牙山市 천년의 숲길 중 ‘천년비손길’ 일부 구간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아산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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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산은 충남 아산시 송악면과 예산군 대술면 및 공주시 유구면에 걸쳐 있는 해발 536m로 높지 않으면서도 자연의 숨결을 만끽하며 산행하기 좋다. 산세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봉수산(鳳首山)이라 부른다고 전한다.행낙철 주말 이동은 차량증가로 정체구간이 있을 수 있으므로, 1시간 정도 더 여유 있게 산행일정을 잡는 것이 좋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봉곡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봉곡사 표지석이 세워진 입구에서부터 굵고 키 큰 소나무가 큰 숲을 이루고 있어 장관을 이룬다.이것은 봉수산 산행에서 가장 멋들어진 명소로 손꼽히는 노송(老松) 군락지인 ‘천년의 숲’이다. 이 소나무 숲길은 봉곡사 주차장에서부터 봉곡사까지 약 0.7㎞에 걸쳐 있다. 이 숲길을 걷는 동안 푸른 숲이 눈을 편안하게 하고, 새소리가 마음을 여유롭게 하며, 피톤치드가 넘쳐흐르는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심한 미세먼지로 공기가 오염되고, 끝을 모르고 치닫는 욕망으로 인간도 오염되며, 그로 인해 자연의 훼손이 심각해지는 오탁(汚濁)의 세계를 사는 현실 속에서 잠시나마 무심(無心)으로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시공간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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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숲으로부터 혜택을 듬뿍 받으며 걷고 있을 때 소나무의 흠집이 눈에 띈다. 아름드리 소나무 밑동에는 한결같이 V자 모양의 흉터가 있다. 이는 일제가 패망직전에 연료로 쓰고자 송진을 채취하려고 주민들을 동원해 낸 상처이란다.일제강점기 시대의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소나무를 보면서 아직도 진정한 사죄는커녕 오히려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등 적반하장의 무례한 행태를 보이는 일본에 분노가 치민다.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나라임을 되새긴다.언뜻 보면 소나무가 웃는 것처럼 보여서 더욱 마음을 저리게 한다. 나무에게 해를 끼친 인간을 미워하지도 멀리하지도 않고 저렇게 혹독한 시련을 겪고도 굳건하게 살아서 인간에게 한없이 베풀기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어느덧 벚꽃이 만발한 봉곡사 절집 앞에 세워진 만공탑(滿空塔)에 도착하여 예의를 갖춘다. 이 탑은 선지식 만공스님의 승탑(僧塔, 부도)이다. 탑의 상부는 지구 모형의 둥근 돌에 만공스님의 친필인 ‘世界一花(세계일화)’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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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의 참 뜻을 펴려면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참새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심지어 저 미웠던 원수들마저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요, 다른 교를 믿는 사람들도 부처로 봐야 할 것이니, 그리하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니라”고 하신 만공스님의 사상을 배운다.봉수산의 품안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봉곡사 절집에 이른다. 이 사찰은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처음 지은 것으로, 1894년 7월에 만공선사(滿空禪師)가 문득 법계성(法界性)을 크게 깨달아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시어 유명한 불교 성지로 전해지고 있다. 만공선사의 오도송을 읽어본다.‘空山理氣古今外(공산리기고금외) 白雲淸風自去來(백운청풍자거래) / 何事達磨越西天(하사달마월서천) 鷄鳴丑時寅日出(계명축시인일출). 우주만물의 진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흰 구름 맑은 바람은 스스로 오고간다. / 달마는 무엇 때문에 서천을 넘어 우리에게 왔는가, 닭이 새벽에 울고 아침에 해가 떠오른다.’대웅전(大雄殿)의 좌측에 고방(庫房), 우측에 무설전(無說殿)이 있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약수터가 있고, 그 위로 삼성각(三聖閣)이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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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곡사에서 5m 정도 내려오면 우측으로 봉수산 정상 2.3㎞의 이정표를 만난다. 이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가슴으로는 오전 햇살을 안고 등으로는 그늘을 만들며, 완만한 경사의 등산로를 오르는데, 좌우로 현호색꽃이 넓게 퍼져 만발하고 있어 일부러 가꾼 듯하다.연초록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기 시작한 초목들로 가득한 산길을 오른다. 맑은 햇살이 만물에 에너지를 주어 잠을 깨우면, 만물은 싱그러운 생동감으로 충만하니 산새들의 노랫소리는 그런 만물과 함께 향연을 벌린다.간간이 마주하는 여러 모양의 바위를 지나 봉곡사 기점 0.4㎞ 지점에서 세거리 이정표를 만난다. 좌측으로 봉수산 정상 1.9㎞, 우측으로 오형제고개 1.7㎞이란다. 봉수산 산행 코스에는 이정표가 곳곳에 잘 세워져 있어 길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돌길을 걷는데 느닷없이 바람이 일면서 벚나무의 꽃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산행을 환영하는 꽃비를 내리는 듯하다. 이내 계단을 오르면서 약간 가파른 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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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높아지면서 작은 초목은 초록빛 새순을 돋우고 있지만, 커다란 나무는 아직 때를 기다리며 잔뜩 물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 했던가.산비탈을 올라 천년의 숲길 갈림길인 능선에 이른다. 봉곡사 기점 0.8㎞ 지점으로, 봉수산과 오형제고개로 갈라진다. 좌측으로 베틀바위 0.6㎞와 봉수산 정상 1.5㎞ 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흙길을 걷다보면 능선의 넓은 공간에 널려 있는 바위무더기를 만난다. 이 많은 바위들 중에서 유난히 베틀을 닮은 바위가 있어 ‘베틀바위’라 하며, 봉수산 산행에서 빠질 수 없는 볼거리다. 바위 밑에는 방 한 칸 정도의 공간이 있었는데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아이 하나가 들어갈 공간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베틀바위 옆에는 금방이라도 굴러 내려갈 것 같은 둥근 바위가 있다. 만공선사의 세계일화가 떠오른다.봉곡사 기점 1.0㎞ 지점에 봉수봉갈림길을 지나는데, 이곳에서 봉수산 정상까지는 1.2㎞이고, 봉수사까지는 1.0㎞이다. 하산할 때는 이곳에서 봉수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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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걷는다. 나뭇잎이 무성한 한여름에는 울창한 숲을 이뤄 조망은 없지만 덥지 않게 산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차츰 진달래꽃들이 드문드문 보이다가 봉수산 정상을 0.8㎞를 남겨둔 전망대쉼터 일대가 진달래꽃 군락을 이룬다.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감상의 기쁨을 한층 더 돋운다.참나무 숲이 울창한 흙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능선 좌우로 흰색의 유화 물감을 칠한 듯 벚꽃이 보인다. 이자연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연의 주인은 오직 자연일 뿐이다. 그 누구도 이 아름답고 위대한 자연을 제멋대로 훼손할 수는 없다.처음으로 통나무 계단 구간을 오르고 완만한 경사를 오르다가 평평한 바위 무리가 있어 잠시 쉬어간다. 이곳에서 때늦은 점심을 하고 다시 흙길을 오르니 긴 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봉수산의 등산로에는 곳곳에 이런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개구리도 멀리 뛰기 위해 움츠리듯이 다른 산들처럼 산꼭대기를 오르기 위해서 구릉을 오른 후 잠시 고갯마루로 내려섰다 다시 오른다. 두 번째 각목 계단 구간은 제법 가파르다. 앙상한 나뭇가지 덕택에 윤곽적으로나마 풍광을 조망할 수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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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실 세거리를 지나면 능선을 따라 긴 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곧이어 해발 536m의 봉수산 고스락에 도착한다. 정상은 고스락 돌이 덩그러니 놓여 있고 사방은 큰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고 조망은 거의 없다.고스락에서 잠시 차 한 잔의 여유 시간을 보내고 하산한다. 두 개의 계단 구간을 하행하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진달래와 눈으로 교감한다. 봉수산 고스락에서 1.2㎞를 하행하면 봉수봉갈림길에 도착한다.이곳에서 봉수사까지 1.0㎞을 하행한다. 하행 초입은 경사가 가파르고 낙엽이 수북하게 깔려 있으며, 바닥은 바윗돌과 잔돌이 있어 매우 위험하다. 다행히 밧줄이 설치되어 있어 무사히 능선을 내려선다.이제 완만한 능선을 내려가는데 등산로 좌우로 소나무 숲이 울창하고, 마치 진시황릉 병마용갱처럼 소나무 밑동으로는 진달래가 호위하듯이 널리 퍼져서 봄꽃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러한 멋스러운 풍광은 임도에 도착할 때까지 0.6㎞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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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의 일부로 머문다. 이제 봉수사 입구 임도의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은 봉수산 고스락에서 1.8㎞ 지점이고, 좌측 봉곡사 임도까지는 1.7㎞, 우측 각흘고개(임도)까지는 6.6㎞ 거리다.봉수사로 가는 길 안내 표시가 없어 직감적으로 이정표 뒤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이곳 역시 소나무와 진달래꽃이 어우러진 숲길을 이루고 있다. 봉수사의 건물이 보이는 우측 방향으로 0.4㎞를 내려가서 좌측으로 푸른 대나무 숲을 지나면 봉수사에 도착한다.봉수사의 대웅전(大雄殿) 뒤쪽으로 삼성각(三聖閣), 앞의 양쪽으로 요사(寮舍)가 위치하고 있으며 창건한지 30여년 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왼쪽 뒤편에는 입석에 “삼보(三寶)의 위신력이 충만한 이 도량, 오시는 이는 누구든 모든 죄업이 소멸되고 고요와 상서로움의 세계와 하나가 되어 집착,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대웅전 우측 뒤편의 삼성각을 오르는 계단 앞에는 “放下(방하)”라고 새겨져 있는 입석이 있다. 마음속에 있는 번뇌와 갈등, 집착, 원망 등을 모두 비우라는 말이다. 실체가 없는 마음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마음도 내려놓아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그 생각조차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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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내려놓는다고 해도 어찌 그리도 찌꺼기가 남아 잠재의식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나라고 할 것이 없는 나에게 집착하여 미련과 원망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런 산행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대웅전을 촬영하고 있을 때 두 스님께서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을 부처님께 공양하시는 모습을 보고 합장인사를 드린다. 잠시 머물러 차담을 나누고 싶었지만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 홀연히 길을 떠난다.하행했던 길을 다시 오르는데, 이제 종아리 근육이 당겨지고 호흡이 거칠어진다. 어떤 일에 부딪히든 죽으라고 하는 법은 없다. 피곤에 지친 몸에 무리가 되지 말라고, 이제부터 평탄한 임도를 통해 1.7㎞ 거리를 걷는데 봉곡사까지 줄곧 내리막길이다.잘 닦아진 구불구불한 임도는 봄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붉은 빛의 저녁노을을 받아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간간이 산모퉁이마다 바위 쉼터와 정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봉곡사 임도를 봉수산 산행에서 하행 코스로 강력하게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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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지나면서 임도가 끝나고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조금 내려오면 봉수산 정상을 오르는 세거리 이정표를 지난다. 약 0.3㎞를 더 내려가면 봉곡사와 주차장, 송남휴게소로 나눠지는 네거리에 도착한다.저녁 무렵인데도 천년의 숲길과 봉곡사를 찾는 가족단위 나들이를 즐기는 분들이 괘 많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데 좀처럼 발걸음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더뎌진다.숲길에서 자석에 붙은 쇠붙이처럼 한동안 발바닥을 고정시키고 무심하게 숲을 우러러본다. 진리가 시공간을 초월하듯이 자연 역시 그러하다. 그래서 자연을 훼손하는 것은 곧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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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을 0.4㎞를 걸어 벚꽃이 만발한 주차장에 도착한다. 맨 위 주차장에는 흙먼지털이기 1대가 설치되어 있다. 봉수산은 흙길이라 흙먼지가 많은 묻는 편이다.이번 산행코스는 ‘봉곡사 주차장~천년의 숲길~봉곡사~배틀바위~봉수산 고스락~봉수사~봉곡사 임도~천년의 숲길~봉곡사 주차장’이었으며 산행거리는 총 9.0㎞이다. 소요시간은 자연과 즐기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데, 총 4시간 30분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