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에서 재생’으로… 유럽서 배워야 할 ‘도시의 미래’‘폐허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 ▲ 프랑스 파리의 세계 최대 창업 캠퍼스 ‘스테이션 F(Station F)’. 이곳은 1927년부터 사용된 구 철도역사를 리모델링해 2017년 개장한 혁신 공간으로, 전 세계 1000여 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창업과 R&D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스테이션 F의 내부 모습.ⓒ김정원 기자
    ▲ 프랑스 파리의 세계 최대 창업 캠퍼스 ‘스테이션 F(Station F)’. 이곳은 1927년부터 사용된 구 철도역사를 리모델링해 2017년 개장한 혁신 공간으로, 전 세계 1000여 개 스타트업이 입주해 창업과 R&D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스테이션 F의 내부 모습.ⓒ김정원 기자
    “이제는 개발의 시대가 아니라 재생의 시대입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가 지난 7월 유럽 출장에서 강조한 이 말은 단순한 방문 소감이 아닌, 지방행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리한 선언문처럼 들린다. 

    김 지사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를 잇는 일정 속에서 그는 폐산업시설과 유휴 공간이 창의적 도시공간으로 되살아나는 현장을 발로 뛰며 확인했고, 이를 충남의 정책과 연계할 구체적 방안을 구상했다.

    이번 출장은 단순한 외자유치 목적을 넘어, 도시재생과 창업 생태계, 문화기반 지역 활성화 모델을 통합적으로 벤치마킹한 정책 탐방이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메시지로 가득했다.

    ◇‘스테이션 F’, 철도역에서 창업 성지로

    유럽 출장의 시작점은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 F’. 1927년 지어진 구 철도역 창고를 리모델링해 2017년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캠퍼스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여기에는 창업 초기 기업 약 1000여 곳이 입주해 있고,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한다. 단순한 창업 공간을 넘어, 창업자들이 서로 협업하고 실험할 수 있는 생태계가 잘 설계되어 있다.

    김 지사는 “충남도 천안·아산 등 수도권 인접 지역을 중심으로 창업 R&D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라며 “단순 사무공간이 아닌, 자연과 치유, 창의가 어우러진 ‘힐링형 창업타운’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하드웨어 중심의 창업 지원을 넘어, 삶과 연결된 공간을 지향하는 ‘소프트 파워 중심 정책’으로의 전환을 예고한 셈이다.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제철소에서 시민문화공간으로

    두 번째 행선지는 독일 루르 산업지대의 ‘뒤스부르크 환경공원’. 이곳은 1985년 문을 닫은 제철소가 1994년 시민 친화형 복합문화공원으로 변신한 대표 사례다.

    공장 당시의 용광로, 가스 저장소 등 산업 구조물은 그대로 보존한 채, 그 위에 자연과 문화시설이 덧입혀졌다. 인공 암벽, 공연장, 산책로, 자전거길, 야외 영화관, 그리고 공원 전체에 설치된 야간 조명 시스템은 유럽 시민과 관광객 모두를 끌어모으는 콘텐츠가 됐다.

    김 지사는 “과거 산업의 상징이었던 공간이 시민의 삶과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로 탈바꿈한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며 “충남의 노후 산업단지와 유휴 부지에도 이 같은 재생 전략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공간은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새롭게 입히는 것”이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 독일 루르 산업지대의 중심지인 뒤스부르크 ‘환경공원(Landschaftspark Duisburg-Nord)’. 환경공원은 1985년 폐쇄된 제철소 부지를 재활용해 1994년 시민 친화형 복합문화공원으로 다시 문을 연 유럽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다. 시민들이 환경공원에서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다.ⓒ김정원 기자
    ▲ 독일 루르 산업지대의 중심지인 뒤스부르크 ‘환경공원(Landschaftspark Duisburg-Nord)’. 환경공원은 1985년 폐쇄된 제철소 부지를 재활용해 1994년 시민 친화형 복합문화공원으로 다시 문을 연 유럽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다. 시민들이 환경공원에서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다.ⓒ김정원 기자
    ◇‘NDSM 워프’, 조선소에서 창의 공동체로

    여정의 마지막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의 ‘NDSM 워프’. 한때 유럽 최대 조선소였던 이곳은 조선업 쇠퇴로 1987년 폐쇄된 후 오랜 시간 방치됐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시가 1999년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지정하며, 민간 예술단체와 청년 창업자들이 참여해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현재 NDSM은 레지던시 스튜디오, 전시장, 스타트업 사무공간, 창업 카페, 청년 주택이 공존하는 복합문화지구다. 벽화와 거리 예술로 가득한 부두는 관광 명소가 되었고, 예술과 창업, 공동체가 융합된 생태계는 전 세계 도시재생의 교본이 되고 있다.

    김 지사는 “충남에도 폐교, 폐산단, 도심 공터처럼 잠자는 공간이 많다”며 “이들을 청년 창업과 예술 활동 중심 공간으로 바꾸면 지역 원도심에도 생기가 돌 수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지방 사립대 구조조정 시 발생하는 재산 국고 귀속 문제를 언급하며 “현 제도를 개선해 공익적 목적의 창업·문화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정부와 국회의 역할도 촉구했다.

    ◇도시재생, ‘정책을 넘어 철학의 전환’이다

    김태흠 지사의 유럽 출장은 단순한 공간 재활용 사례 탐방이 아니었다. 공간의 가능성을 재해석하고, 그 안에 사람과 문화, 창업이 공존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 탐색이었다.

    특히 이번 여정을 통해 그는 △충남형 창업 생태계 구축 △문화기반 도시재생 추진 △폐교·유휴시설의 창의 공간화 △지방 청년 주거·활동지 확대 등 정책 로드맵의 가닥을 잡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실행이다. 행정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민간이 협력하며, 법과 제도가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공간을 보는 눈을 바꾸는 일이다.

    철거의 대상이었던 곳이, 공동체의 허브가 될 수 있다. 한때 산업의 상징이던 곳이, 창의의 요람이 될 수 있다.

    유럽 도시들이 증명했다. 한국의 지방도 할 수 있다.
  •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의 에이강 연안에 위치한 ‘NDSM 워프(NDSM Werf)’. 민간 예술단체, 청년 창업자, 문화기획자 등이 참여해 이 거대한 산업유산은 예술과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창의 지대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NDSM은 전시장과 작업실, 레지던시 공간, 스타트업 사무실, 레스토랑, 청년 주거지까지 다양한 기능이 공존하는 복합문화생활지구로 이용되고 있다.ⓒ김정원 기자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북부의 에이강 연안에 위치한 ‘NDSM 워프(NDSM Werf)’. 민간 예술단체, 청년 창업자, 문화기획자 등이 참여해 이 거대한 산업유산은 예술과 스타트업, 커뮤니티가 공존하는 창의 지대로 탈바꿈한 모습이다. NDSM은 전시장과 작업실, 레지던시 공간, 스타트업 사무실, 레스토랑, 청년 주거지까지 다양한 기능이 공존하는 복합문화생활지구로 이용되고 있다.ⓒ김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