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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홍 시사칼럼] 사드를 통해 본 우리의 민낯 어제와 오늘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16-07-15 09:12 | 수정 2016-07-16 18:06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 박규홍 서원대학교 명예교수.ⓒ서원대학교

고고도 미사일 ‘사드(THAAD)’의 국내 배치에 대한 여론이 분분했지만 결국 정부는 경북 성주군 성산리의 기존 미사일기지에 배치하기로 발표하였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정이 떠올려진다. 사드배치 반대를 주장하는 진보시민단체들이 지역 주민들을 선동하고 소란을 피우면서 성주군 주변이 시끄러울까 우려돼서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민주사회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민주사회도 튼튼한 안보 위에서나 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생각이다.

사드배치 지역이 확정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의 민낯은 420년 전 역사가 데자뷔 되어 그 때와 달라진 게 없는 우리의 DNA를 보여주어 자괴감이 든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590년 일본은 춘추전국시대를 거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천하를 평정하고 조선에 사신을 보내 ‘명(明)을 칠 터이니 조선은 그 길을 열라’고 청한다.
당시만 해도 일본을 얕잡아보고 왜(倭)라 칭하던 조선이 도요토미의 청을 들어줄 리가 없었다. 논란 끝에 조선 조정은 왜국에 통신사를 보내 정황을 살펴보고 그 대책을 마련하기로 한다.

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에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정사(正使) 황윤길과 부사(副使) 김성일이 서로 다른 상황을 보고했다는 기록에서 사드문제로 갈라진 현재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서인(西人) 측인 정사 황윤길은 “왜국의 정세를 살펴본 바로 반드시 왜가 침범하는 병화가 있을 것이므로 이에 대한 대비책을 시급히 수립하여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급한 보고를 올린다.
또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하여 “도요토미가 왜소하지만 눈에서 광채가 나고 담력과 지략이 뛰어난 인물로 보이며 행색과 행동을 종잡을 수가 없다. 눈에는 불꽃이 튀어 그 용모만으로도 침략의 야욕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미리 대비해야할 인물이다”라는 비교적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사실을 정확히 복명한다.

이에 대하여 동인(東人) 측인 부사 김성일은 정반대의 보고를 올린다. 김성일은 조정과 선조 임금의 면전에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하게 자신의 심중과 다르게 정치적인 견해에 따른 거짓 보고를 한다.

김성일은 “왜국이 절대로 침입할 리가 없고 전쟁의 정세를 보지 못했다.”라 하면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도 “눈이 쥐눈 같고 용모와 생각이 왜국소인이라서 전쟁을 일으킬 인물이 절대 되지 못한다. 또 왜국 전역에서 군비 등이 형편없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큰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소인배”라고 보고한다.
그러나 같은 동인인 서장관 허성은 정사 황윤길과 뜻을 같이 하여 전쟁에 참화가 있을 것이라고 복명을 한다.

 당시 권력 실세였던 동인들의 당파적 오판과 정쟁적 반대로 전쟁가능성을 제기한 정사 황윤길의 보고서는 묵살되고 그에게 정치적인 책임까지 덮어 씌어 유배를 보낸다. 1년 뒤에 도요토미는 조선을 침략하여 7년간의 참혹하고 긴 전쟁이 시작된다.

고고도 미사일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인사들은 ‘중국이 반대하므로 사드를 배치해서는 안 되고, 배치를 강행할 경우에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경제적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사드 성능의 한계를 거론하면서 ‘국민적 공감대형성이 필요하므로 국민투표를 해야 하고, 더욱이 유해 전자파 때문에 국민 건강에 해롭다’고 한다.

‘정권교체가 되면 새 정권이 사드를 철회하겠다고 중국에 전하여 우리 국익을 지켜야 한다’는 어느 야당 인사의 주장은 400년 전의 조선시대 사람의 발언처럼 들린다. 중국의 비위를 맞추는 게 국익이라는 발상으로 정치를 해도 용인되는 21세기 우리 사회가 과연 정상인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사드배치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정치 외교적 부담은 당연히 생길 것이다. 그러나 그 손실을 국가안보와 비교해서는 안 된다. 경제적 손실을 빌미로 국가안보를 뒤로 물리고 정파적 반대로 국론을 분열시키는 행동은 어느 유력 야당 대선주자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역사의 죄인’이 되는 처사이다. 국가안보에는 정파를 떠나 한 목소리를 내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다시 임진왜란 시대로 돌아가 보자.
왜란이 일어나서 왜군이 조선 땅을 유린할 때, 왜군이 무리를 지어 각 고을 성을 침탈하는데도 양민들은 그것을 남의 일보듯 농사만 짓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마을을 통해  왜군이 지나가도 닭이 개 쳐다보듯 하다가 어느 왜군 대열이 모내기 해놓은 논을 짓밟고 가니까 그제 서야 그 논의 주인이 곡괭이 들고 왜군에 달려들다가 왜군의 칼에 죽임을 당했다는 일화가 있다.
    
얼핏 들으면 별 것 아닌 얘기같이 보일지 모르나 현재의 나라 안의 현상과 비교하여 전해오는 얘기가 시사하는 바를 우리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라 일보다는, 또 남의 일 보다는 나의 일을 더 중하게 여기는 우리 의 DNA를 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내 집 담장 안쪽만 깨끗하면 담장 밖에야 무엇이 썩어 문드러져도 상관없다는 어리석고 단세포적인 이기심이 우리들 DNA에 여전히 잠재해 있다는 상징적인 얘기이다.  

사드배치 후보지역으로 거론되던 몇몇 지역에서는 미리부터 머리띠 두르고 배치결사반대 집회를 했다. 어느 지역은 국회의원과 광역단체장이 앞장서서 반대성명을 냈다. 어느 지역 군수는 삭발하고 군민을 동원하여 연일 반대 궐기대회를 했다가 성주군으로 확정되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가 머쓱해져 버렸다. 그들의 눈에는 나라의 안보 보다 자신의 지역 안전과 표만 보였을 게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각종 국가적 혜택에서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국가 안보가 무너지면 자기지역도 무사하지 못함을 몰라서 그랬던 건가? 지레짐작으로 주민을 선동하고 국론분열에 앞장섰다가 체면만 구긴 정치인들의 민낯이 왜군이 쳐들어와도 가만있다가 제 논두렁 망가진다고 대들던 420년 전 조선시대 농부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사드사태로 드러난 우리의 민낯을 거울에 비춰보면서 안보와 국익의 참 의미를 되새겨 보자.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스스로의 힘을 갖출 때만 나라가 평온했었다.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    

<서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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