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스-알더 반응과 수소결합 정밀 설계 6/6/6/6/3 고리 구조 천연물 정교하게 구현中서 보고된 ‘허포트리콘 C’ 합성 선행… 신약 개발·자연물 예측에 ‘새 패러다임’ 제시
  • ▲ 연구를 주도한 KAIST 화학과 한순규 교수(왼쪽)와 제1저자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이유진 학생.ⓒKAIST
    ▲ 연구를 주도한 KAIST 화학과 한순규 교수(왼쪽)와 제1저자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이유진 학생.ⓒKAIST
    퇴행성 뇌질환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희귀 천연물 ‘허포트리콘’을 KAIST가 세계 최초로 합성했다. 콩벌레와 공생하는 곰팡이에서만 극미량 존재하던 이 물질을 연구실에서 구현한 이번 성과는 항신경염증 신약 개발과 복잡 천연물 합성 기술의 미래를 앞당길 중대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KAIST(총장 이광형)는 화학과 한순규 교수 연구팀이 콩벌레의 공생균인 ‘허포트리시아(Herpotrichia) sp. SF09’에서 유래한 항신경염증 천연물 ‘허포트리콘(herpotrichone) A, B, C’를 세계 최초로 합성했다고 31일 밝혔다.

    허포트리콘은 6각형 4개와 3각형 1개로 이루어진 6/6/6/6/3의 다중고리 구조를 가지며, 뇌 염증 반응을 억제하고 철분 매개 세포 사멸(ferroptosis)을 막아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작용기전이 확인돼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로서의 활용 가능성이 크다.

    한 교수팀은 곰팡이에서의 생합성 과정을 예측해 실험실에서 이 복잡한 구조를 화학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핵심은 ‘딜스-알더(Diels–Alder) 반응’으로, 탄소 기반 분자들이 결합해 육각 고리 구조를 만들도록 유도했다. 여기에 ‘수소결합’의 정밀한 설계를 통해 반응 위치와 방향을 통제함으로써 허포트리콘을 원하는 형태로 정확하게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재료인 ‘델리트파이론(delitpyrone) C’와 ‘에폭시퀴놀 단량체(epoxyquinol monomer)’가 특정 구조를 가질 때에만 이상적인 수소결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정밀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전이 상태를 정교하게 조절하여 허포트리콘 C를 성공적으로 합성했다. 같은 원리를 A, B에도 적용해 모두 실험실에서 구현해냈다.

    이 과정에서 자연계에서는 보고되지 않은 신규 분자 구조들이 함께 생성됐으며, 일부는 우수한 약리 활성을 가진 새로운 천연물일 가능성도 있어, 합성을 통해 자연물 존재를 예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미가 더해진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2019년 중국 연구진이 처음 보고한 A, B를 바탕으로 KAIST가 합성 연구를 하던 중 계속적으로 발생한 부산물이 2024년 동일 연구진이 새로 보고한 허포트리콘 C와 일치했다는 점이다. 이는 KAIST 연구팀이 자연계에서 존재하는 천연물을 실험실에서 이미 앞서 합성하고 있었던 사례다.

    한순규 교수는 “이번 성과는 퇴행성 신경질환 관련해 약리 활성을 갖는 자연계 희귀 천연물을 최초로 합성하고, 복잡 천연물의 생체모방 합성 원리를 체계적으로 제시한 연구”라며, “앞으로 천연물 기반 항신경염증 치료제 개발과 해당 천연물군의 생합성 연구에도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연구 성과는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이유진 학생이 제1 저자로, 화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 중 하나인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 JACS)에  이달 16일 자로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