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팔이의 애환
  • ▲ ⓒ최종웅 작가
    ▲ ⓒ최종웅 작가


    무면허 운전자들이 판을 치면 교통질서가 마비되듯이 의료계도 돌팔이가 판을 치면 무법천지가 되고 말 것이다. 일정한 과정을 거친 자격자만 진료할 수 있게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최백수는 허탈한 기분을 느낀다. 멍하니 TV만 바라본다. 헛살았다는 기분을 전환해 보려는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는 점점 속도를 낸다. 막상 침을 배워서 제법 용하다는 소릴 듣게 되자 예상치 못했던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고맙다고 인사받고 대우받는 세상이 아니었다. 돌팔이라고 놀림 받는 세상이었다. 호칭부터 기분 나빴다. 돌팔이란 뜻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비웃는 투로 들렸다. 최백수는 이참에 돌팔이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진다.

    다시 네이버의 신세를 진다. 검색 창에 뜬 답변도 비슷하다. 제대로 된 자격이나 실력이 없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있다. 마치 자신을 이르는 말처럼 들린다.

    두 번째 의미도 비슷하다. 떠돌아다니며 점을 치거나 기술 또는 물건 따위를 파는 사람이라고 되어있다. 일정한 사무실이 없으니 환자를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떠돌아다니면서 의술을 파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최백수는 의술을 판다는 말에 깜짝 놀란다. 떠돌아다니면서 침술을 봉사한 적은 있지만 돈을 받고 판적은 전혀 없다. 아니다, 대가를 받는 적은 없지만 은근히 자랑하려는 욕심은 조금이나마 있었다.

    아픈 사람의 병을 고쳐주려는 심리의 저변에는 자신의 의술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대우를 받으려는 마음이 숨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것까지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니 떠돌아다니면서 의술을 파는 사람이라는 돌팔이의 정의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최백수는 변명할 구실을 찾는다. 전적으로 동감한다고 하면 지금까지 노력한 보람이 없다.  너무 서글퍼진다. 헛산 것 같은 기분이 너무 강하다.
    “의사든 한의사든 병만 잘 고치면 되는 게 아닌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고, 꿩만 잘 잡으면 매가 아닌가?”
    이런 기분으로 침술을 배웠다. 그런 기분으로 돌팔이의 설움을 견뎌왔다. 그런데 요즘 그런 배짱이 무너지고 있다.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도 순전히 배짱 덕분이었다.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두질 못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심리였다. 심지어 목욕탕에서 올딱 벗은 사람을 보면서도 관찰을 했다.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어디가 아플 것이란 진단을 할 수 있다. 어깨에 뜸을 뜬 자리가 선명하면 소장이나 삼초 기맥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무릎에 부황을 떴으면 위가 나쁜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볼 때마다 침 한 방이면 금방 고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간단히 고칠 수 있는 걸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앞으론 또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할까? 갑자기 그 사람이 불쌍해 보인다. 그런데 말을 붙일 용기가 없다. 침 한 방이면 간단히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말 한마디 건넬 용기가 없다니….

    “이건 점잖은 게 아니라 비겁한 것이다.”
     
    최백수는 비겁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단 생각을 하면서 용기를 낸다. 결국 말을 걸고 만다.
    “어깨가 많이 아프시죠?”
    “그걸 어떻게 아세요?”
    “어깨가 아프면 아랫배가 아프고, 팔 바깥쪽도 아픈데 어떠신가요?”
    놀라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백수가 이 틈을 놓칠 리가 없다.
    “제가 침을 좀 놓을지 아는데 한 번 맞아보실래요?”

    금세 얼굴색이 바뀐다. 당신 같은 돌팔이에게 어떻게 몸을 맡기겠느냐는 표정으로 변한다. 최백수의 눈길이 다시 창밖으로 향한다. 깜깜한 어둠이다. 저 칠흑같이 어두운 길을 힘든 줄도 모르고 헤쳐 왔다.

    그땐 정말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이 말짱해서는 그런 짓을 못한다. 그게 돌팔이로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최백수의 귓전에 갑자기 구슬픈 유행가 가사가 들려온다.
     
    “다시 가라 하면 나는 못가네.
    마디마디 서러워서 나는 못 가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