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는 지나갔지만, 구조와 대응 체계는 여전히 제자리에“기후위기 시대, 더는 ‘이례적’이란 말조차 무색하다”
  • ▲ 지난 16~17일 충남지역에 극한호우가 쏟아지면서 고립된 주민들이 119구급대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공주소방서
    ▲ 지난 16~17일 충남지역에 극한호우가 쏟아지면서 고립된 주민들이 119구급대에 의해 구조되고 있다.ⓒ공주소방서
    “이런 물난리는 평생 처음입니다.”
    충남 서산 운산면의 한 주민이 무너진 축대와 흙탕물 자국이 남은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당의 물 자국은 허리춤까지 차 있었고, 집 안 가재도구는 전부 쓸려나갔다. 기상청이 ‘200년에 한 번 내릴’ 수준이라 규정한 폭우는 단지 통계적 표현이 아니라, 삶의 기반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현실이었다.

    16일부터 쏟아진 집중호우로 충남 전역이 물바다가 됐다. 서산 운산면에 502㎜, 예산에는 401.8㎜의 비가 내렸다. 도내 평균 강수량은 312.6㎜에 이르렀고, 공공시설 614건, 주택 침수 887건, 농작물 침수 1만 6714ha 등 피해는 전방위적이었다. 도로와 소하천, 주차장, 지하차도 등 91개소가 통제됐고, 76개소는 여전히 출입이 막혀 있다. 1493세대 2093명의 주민이 긴급히 대피해야 했고, 구조 인력 2047명이 투입된 지금도 복구는 더디기만 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인명 피해다. 서산 석남동 농로에서 차량이 침수되며 2명이 숨졌다. 3차례의 안전문자가 사전 발송됐지만, 구조대가 도착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는 단지 폭우의 위력 때문만이 아니라, ‘현장 대응’과 ‘실질적 보호’ 사이의 간극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자 발송만으로는 생명을 지킬 수 없다. 고립 상황에서 위험을 감지하고 피신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세분화된 행동 매뉴얼과 현장 중심의 대응 체계가 절실하다.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질문이 있다. “우리는 달라졌는가?”
    이맘때면 반복되는 침수와 산사태, 통제된 세월교와 붕괴된 둑, 무너진 주택과 구조대의 분투. 수해는 자연재해일 뿐 아니라, 정책 실패와 제도 부재가 반복되는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하천과 저지대 주거지의 취약성은 수차례 지적됐지만 근본적 개선은 지연되고 있고, 매번 ‘복구’에만 집중된 대응은 ‘예방’의 중요성을 가리기 일쑤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재난 그 이상이다. 기후위기 시대, 폭우는 더 이상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다. 2023년, 2024년에도 비슷한 표현이 기사에 실렸다. “100년 만의 비”, “기록적 폭우”, “유례없는 침수”… 그러나 그 사이에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다면 ‘100년’이 아니라 ‘매년’ 내리는 재난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게 된다.

    재난 대응은 더 이상 일회성 행정으로 다룰 일이 아니다. 정밀한 사전 경보 체계, 재난 취약계층 보호 프로그램, 행정·군·소방의 유기적 통합 대응, 그리고 하천·세월교·배수망의 기준 전면 재설계 등 시스템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별 위험지도를 상시 갱신하고, 지자체가 단독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재난 유형에 대해서는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

    충남은 지금 ‘재난의 최전선’에 서 있다. 하지만 그 경고음은 전국 어디에서든 울릴 수 있다.
    “다음엔 우리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재난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지금은 단지 흙과 물을 걷어내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스템과 안이한 인식부터 걷어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