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바위벼랑의 향적산 주봉 고스락, 국사봉 [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충남 계룡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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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산은 충남 계룡시 엄사면과 논산시 상월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계룡산국립공원 끝자락에 위치한다. 향적산(香積山)의 이름에 대한 유래는 딱히 알려진 것은 없다. 이 산이 영산(靈山)으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기도·수행자들이 찾아와 피운 향의 향기가 가득하게 쌓이게 되어 붙어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이 산의 주봉 고스락은 국사봉(해발 575m)이다. 서쪽으로 깎아지른 바위벼랑을 지닌 이 봉우리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을 도읍으로 삼으려 했을 때, 이곳에 올라 계룡산 일대의 지형지세(地形地勢)를 살핀 바 있어 국사봉(國事峰)이라 하고, 이곳이 나라의 큰 스승이 나올 곳이라 하여 국사봉(國師峰)으로도 쓰고 있다고 한다.향적산 국사봉의 신비로움과 봄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탁 트인 경관을 조망하기 위해, 산행코스를 ‘무상사 주차장~향적산 치유의 숲~물탕집~맨재~세거리~대피소~국사봉 고스락~농바위~국사봉 고스락~누룩바위~계룡산 전망대~세거리~맨재~무상사주차장’의 약 7.5㎞의 원점회귀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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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무상사(鷄龍山 無上寺)의 주차장에 도착하여 먼저 언덕배기에 있는 무상사의 대웅전과 산신각을 둘러본다. 이 사찰은 숭산행원스님이 창건한 국제선원이다. 이 절에서는 인종, 종교, 국적, 성별, 나이를 초월해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방향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문이 열려 있는 선(禪) 도량이다.무상사 대웅전 앞에는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꽃이 하얀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그 자태를 바라보니 마음이 청결해지는 느낌이다. 숭산국제선원 무상사의 표지석 우측에 있는 향적산 치유의 숲 입구로 발길을 돌린다.향적산 치유의 숲은 계룡시에서 향적산의 우수한 산림환경과 아름다운 숲 경관을 활용해 시민의 면역력 증진 및 심신 건강을 도모하기 위한 마련된 치유공간이다.매끈하게 포장된 길을 따라 따스한 봄날의 오후 햇살을 받으며 걷는데, 방호울타리에 붙은 ‘좋은 일만 생길꺼야’라는 글귀가 산행 분위기를 한층 더 행복하고 들뜨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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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연못을 지나면서 길은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곧바로 길을 오르지 않고 지그재그로 길을 걷는 방문객의 모습도 보인다. 입구에서 0.6㎞ 지점에 ‘함께라서 고마워’라는 글귀, 오색찬란한 바람개비, 그 뒤로 풍차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을 만난다.이정표의 맨재 방향으로 비포장 길을 오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이 길은 차량 통행이 가능할 만큼 널찍한 폭이다. 길가의 나뭇가지 끝은 회색에서 얕은 연두색으로 바뀌는 모습이다.풍차에서 출발해 국사암을 지나 0.4㎞를 오르면 하얀 벽에 ‘물탕’이라는 간판이 붙은 건물과 마주한다. 등산로는 건물의 우측에 군락을 이룬 대나무숲을 따라 이어진다. 곧이어 소나무숲 군락지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맨재 쉼터에 이른다. 이곳에서 계룡산 천황봉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휴식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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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재 쉼터에서 왼쪽으로 국사봉까지는 1.56㎞를 더 올라야 한다. 통나무 계단을 오르면서 왼쪽 나뭇가지 사이로 송신중계탑과 함께 국사봉이 조망한다.맨재에서 0.1㎞를 오르면 향적산정상(장군암)과 엄사리(청송약수터) 방향을 나타내는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 지점이 세거리다. 이정표에는 이곳에서 능선을 따라 계룡산 전망대로 오르는 방향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산비탈에 조성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길은 흙산이고 경사가 완만하여 걷는 데 큰 불편이 없다. 비탈길 산행이 자칫 밋밋하여 재미가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에 자연은 종종 여러 형상의 커다란 바위를 선사하고, 돌길로 산길의 장면을 바뀌어 주기도 한다.출발 기점 2.6㎞ 지점에 이르면, 향적산 능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산길이 시작된다. 얼었던 땅이 녹아 질퍽한 흙길과 계단 구간을 숨을 헐떡이며 힘차게 올라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곳의 이정표가 국사봉 정상까지는 0.32㎞라고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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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장에서 0.1㎞의 흙길을 오르면 대피소를 만난다. 여기서부터 능선을 따라 향적산의 고스락인 국사봉을 향해 지그재그로 계단을 오른다. 드디어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는 전망대에 도착하여 계룡산을 비롯해 계룡·대전시 일대를 바라본다.전망대에서 해발 575m의 국사봉 고스락에 오르자 향적산의 신비를 대표하는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와 오행비(五行碑)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볼썽사납게도 비석에는 산객들이 마구잡이로 글씨로 새겨놓았다. 우리의 유적을 아껴야 할 텐데 말이다.천지창운비는 한 변이 약 3m쯤 되는 정사각형의 얕은 담 안에 머리에 판석을 얹은 높이 2m의 사각 석비다. 천지창운비의 동쪽 면에는 천계황지(天鷄黃池), 서쪽 면에는 불(佛), 남쪽 면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 북쪽 면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는 글자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그 옆에 오행비(五行碑)도 세워져 있는데, 높이 약 1.6m의 사각 돌기둥으로 동면에는 오(五), 서면에 화(火), 남면에 취(聚), 북면에 일(一)자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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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운비의 북두칠성(北斗七星)은 불교의 칠원성원(七元星君)이나 도교의 칠성신앙에서 비롯되었고, 남두육성(南斗六星) 역시 남쪽 하늘에 보이는 별자리로 예로부터 장수(長壽)를 다스리는 별, 그리고 불(佛)은 아미타불로 상징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의미함을 알 수 있다.하지만 나머지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검색해보니, ‘문광스님의 한국학에세이 시즌2 <9>계룡산 국사봉 비석의 비밀(下)’(불교신문 3716호, 2022년 5월 17일자)에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이 세계의 중심이 될 정기가 서린 곳임을 알게 됐다.천계황지(天鷄黃池)는 계룡산이 천제(天帝)이자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로서, 계룡산을 품은 대한민국이 세계의 정신수도인 신도(神都)가 된다는 것이다. 사방의 마음 심(心)자는 미래에 그 어떤 세계가 오더라도 인간의 이 ‘마음’을 떠난 진리와 비결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오행비의 동쪽 면에 있는 오(五)는 중앙을 상징하는 황극(皇極)의 수로서 천계황지와 연계되고, 서쪽 면에 있는 화(火)는 욕망의 여름에서 성숙의 가을로 지구의 도수(度數)가 변하게 된다는 미래학적 표현이며, 북쪽의 일(一)과 남쪽의 취(聚)는 북쪽의 큰물이 극동인 일본에까지 녹아 내려온 시점에 지구는 거대한 기상이변과 기후변화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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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고스락에서는 계룡산 천황봉을 비롯해 여러 봉우리가 조망되고, 계룡·대전·논산 일대의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 한정된 지면으로 풍광을 다 담을 수 없어 아쉽다.이제 국사봉 고스락에서 내려와 능선을 따라 도곡리 방향으로 하산한다. 능선은 완만한 흙길이어서 걷기 편하고 가끔 하얀 바위들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고스락에서 0.7㎞를 하산하면 향적산의 유일한 암릉인 농바위(해발 534)에 이른다.이곳에서 산명고개로 이어지는 능선과 뒤를 돌아 국사봉 고스락에서 늘어진 능선을 조망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좌우의 풍광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다. 조금 더 진행하고 싶지만, 오후 산행이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국사봉 고스락으로 되돌아간다.국사봉 고스락에서 하산은 올라온 길이 아닌 고스락 돌의 오른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하산한다. 등산로를 포위하고 있는 철쭉의 나뭇가지 끝에는 꽃망울을 키우고 있다. 돌길을 따라 하산하면서 옆으로 살짝 비켜 위치한 암봉(해발 540m)으로 가서 국사봉의 서쪽 바위벼랑의 멋진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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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봉에서 다시 등산로로 복귀한 후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길을 내려간다. 질퍽하고 잔돌이 뒤섞여 있는 매우 미끄러운 구간으로 조심해야 한다. 하산하고 나면 상월면 대명리로 이어지는 등산로 분기점이 있는 헬기장이다.헬기장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만 가면 전망 바위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건물 옥상에 연꽃을 피우고 있는 금강대학교와 계룡산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조망한다. 이 능선은 소나무와 참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초봄 산행의 눈을 즐겁게 한다. 우리의 삶도 이렇게 조화로우면 더없이 행복할 텐데 말이다.헬기장에서 0.3㎞를 이동하면 누룩바위를 만난다. 앞에서 보면 사각 바위를 쌓은 3층 석탑이고, 뒤에서 보면 4층 석탑이다. 비록 풍화가 많이 진행됐지만, 자연은 사물의 한 측면만 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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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바위에서 소나무숲 길을 0.6㎞를 진행하면 계룡산 전망대에 도착한다. 계룡산 천황봉이 지척이지만, 군사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어 더 갈 수 없다. 이곳에서 계룡시와 논산시 일대를 조망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계룡산 산등성을 넋을 잃을 만큼 진하게 눈과 가슴에 담는다.계룡산 전망대에서 가파른 산길을 내려간다. 흙과 잔돌이 뒤섞인 구간이라 조심해서 하산한다. 계룡산 전망대에서 0.3㎞ 정도를 내려오면 세거리에 이른다.세거리에서 맨재 쉼터를 거처 물탕에 이르니, 저녁을 알리듯 굴뚝에서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물탕은 향적산 그늘에 가려 어둑어둑해진다. 그렇지만 돌탑 옆에서 고즈넉하게 피어난 노란 산수유 꽃은 밝은 빛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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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적산 치유숲길을 걸어서 풍차에 도착한다. 이곳부터는 포장길을 따라 내리막길을 부담 없이 걷는다. 한바탕 흘린 땀으로 등이 서늘해질 무렵 국제선원 무상사 주차장에 도착한다.향적산 국사봉의 산행은 역사적·지리적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이 산이 지닌 신비를 조금이나마 알고 찾았으면 아마도 산행이 더욱 보람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