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숲속 맨발길을 걷다’[진경수의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여행] - 세종특별자치시 편
  • ▲ 신록에 둘러 싸여있는 오봉산 산마루.ⓒ진경수 山 애호가
    ▲ 신록에 둘러 싸여있는 오봉산 산마루.ⓒ진경수 山 애호가
    오봉산(五峰山, 해발 262m)은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과 연서면, 전동면 등 세 지역의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키는 야트막하지만, 품이 넓은 산이다.

    산의 서쪽에는 고려시대에 흥천사 또는 안선사로 불리던 옛 절이 지금은 불일선원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산에는 기우 제단과 산제당이 있어 영험한 산으로 유명하며, 연기팔경의 하나로 예로부터 많은 시객들이 찾아와 칭송하였다. 오봉산 입구 봉산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21호인 봉산동 향나무가 있다.
  • ▲ 등산로 입구 소나무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 등산로 입구 소나무 군락지.ⓒ진경수 山 애호가
    지난주 여러 가지 일로 몸과 마음이 힘들어 이번 주 고봉 등산은 무리일 듯하다. 그래서 가볍게 산책하며 치유하고자 야트막한 산이지만 산의 정기가 서린 영험한 오봉산을 찾는다.

    오봉산맨발등산로 주차장(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104-1)에 도착하니 제1, 2 주차장이 있다. 그만큼 오봉산은 지역민들의 삶 속에 늘 존재하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화장실 앞 오봉산 등산로 종합안내도를 살펴보고 등산로 입구로 향한다. 입구 좌측에는 소나무 군락지, 우측에는 신록이 짙은 활엽수 군락지가 터널을 이룬다.
  • ▲ 울울창창한 숲속의 맨발 산책로.ⓒ진경수 山 애호가
    ▲ 울울창창한 숲속의 맨발 산책로.ⓒ진경수 山 애호가
    등산로 입구에 들어서자 자갈이 가지런히 박혀있는 지압로와 발을 씻을 수 있는 세족대가 있다. 바로 그 옆의 소나무 군락지에는 어르신들이 황토를 밟는 건강걷기에 한창이다.

    어느새 연두색의 숲은 짙푸른 신록으로 모습을 바꿨다. 완만한 경사에 야자매트가 깔린 부드러운 산길로 사분사분 걷는다. 돌이 별로 없어 가끔 맨발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만난다.

    울울창창한 숲은 지붕이 되고 벽이 되어 마치 엄마 품에 안기듯 포근함을 느낀다. 들뜬 마음은 어느새 가지런해지고, 이따금 숲의 틈새로 들어오는 햇살이 가야 할 길을 밝힌다. 한여름 태양의 작렬함에도 개의치 않고 산책할 수 있는 그야말로 숲속의 냉방 길이다.
  • ▲ 작은 구릉 위에 설치된 평상과 체육시설.ⓒ진경수 山 애호가
    ▲ 작은 구릉 위에 설치된 평상과 체육시설.ⓒ진경수 山 애호가
    오봉산 산마루까지 약3㎞ 등산코스에는 다섯 개의 봉우리가 있기에 오르내림이 반복되는데, 가끔 짤막하거나 긴 나무계단을 만나게 된다. 아무리 야트막한 산이라도 힘들지 않은 산은 없다. 단지 그들 봉우리의 높낮이의 차이가 크지 않아 덜 힘들 뿐이다.

    길 옆으로 쉬어갈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고, 평상이 드문드문 놓여 있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작은 구릉을 오르면 평상과 체육시설, 등산로 안내도에 현재 위치를 친절하게 표시해 놓고 있다.

    오봉산의 짙은 신록의 품속에 들어서서 차근차근 걷다 보니, 앞만 보고 헐떡이며 달려온 지난 걸음걸이 그 속에 보이지 않던 시간의 흐름을 느껴 본다. 지난 화려함도 혹독함도 추억의 책갈피로 남고, 피고 지는 절세 미색의 꽃들이 찰나이며, 그리움이 사무쳐 뜨거운 열정을 보낸 것도 한순간…
  • ▲ 오봉산 산마루를 1㎞ 앞두고 만난 임도.ⓒ진경수 山 애호가
    ▲ 오봉산 산마루를 1㎞ 앞두고 만난 임도.ⓒ진경수 山 애호가
    야자매트의 푹신한 길은 잠시 평편하고 납작한 돌로 장식된 길로 표정을 바꾼다. 부끄러운 듯 이내 제모습으로 돌아온다. 오봉산 정상을 1㎞ 남짓 남겨두고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을 걷는다. 싱그러움이 가득한 발걸음에 집중하다 보니 그동안 쌓인 피로를 숲이 뽑아낸다.

    곧이어 작은 구릉 위에 자리한 첫 번째 정자를 만나 잠시 쉬어간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 데, 정자 옆에 오봉산을 칭송한 한시(漢詩) 3편이 발길을 잡는다. 그중 한 편인 송암 장규환(松庵 張奎煥)의 오봉낙조(五峰落照)를 소개하면 이렇다.

    落照紅飜第五峰(낙조홍번제오봉), 지는 해에 제5봉이 붉게 물들었다.
    林鴉投盡鷺飛滽(임아투진노비용), 까마귀 날아간 곳에 백로가 한가하게 나른다.
    蒼翠鮮明無限好(창취선명무한호), 산의 푸르름이 선명해서 한없이 흐믓하네
    景公何事淚龍鐘(경공하사누용종), 그대는 어찌해서 눈물만 흘리는가?
  • ▲ 발바닥 지압로.ⓒ진경수 山 애호가
    ▲ 발바닥 지압로.ⓒ진경수 山 애호가
    연두색이 초록색으로 짙어지는 계절, 숲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 살이 붙는다. 그 선연한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어찌나 신선한지 코끝이 시원하다 못해 시린 느낌이 든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3분의 2지점을 훌쩍 넘어선다. 흙길에 야자매트가 깔린 유순한 등산로라 할지라도 이 정도쯤 걸었으면, 발이 피곤을 느낄 때이다. 잠시 신발을 벗고 발바닥의 피로를 풀어주라는 지압로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지압로는 등산로 전 구간에 걸쳐 몇 군데 조성되어 있다.

    발바닥의 자극 때문일까? 문득 어쩌다가 아바타의 삶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온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어찌 안무 짙은 깊은 산중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듯 희로애락에 휩쓸려 정신 못 차리고 살아왔던가?
  • ▲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숲속의 계단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숲속의 계단구간.ⓒ진경수 山 애호가
    잠시 내려가는 듯싶더니, 하늘을 뚫을 듯 치솟은 숲속으로 계단을 오른다. 경사가 그리 급하지 않지만 길게 늘어진다. 한 계단 구간을 오르니 오봉산 정상이 0.4㎞ 남았다고 알린다.

    다시 이어진 계단을 오르자 이번엔 오봉산 정상이 0.3㎞ 앞에 있으니 다시 계단을 오르라고 한다. 오봉산 등산코스 중에서 가장 긴 계단구간이다.

    길쭉하게 기울어진 계단을 다 올라 숲속을 빠져나가니 이번 산행의 두 번째 정자를 만난다. 정자 옆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친구처럼 이웃하고 있다. 첫 번째 정자가 숲속에 묻혀 있다면 이번 정자는 숲을 헤치고 산길 위에 솟아있다.
  • ▲ 등산로에서 만나는 두 번째 정자.ⓒ진경수 山 애호가
    ▲ 등산로에서 만나는 두 번째 정자.ⓒ진경수 山 애호가
    두 번째 정자가 세워진 곳이 아마도 오봉산 4봉일 게다. 정자에 오르면 전망이 좋을까 싶었는데 숲에 가려 신통치 않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도 누굴 탓할 것도 없다. 잠시 쉬어가는 여유만으로도 삶의 쉼표를 찍었으니 말이다.

    산길은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기 마련,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다. 세상 사람들 누구도 굴곡 없는 삶을 사는 이 하나 없다. 그런 장애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구름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질 것이다. 단지, 나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지족하며 ‘나답게 사는 행복’으로 스며들면 그만이다.

    다시 계단을 내려서 안부에 닿으니, 의자와 평상, 구급 약품함과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을 찾는 산객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쉬어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 오봉산 산마루가 지척인 안부 쉼터.ⓒ진경수 山 애호가
    ▲ 오봉산 산마루가 지척인 안부 쉼터.ⓒ진경수 山 애호가
    우리네 삶이 버거울 때 누군가가 어깨를 빌려줄 때 고맙고 위로를 받는다. 그런 누군가가 옆에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산을 찾아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다. 아픔이든 고통이든 가리지 않고 몽땅 쏟아 놓지만, 산은 마다하지 않고 끌어안아 준다.

    이제 오봉산 정상이 0.1㎞를 남겨두고 마지막 계단을 오른다. 지금까지 오름보다 약간은 가파르지만 짤막한 오름이다. 그 계단 끝은 오봉산 정상 데크로 이어진다.

    정상 데크에는 데크를 뚫고 나온 ‘五峰山(오봉산)’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정상석이 불쑥 솟아있다. 오봉산 산마루는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이 거의 없다.
  •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송곡리 일대.ⓒ진경수 山 애호가
    ▲ 오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송곡리 일대.ⓒ진경수 山 애호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북쪽으로 전동면 송곡리 일부와 멀리 연수봉을 조망할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있다. 그곳을 통해 야트막한 산 너울이 선율을 타고 흐르는 산줄기를 따라 마음도 함께 너울대며 환희의 춤을 춘다.

    걸음걸이에 집중하며 복잡하고 산란한 마음에서 벗어나 이윽고 정상에 서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다시 찾아올 내일을 맞이할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나답게 사는 행복에 젖어 오봉산 6㎞ 산행을 갈무리한다. 세상은 온전히 내 것이고, 그 세상의 주인공이 오롯이 나임을 알아차릴 때 비로소 ‘나답게 사는 행복’이 찾아든다.