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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 함께 늙고 죽어서 같은 무덤에 묻힌다는 ‘해로동혈(偕老同穴)’.
남녀가 만나 ‘백년해로(百年偕老)’ 한 뒤 부부가 한 날에 생을 마감한다면 더 이상 좋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실제 충북 청주에서 60년 동안 ‘해로’한 뒤 같은 날 ‘동혈’한 부부가 있다.
청주에서 살고 있는 박 모씨(58)는 하룻동안 양 부모를 잃는 황망한 경험을 했다.
아직도 박 씨는 부모님이 같은 날 돌아가신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듯 먼 산만 바라보며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사연은 이렇다. 박 씨는 지난 9일 부친상(고 박대식‧84)을 당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충북대 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고 문상객을 받기 시작했다.
박 씨는 심혈관 질환이 있는 모친(80‧고 조순의)에게 첫 날 문상객을 받은 뒤 한가해 진 틈을 타 “어머니, 힘드실 텐데 조금 쉬세요”라는 말을 건넸다. 그러자 부친의 빈소 영정 앞 의자에 앉아 있는 모친은 손녀딸에게 “물을 달라”는 말을 건네자마자 갑자기 신음소리와 함께 혼절하는 것이 아닌가.
박 씨의 가족들은 깜짝 놀라 모친을 부축하고 충북대 병원 응급실로 이송한 뒤 의사들이 달라붙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은 소용이 없었다. 박 씨의 모친은 허망하게도 깨어나지 못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것이다.
박 씨는 장례식 내내 눈시울을 적셨다. 한꺼번에 부모를 잃었다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한마디 말(유언)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신 모친이 너무 불쌍하고 황망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10일 장례식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장례식 날 부모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 두대를 마련했다. 영정도 두 개를 준비했으며 두 개의 관을 나란히 하관한 뒤 매장했다.
부친은 24세, 모친은 20세에 결혼한 박 씨의 부모님은 올해로 60년을 해로했으며 지난 7일 새벽 2시께 부친이 돌아가신 뒤 모친은 같은 날 11시간 차이를 둔 오후 11시께 운명했다.
한날 부모님을 모두 잃은 박 씨는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지난 며칠간의 일은 마치 꿈을 꾼 듯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찾아뵙고 싶으면 만날 수 있었던 부모님이 이젠 영영 돌아 올 수 없는 곳으로 가셨기 때문이다.
박 씨는 “마을 일 등을 잘해 공덕비까지 세워 줄 정도로 아버지는 바깥일에 몰두하면서 가정에는 소홀히 하셨지만, 60년을 사시는 동안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자식을 돌보며 평생을 사셨다. 두 분은 금슬도 좋으셨다”면서 “60이 다되도록 부부 싸움하는 것을 보지 못했을 정도다. 정말 평생을 두 분이 잘 사시다가 한날 같이 운명하신 것은 섭섭하고 아쉽기는 하지만, 좋은 일로 위안을 삼고 싶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을 살아계실 때 더 잘 모시지 못한 자신을 한탄했다.
박 씨는 “병이 들고 나서야 건강을 잃은 것을 후회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탄식한다는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올 수가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