,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홍두깨로 귓구멍을 후비든 뭐가 문제이냐는 반응이었다. 

돈 봉투 주고받는 일 정도는 다반사(茶飯事)인 것처럼 여겨야 돈 봉투 돌리기 녹취록과 같은 대화가 오갈 수 있는데, 대화 녹취록을 듣자면 자기들 끼리끼리는 이물 없이 그런 일을 행해왔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형 아우 챙기는 조폭 사회에서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이다.
 
요즘은 스승의날 학생이 스승에게 주는 작은 사은품이나 음식 대접도 김영란법으로 막고 있는 삭막한 세상이다. 졸업하는 제자들이 스승을 모시는 사은회가 사라진 지도 꽤 오래되었다. 

그런데 민주당 안에서는 돈 봉투 돌리고 밥값 주는 훈훈한 미풍양속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광경에 국민이 놀라는 게다. 국민은 민주당이 참으로 인정이 철철 넘치는 인간적인 정당이라고 여겼을까, 아니면 크게 개과천선하지 않는 한 21세기 자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사라져야 할 정당이라고 여겼을까? 

송영길 전 대표도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이 반성해보길 바란다. 계속 ‘여의도에 해 안 뜬 대두 난 모르오’라고 할 건가? 아니면 좀 서운하겠지만 이쯤에서 정치라는 폭주 열차에서 하차할 건가? 국민은 이미 정답을 잘 알고 있다. 
뉴데일리 댓글 운영정책

뉴데일리 경제

대전·충청·세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